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일기
시간이 화살 같다는 뻔한 말은, 그 말이 사실임을 내가 몸소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어느새 1년. 나는 1년 전 그 시간에 발이 묶여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엄마는 1년 전보다 더 멀리 떠나버린 기분이었다.
기일과 제삿날이 다르다는 규칙조차 몸에 익히지 못한 나는, 잘 오고 있느냐는 형의 전화에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내가 늦으면 엄마가 기다리다 영영 가버릴 것만 같은 마음에 급하게 차에 시동을 걸었다. 6시를 넘긴 하늘은 미세먼지 탓인지 시야가 흐릿했다. 좁아지는 차로 위에서 도착 예정 시간은 야속하게 1분씩 늘어났고, 어느새 20분이 훌쩍 넘어버린 숫자를 보며 나의 미련함을 탓했다.
형의 집에 도착했다. 형은 고장 난 현관 도어록을 고치지 않았고, 나는 익숙한 번호 대신 초인종을 눌러야 했다. 거실에 있던 아버지와 형, 형수와 조카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나도 따라 웃으려 애썼지만, 요 며칠 사이 조각조각 부서진 마음은 입꼬리만 겨우 올릴 뿐 시큰거리는 통증을 숨기지 못했다. 집 안은 전을 데우는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그 냄새가 마음까지 비릿하게 만들어, 주차증을 받아온다는 핑계로 집을 빠져나왔다. 차라리 미세먼지 섞인 차가운 바깥 공기가 내게 더 맞는 숨이었다.
나의 지각 때문에 밤 8시가 되어서야 엄마 앞에 뜨끈한 밥과 국이 차려졌다. 아버지가 챙겨온 술을 올렸다. 제사상을 차리는 데 손 하나 보태지 못한 미안함에, 술 한 잔 올리겠느냐는 형의 권유를 고개 저어 사양했다. 나보다 엄마를 더 아꼈을지도 모를 형수는 절을 마친 뒤 눈시울이 붉어진 채 주방으로 향했다. 형수는 주방 작은 창밖을 보며 등으로 울었다. 내 목구멍까지 울음이 차올랐지만 억지로 삼켰다. 울음은 혼자여야 한다. 나의 슬픔과 죄는 오롯이 혼자 되씹고 뱉고, 다시 삼켜야 할 것이기에.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그 불길함을 기억한다. 차로 급히 달려갔지만 그때부터 이미 난 늦었다.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날의 겨울바람보다 매서웠다. 잠시 후 영안실에서 마주한 엄마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육체나 영혼의 부재가 아니라 '온기의 실종'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온기가 없는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었다. 내가 가족으로부터 도망쳤던 그 시간 동안, 엄마는 홀로 얼마나 그 온기를 찾아 헤매었을까. 나는 엄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차갑게 방치한 것일까.
제사가 끝나고 식사까지 마치자 설거지거리가 쌓였다. 다행히 식기세척기가 그 소란스러운 일을 도맡았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건 식세기가 돌아가는 소음 때문도, 고양이가 말을 걸어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을 차라리 엄마가 썼더라면. 그 시간을 나눠줄 수만 있었다면,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온 나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잡아먹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하고 서울에 올라왔다. 목요일 밤부터 날이 부쩍 추워져서 그랬는지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워져 습관적으로 데이팅 앱을 열었다가 이내 화면을 닫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아무나의 온기가 또 사라지는 것이 싫었다. 보일러가 위이잉하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