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망각

by 함완


벌써 11월 중순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개월이 지났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먼 옛날에 일어난 일처럼 아득하기도,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고통과 슬픔이 몰아닥치기도 한다. 때론 아예 없던 일 같기도 하다. 엄마는 어딘가 멀리 떠나버렸고, 그 뒤로 엄마가 어딘가에서 평온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던 있던 적도 있다.


엄마가 떠난 후 나는 ‘괜찮다’라고 여겼다. 엄마의 몸을 만지며 염을 하던 그때에 짐승 같이 울부짖었던 시간을 제외하면, 적절히 슬픔을 다루고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가급적이면 울지 않으려 했다. 슬픔은 대개 쏟아내는 게 아니라 흘러넘치는 것이었기에, 흘러넘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단속을 했다. 하지만 그 빗장은 너무나 쉽게 풀리는 것이었고 나는 가볍게 무너졌다.


친구는 오래 함께 한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야기를 했다. 살려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살릴 수 없었다던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력감이 전해져 왔다. 그 무력감의 이미지에서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깨어났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는 “입이 깔깔해”서 음식이 삼켜지지 않아 병원에 입원해 영양제로 버텼다. 병원에서는 종일 잠을 잤고 나는 그런 엄마의 옆에 앉아 내가 구할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무력한 지를 깨닫는 시간. 엄마가 고통을 겪는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너지고 부서졌다. 오랜만에 울었다.


내가 동물보다 식물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뿌리를 내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어도, 그곳에 뿌리를 박고, 버티고, 이겨낸다. 그런 존재가 언제나 부러웠다. 어디에도 속하지도 정착하지도 못한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었고, 그것이 어쩌면 나에게 엄마였다. 나는 엄마에게 뿌리를 박고 살아남았다.


엄마가 떠나면 오래오래 그리워할 거라는 걸 곁에 있을 때에 알면서도, 제대로 그리워하지 못했다. 그리움은 부재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어리석었고, 그래서 당신의 부재에서만 그리움을 느꼈다. 영원한 부재가 당도하기 전에 당신을 그리워할 줄 알았다면 손에 쥐가 나더라도 당신의 저린 발을 더 주물렀을 것이다. 이제는 애타게 그리워해도 그리움이 닿을 곳이 없다.


엄마가 이제 세상에 없어서 그리운 걸까. 엄마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리운 걸까. 당신은 내 안에는 존재하는데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영 풀릴 수 없는 수수께끼를 안고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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