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며칠 전에 항암 하러 왔을 때 치매 검사도 받았어. 뇌파 검사받는 데 25만 원이 넘더라고. 다음에는 또 인지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해. 그것도 한 25만 원 하더라. 지금 병원으로 옮기면서 항암 치료에 필요한 유전자 검사 비용만 150만 원이 나왔는데, 이번 치매 검사에서도 비용만 50만 원이 넘게 나오더라고. 실손보험도 적용 안 돼서 아쉽긴 하더라. 그래도 검사받고 치료도 잘 돼서 엄마가 한 달이라도 더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살 수 있다면 그 돈이 뭐 대수겠어.
치매는 다 알츠하이머인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니더라. 알츠하이머병 치매, 루이소체 치매, 혈관성 치매 세 종류가 있다는 거야. 의사가 하나씩 설명해 주면서 엄마는 알츠하이머와 루이소체 중간에 있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하더라고. 검사해 보고 제대로 된 치료법을 찾아보자고 하더라. 치료라는 말을 듣고 난 신기했어. 지금껏 치매는 치료가 아니라 지연시키는 거라고만 생각했었거든.
의사는 엄마의 일상에 대해 많은 것들을 물어봤어. 엄마는 기억하는 걸 말했지만, 그건 내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달랐어.
의사가 “낮잠을 많이 자세요?”라고 묻자, 엄마는 “아니요, 안 자요.”라고 답했어. 나는 끼어들어서 “사실은 낮에도 잠을 많이 자는 편이세요. 그런데 기억을 못 하시더라고요.”라고 정정했어.
이런 식이었어. 엄마의 증상을 명확히 알아야 하니까 나는 엄마의 기억과 낯선 행동에 대한 정보들을 최대한 의사에게 쏟아냈어.
엄마랑 차 타고 움직일 때마다 낯선 곳에 가면 엄마는 종종 "여기 어디야?", "우리 어디 가는 거야?"라고 물어보거든. 난 그게 엄마가 기억을 잃는 것으로 생각했어. "우리 영등포역에 가요"라고 말해주고 영등포역에 도착해도 엄마는 "역에 데려다줘"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그런데 의사가 그러더라. “그건 기억을 잃는 게 아니라 현실을 혼동하는 거예요.”
혼동이라는 말에 마음이 울컥했어. 잃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엄마는 다르게 보고 있을 뿐이었구나. 그간 엄마에게 잃고 있는 것을 되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을 보는 엄마를 내가 보는 곳으로 돌리려고 강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미안했어.
엄마는 누나가 세상을 떠날 때 엄마 품에서 자듯이 떠났다고 항상 말했어. 사실은 반대였어. 누나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나중에 엄마가 누나를 품에 안았던 거였어. 누나가 엄마의 품에서 누나가 떠났다는 버전의 현실이 엄마에게는 절실했을 거야.
의사는 엄마에게 병과 치료 방법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했어. 하지만 엄마는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어. 울 것 같진 않았지만 슬픈 표정이었지. 나이듦과 짐이 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혼자서는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무력감. 내가 본 엄마의 표정은 그랬어. 해석이 너무 뻔한가.
어쩌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엄마는 집에 도착해서 “아!들! 고생했어. 사랑해.”라고 말씀하셨어. 엄마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굳은 결심이 앞서. 전력 질주하기 전에 몸을 기울이듯 먼저 “아! 들!”이라고 힘주어 부르시거든.
그때 어떤 예감이 들었어. 엄마가 언제고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엄마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닐 거라는 예감 혹은 확신.
너무 혼자 말이 많았나. 잘 자. 오랜만에 같이 누워 있으니까 별 이야기를 다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