나답게 일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와 같은 말이다.

by 김워나

8년 동안 4개의 회사를 다녔다.


나의 첫 번째 일터는 국내 중견기업 홍보팀이었다.

회사원이 되어 나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내가 하는 일의 모든 기준이 나이 지긋하신 오너의 기분과 감정이라는 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팀장님과 상무님의 컨펌을 받은 건도 상무님이 회장님을 뵙고 오면 뒤집어지기 일쑤이며 회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는 기념품을 다른 팀보다 먼저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원분께 혼이 나기도 했다.

다양한 직급이 참여하는 회의는 팀장급 위로만 입을 뗄 수 있었고 그분들 역시 의견을 내기보다는 업무 보고 위주로 말을 하는 매우 딱딱한 분위기였다.

임원분이 말을 하면 모두가 '네'라고 말해야 하는 그런 회의를 보고 있노라면 '여럿이 모여 의논함'이라는 회의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회사원은 일을 하면서 점차 역량을 넓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는, 그렇게 한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어 어디서도 내 능력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사람이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기분과 감정에 맞춰 수동적으로 일해야 하는 환경은 결코 내가 원하던 일터가 아니었다.

회사를 욕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팀장님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웠고 무엇보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게 1년 정도 고민한 끝에 약 2년 3개월째가 되던 날 나는 퇴사를 선언했다.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일터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며 실력을 쌓아갈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외국에 본사가 있는 외국계 회사가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계 기업들은 CEO가 외국인인 경우가 많고 한국인일지라도 대부분 전문 경영인이기에 쓸데없이 오너 혹은 오너의 2,3세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여겨졌다.

영어를 좋아하고 외국인과 영어로 소통할 때 자유로움을 느끼는 내 성향도 외국계 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는 외국계 취업을 위한 resume, cover letter를 작성하고 약 20개의 외국계 회사 마케팅팀에 지원했으며 최종적으로 글로벌 1위 제약 회사 마케팅팀 associate로 입사했다.

계약직이었으나 개의치 않았던 이유는 외국계는 고용 여부에 상관없이 커리어를 잘 쌓으면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이지만 next가 보이지 않는 비전 없는 자리보다 계약직이지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업무가 나에겐 더 중요했다.


그렇게 일하게 된 회사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상사들은 모두 똑똑하고 합리적이었으며 임원들과 함께 하는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거침없이 제시했다.

가만히 있으면 무능력하게 여겨지는 환경에서 직급에 상관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첫 회의에 참가한 뒤 상사는 나에게 "워나씨도 의견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해줘요"라고 말했다.

엄청난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이게 바로 회의지, 이게 바로 회사지, 이게 진짜 일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일을 더 효율적으로 잘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배웠고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나의 상사는 지속적으로 나에게 미션을 던지며 피드백을 주었고 하나의 미션을 잘 수행할 때마다 더 크고 어려운 업무들을 시키며 나를 성장시켜 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도 상사들처럼 하나의 의약품을 전담해서 모든 마케팅 전략을 짜고 액티비티를 실행하는 Product Manager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나의 상사들은 내가 PM이 되는데 필요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적극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목표가 명확하고 성장하는 재미가 있었기에 일주일에 3번 이상 10시까지 야근을 해도 즐거웠다.

그렇게 일한 지 약 1년 7개월이 되는 시점에 상사 분들이 스위스계 제약사 Jr.PM 자리에 나를 추천해 주셨고 나는 정규직 자리에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외국계 회사가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파라다이스는 아니었다.

성장과 배움을 중시하는 나에게 세 번째 회사는 전혀 맞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은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팀 리드에게 까이지 않을까'가 중요한 곳이었다.

팀 리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비난했고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가했으며 자신에게 무비판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을 좋게 평가했다.

나의 상사는 팀 리드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모든 비위를 맞추며 회식이 끝나면 팀 리드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YES맨(여자였으니까 YES걸?)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가이드는 항상 모호했다.

앞뒤 맥락 없이 자신도 모르는 메일을 포워딩하며 일을 처리하라고 말했고 3개의 업무를 처리하면 새로운 3개가 다시 쌓여 있었다.

끝나지 않는 업무로 매일 야근은 기본이었고 야근할 때조차 일을 던지며 내일 새벽 5시에 볼 수 있게 해 달라 말했다.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메일을 보냈는데 다음날 오후 1시까지 열어보지도 않는 그녀를 보면서 엄청난 회의감과 분노가 치솟아 올랐고 어디서나 머리만 대면 자는 내가 다음날이 오는 게 두려워 잠이 못 드는 불면증에 걸렸다.

일 그 자체보다 정치가 중요한 조직에서 '내가 일하는 이유'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고민을 들은 전 직장 상사분께서 헤드헌터들에게 나를 추천해 주셔서 다른 외국계 제약사 면접을 봤고 좋은 결과를 얻어 7개월 만에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4번째 회사는 독일계 제약사였다.

이곳에서는 PM이 되어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 product를 맡아서 마케팅 전략을 짜고 외국인 CEO 및 APAC 사람들에게 영어로 발표를 했다.

계획한 전략들을 실행하기 위해 직접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설득하며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형의 아이디어를 실체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이전에 해보지 않은 일들을 혼자 책임지고 해 보는 과정은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했지만 짜릿했다.

어렵고 버거웠던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을 때, 더듬더듬했던 일을 이제는 스무스하게 진행할 때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고 일하는 내가 좋았다.

그런데 이 느낌도 오래가지 않았다.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지루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이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느낄 수 없었고 나에게 더 높은 단계의 업무 수준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야근을 거의 하지 않는 훌륭한 워라밸로 인해 회사 생활이 편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내 마음은 불편해졌고 내 안에 잠자던 질문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네가 원하는 삶이야?'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

'이렇게 계속 살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아? 네가 원하는 모습이야?'


이렇게 계속 일을 한다면 잘 돼야 나의 상사 모습일 텐데 내가 상사의 모습이 되었을 때를 떠올리니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은 의사의 처방 패턴을 바꾸는 것이 핵심으로 약물 자체의 엄청난 베네핏이 없다면 결국 의사와의 관계가 중요한 마케팅인데 이 일의 본질 자체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전'과 '성장'과는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그냥 한 마디로 이 일의 의미를 느낄 수 없었고 이 일을 계속해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의 의미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거나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인데 더 이상 이 일에서 의미를 느낄 수 없었고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다 보니 점점 더 일 하기가 싫어졌다.

영혼을 빼고 일을 하다 보니 일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렇게 3년 6개월이 되는 시점에 나는 사표를 냈다.




퇴사한 지 1년이 좀 더 지났다.

그동안 평판 조회 리서처, 대행사 마케팅 전략 컨설팅, 나의 이직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책을 쓰고 크몽에 등록하기, 하타 요가 등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며 내가 어떻게 일하고 살고 싶은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프리워커스' 책을 읽었는데 저자들이 동일하게 말한 내용이 매우 와닿았다.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와 동등한 말이다.


생각해 보니 맞다.

어떤 일을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하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알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뾰족하게 분석해야 한다.

내가 삶에서 중요시 여기는 핵심 가치, 그로 인한 나의 욕망들을 솔직하게 펼쳐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만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답게 일하고 살 수 있다!


스스로를 아는 만큼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이 더 만족스러운 일과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