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환 에세이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
한 달 넘게 글을 쓰지 않았다. 아예 잊고 있었다. 스스로를 납득시킨 핑계는 갑작스레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퇴근 후 글쓰기 학원을 다니며 새로 생긴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보리라 다짐했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지난가을에 낸 내 첫 책을 보며 이걸 진짜 내가 다 썼단 말인가 하는 놀라움도 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무색해질 만큼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새로이 출간을 한 선배의 책을 읽으니 그제야 타자를 두드리고 싶어 졌다. 무언가 쓰고 싶은 욕망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내 주변 사람 중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선배다. 그를 지켜본 10년도 더 넘은 기억들을 차분히 떠올려보면 그는 늘 책과 함께였다. 그는 늘 책 읽기와 사색을 통해 무언가를 얻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그의 책은 문학성과 작품성으로 점철돼있으리라 생각했다. 화려한 표현과 어려운 단어들, 감탄을 자아내는 은유와 비유, 몇 번을 생각해야 조금 유추할 수 있는 행간들로 가득해 나 같은 초짜가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글들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다. 왠지 그에게는 그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펴고 글을 읽어 내려가니 나는 크나큰 착각은 물론, 실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그의 성품만큼이나 그의 글은 겸손하고 차분했다. 자신을 드러낼 때에도 끝까지 자신을 낮추는 것이 보였다. 티끌 같은 성과도 뻥튀기 해 부풀리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런 사람들 틈 속에서 살며 낮춤으로 품격을 높이는 일은 역시 그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굳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하는 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잘 지는 법이란 이런 것이구나.
참 감사하다. 다시 글 쓸 용기를 주어서.
다만 잘 지는 법도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