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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Jan 25. 2021

음쓰족과 요리족, 막무가내족의 집안일 전쟁

왜 항상 내가 더 많이 하는 거 같지?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자 자연의 섭리다. 어제 한 청소는 오늘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아침에 한 설거지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 빨래를 왕창 모아 돌렸던 거 같은데 어느덧 빨래통에는 무수한 옷가지들이 쌓여있다. 금요일 저녁 어린이집에서 받아오는 아이의 여벌 옷, 침구류까지 포함해 생각해보면, 세탁기와 건조기를 위해 연말에 시상식이라도 열어야 그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집에 사는 두 종족은 자연스레 집안일 주특기가 갈린다. 단순 노동을 선호하는 나는 빨래, 설거지, 음쓰(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등에 재능을 보이며 나의 주특기로 자연스레 안착시켰다. 결국 나는 우리 집에서 빨래족, 설거지족, 음쓰족이 되었다.


반면 아내는 처음엔 청소족에 머무르는 듯 보였지만, 천부적인 요리 센스에 노력을 더하더니 이제는 잡채나 생선조림 따위의 고난도 음식까지 척척해내는 1등 셰프가 되었다. 고급 기술을 보유한 요리족이다. 아내의 그런 모습에 대단하다는 감정과 함께 부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들어온 말,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를 절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집안일 주특기가 나뉘어 고착화되니 처음에는 분업이 잘 이루어졌다. 적당한 노동이 주는 환기는 활력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족인 딸아이가 태어난 이후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적당한 노동은 사라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가혹한 노동이 들어섰다. 소중한 생명 하나가 탄생하니 집안에 온기는 더해졌지만, 각자 하던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게 됐다.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설거지 거리는 돌아서면 쌓여있었다. 아이의 각종 옷가지를 위해 세탁기 하나를 더 들여야 했고 기저귀 갈기나 아이 목욕 등의 새로운 일들이 생겨났다.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불만도 늘어났다. 절대적인 양이 늘어나서 그런 것인데 왠지 상대의 일이 더 적어 보이고, 내 일이 훨씬 더 많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샘솟아 났다. 서로 분명히 어디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괜히 심술이 났다. '또 나만 집안일하느라 정신없구나.',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같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꿈틀댔다. 그러다 그런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어김없이 부부 싸움을 하며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 격랑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 두 종족은 다행히 서로를 이해해 나갔다.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며 나아갔다. 끝없이 내 생각만 했다면 아마 지금은 파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게 답을 준 하나의 생각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바로 '나보다 아내가 늘 무언가를 더 하고 있다.'라는 생각. '나만 많이 하는 거 같다.'는 생각을 엎어버리고 기준을 뒤바꿔버리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더 돼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두 종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집안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정기적으로 한판씩 붙는다. 하지만 한 판 붙어도 똑같다. 서로 다시 이해하게 된다. 다시 이해해도 똑같다. 얼마 못가 이내 티격태격 다투고 만다. 하지만 큰 지향점이 같으니 정반합을 찾으려 노력한다. 아이까지 세 종족이 한집에 살고 있으니 정반합의 '합'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생각해본다.


‘아내는 늘 나보다 고생한다.'


'딸아이는 나보다 더 심오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 둘은 분명 나보다 뛰어난 종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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