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민의 편향에 대하여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 연민이 피해자에게 닿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연민은 중립이 아니었다.
버스 안에서 강제추행이 발생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피해 여성은 피해를 당한 후 버스에서 내리는 가해자를 불러 세워 가해자의 행위를 따져 물었다. 112에 신고했고,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하던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가해자는 파출소로 임의동행되었다.
피해자의 진술과 CCTV 녹화 자료와 같은 증거는 확보되었다.
주거도 일정했다.
가해자는 귀가 조치되었다. 이 사건은 서류로만 나에게 전달되었다.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보니, 버스 맨 뒷자리에 피해자와 나란히 앉아 있던 가해자가 하차하며 피해자의 허벅지를 짚고 일어섰고 버스 뒷문에서 멈춘 그가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쳤을 때 너무도 태연한 표정을 짓길래 상습범이라 생각이 들어 신고했다는 내용이다. CCTV 자료도 피해자의 진술과 대체로 일치했다.
다만 한 가지, 파출소에서 작성된 피해자의 조서에 처벌을 원하냐는 경찰의 질문을 피해자는 ‘좀 더 생각해 보고 말하겠다’라는 말로 답한 것이 눈에 띄었다.
수사관으로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왜 유보되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의문으로부터, 나의 이율배반과 불일치가 시작되었음을 말해 둔다.
다음 날, 가해자에게 전화로 출석요구를 했다. 전화를 받은 가해자에게 신분을 밝히고, 용무를 말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 가해자의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아무런 변명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출석요구에 응하겠다는 무덤덤한 말투…
요즘의 AI 챗봇이 대답을 해도 이렇게는 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해자는 서른 살을 갓 넘긴 경계성 지적장애인이었다. 장애인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아서, 그가 지적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출석 조사하던 날 사전 면담을 할 때, 함께 경찰서를 찾은 부모로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다. 출석요구를 하던 나의 전화에 그가 왜 그토록 무덤덤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가해자는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서면서 중심을 잡기 위해 좌석 바닥을 짚으려고 했다는 변명을 했지만, 그의 혐의는 간단명료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황에 다툼의 여지는 없었다.
진술조력인으로 참여한 어머니의 요청으로 가해자의 초·중·고 생활기록부와 군대 면제 사유가 기재된 병무청 기록을 제출받았다.
그가 학창 시절을 거의 결석하지 않고 졸업했고,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지금까지 최저임금을 받으며 12년간을 근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낙인이 될까 봐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없었다는 부모와 사회복지사가 되었다는 누나의 탄원서도 사건기록에 첨부했다.
며칠 후 피해자를 다시 만나 가해자에 대해 유보한 처벌 의사를 보충했다.
피해자는 그 당시 현장에서 가해자를 붙잡아 세우고 추행 사실을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할 때, 그가 지적장애인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문에 처벌을 원하냐는 경찰관의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버스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아무런 대처를 못한 무기력했던 피해 경험이 상처로 남아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지금은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적극적으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나 또한 범죄 피해 앞에서 무기력을 경험해 보았기에 피해자에게,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것이 그녀가 살아온 시간 동안 어떤 감정과 생각으로 내면화되었을지 절반쯤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피해자에게 꺼내 놓았다.
가해자가 경계성 지적장애인이며 그의 가족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죄책감을 가지고 용서를 바라는지 말했다.
평소 수사절차와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할 때, 후배 수사관들에게 내가 자주 했던 말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2차 피해를 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었고, 나는 그 말을 꽤 자신 있게, 공을 들여서 하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이 사건을 하면서, 중립이 저울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감정 없는 수평의 상태이거나 동력을 차단하고 탄성만으로 주행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중립이 아닌 어떤 ‘연민’을 이루고 싶었고, 그것이 중립 상태를 벗어나더라도 나의 감각으로는 그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와서 보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때 그렇게 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합의서를 제출했다. 내가 설명한 가해자의 상황을 듣고, 피해자가 자신도 학생을 가르쳐 본 사람으로서 과거 자신의 학생 중 지적장애인이 있었다는 경험, 가해 부모의 사과를 담은 편지가 피해자의 마음을 ‘저절로’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을 송치한 바로 다음 날, 피해자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상담사에게 했던 말을 전언으로 듣게 되었다.
‘나에게 왜 가해자의 불쌍한 사정을 알려주어서 내가 이렇게 죄책감이 들도록 하냐.’
‘알고 싶지 않은 가해자의 사정을 수사관이 말해 주었다.’
‘나는 합의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꽤 멍해졌었다.
종결한 사건이었으므로, 형사사법시스템을 열어 사건기록을 처음부터 찬찬히 다시 열람해 보았다.
‘누군가의 서사’를 취사선택한다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자격인지, 나의 연민이 궤도이탈의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불시착의 결과가 되는지 자문하고 또 자문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떠한 ‘중립’ 또는 ‘연민’을 이루어야 하고, 이룰 수 있을지.
지금도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