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선택

by 함완

의사가 말했다.


"이제 선택할 때가 왔네요. 항암을 더 하실 건가요? 아니면 진통제만 드릴까요?"


일주일 만에 암이 엄마를 급속도로 정복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엄마의 뱃속에서 자랐어야 하는 건 우리 세 자식뿐이었어야 했는데, 몹쓸 것이 자라고 있었다.


항암을 하면 암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의사는 처음에는 희망을 줬지만, 2차 항암, 3차 항암으로 넘어가면서 이제는 암이 더 이상 커지지 않게만 할 뿐이라고 언질을 줬다. 항암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강한 걸까. 천운일까. 어떤 특별한 노력이 있었던 걸까.


지금 와서 궁금해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선택. 인생에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반복해 왔고, 그 결과 지금 여기에 섰다. 선택은 정말 선택할 수 있을 때야 의미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지기나 한 걸까?


엄마를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됐다. 항암을 하면 부작용이 엄마를 너무나 힘들게 할 거라는 걸 알지만, 항암을 그만두고 진통제만 먹는다면 엄마는 죽음을 향해 전력질주하게 될 것이다. 의사는 자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그게 뽑기 하듯이 그렇게 쉽게 아무거나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엄마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는 의사의 말을 이해한 걸까, 궁금했다. 치매가 엄마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은 뒤로, 엄마는 종종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본가에서 서울 병원으로 차를 타고 올라올 때 엄마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거나, 병원에서도 엄마가 말없이 입을 앙다문 채 있을 때, 엄마를 부르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엄마는 말했다.


“아무 생각 안 해.”


엄마는 의사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지난주만 해도 세상의 끝에서 결심한 것처럼 단호히 “이제 항암은 그만하겠다”라고 말했던 엄마였는데, 내 앞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금 여기에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답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어요. 해야죠. 항암.”


진찰실에서 엄마를 먼저 내보내고 의사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은 건가요?”


항암을 하지 않으면 최대 6개월, 항암을 해서 약효가 좋으면 4달 정도 삶이 연장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정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까. 혹시 이 선택으로 엄마를 더 빨리 떠나보내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종종 엄마는 항암을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 70 넘게 살았으면 살 만큼 살았어”라고 말하면서도 “80까지는 살고 가고 싶어”라며 생의 의지를 놓지 않았었다. 둘 다 엄마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했다. 힘든 건 힘든 거고, 살고 싶은 건 살고 싶은 거니까.


일단 한 달만 먼저 해보자. 그리고 그때 또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때 엄마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엄마 뜻대로 할게. 엄마의 선택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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