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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Apr 23. 2020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여자 셋과 사는 남자 이야기-1

 한 10여 년 전쯤 지금은 거의 폭망 상태인 '개그 콘서트'는 당시 우리나라 최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지금도 그 정도의 웃음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까울 정도로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유튜브를 통해서 예전 재미있었던 코너를 찾아보곤 하는데, 그중에 가장 가장 재미있던 코너는 '두분토론'이었다. 그 코너에서는 남자 개그맨이 '남자는 하늘이다.'라는 뜻을 가진 '남하당' 대표로 나오고, 여성 개그맨은 '여성이 당당해야 한다.'라는 '여당당' 대표로 나와,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비교해 가며 웃음을 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여기서 '여당당' 대표가 인사를 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캐치프레이즈인가?


 나는 30여 년이 넘는 인생 동안 여성의 인생이나, 삶을 거의 고민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나의 관심사 밖이었다. 왜냐면 남자로 태어나고, 내 위로 누나가 있었지만 나와 그리 다른 삶을 보낸 것 같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창 시절에 누나가 맨날 설거지를 시켜서 주부습진이 걸린 적이 있었다. 나의 부모님도 나와 누나를 편협하게 대하거나, 차별한 적은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친할머니는 은근히 손자들을 더 이뻐라 하셨다. 제사할 때도 여성들이 음식 장만만 할 뿐, 절할 때 참여하지 않는 것은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겼으나,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오히려 나는 절하는 걸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그 외에는 남성 우월주의나 여성을 하대하는 것을 못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는 국민학교(마지막 국민학교 세대)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남중, 남고를 다녔다. 이 홀아비 쉰내 나는 친구들과 학창 시절을 보내다 보니, 또래 여자 아이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고, 나 스스로도 여자와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고등학교 1학년 10월달에 들어서야 친구의 전도로 동네 교회를 가고 나서야, 교회 안에 여자 아이들과 친해질 기회가 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닌 교회는 매우 작은 교회라서, 또래 여자 아이들은 달랑 3명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큰 교회 갈걸) 고등학교를 쭉 지내왔어도, 딱히 여자와 어울려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교회 형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정말 왜 그랬을까?)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내가 신학대학원을 진학하고 수도권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나가게 된 교회에서였다. 당시 나는 청년이자 전도사 지망생이었고, 아내는 성인 된 지 얼마 안 된 파릇파릇한 새내기였다. 처음에야 서로에게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 연애와 결혼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다. - 어쨌든 역사적인 시간이 흐르고 어찌저찌하여 결혼하게 되고, 두 명의 딸을 얻었다. 여자에게는 딸이 있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남자 혼자 여자 셋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연약한 딸 둘을 키우다 보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기 전 그리고 임신 전까지, 유명 K항공사에 취직하여 인천 국제공항 라운지에서 근무했다. 공항 업무다 보니, 3교대로 이뤄졌는데 아내는 너무 신심이 깊은 나머지 교회의 수요예배와 금요예배 반주를 위해 3교대 근무에 동의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계약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3교대 하면 정직원 시켜준다고 했는데 말이다. 참으로 대~~ 단한 믿음이다......(왜 그랬니.....도대체...) 아무튼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는, 결혼해서 얼마 후, 그만 임신을 하고 말았다. 결국 권고사직이라는 엔딩을 맞이했다.


 그동안 나는 전도사가 되고, NGO 단체에서도 일하고, 알바도 하면서 가정을 꾸려나갔다. 아내는 충실히 첫째 딸을 돌보고, 3년 후에 둘째를 낳았다. 내가 아내에게 이제 직업도 가져보고, 스스로에 대한 비전을 이루라고 말해봤지만, 아내의 대답은 늘 같았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나는 어렸을 때, 철밥통 직업을 가진 아버지 때문에 IMF의 엄혹한 시절에도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아내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어머니, 발달장애를 가진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아내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어야 했고, 아내도 어느 정도 일할 수 있을 나이부터는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서, 멋있는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었는데, 하필 뭣도 없는 전도사랑 결혼하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고(?) 아이 둘을 낳고, 기르는 시간이 만 7년이 돼가자 자신이 이제는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뭣도 없는 전도사는 이제 목사가 됐지만, 여전히 뭣도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나야 하고 싶은 것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적은 월급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지만, 아내는 무엇을 통해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있을까?


 아내를 꾸준히 관찰해본 결과, 아내가 현재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아이들 옷 입히는 것과 사진 찍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사는 건 아니지만, 집 근처 아동복 매장 사장님과 안면을 트고 친해져서, 특별 할인으로 이쁜 옷들을 가끔 골라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입혀보고,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올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발달장애를 있는 첫째 딸이 유치원 특수반에 적응하고, 센터에 가서 교육받는 것에 신경 쓰고, 또한 둘째 어린이 집을 고르고, 그곳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익히는지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분명 아내도 자신이 꿈꾸는 삶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상황과 어쩔 수 없는 선택 속에서 그나마 자신의 기쁨을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때론 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너무도 희생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진심으로 아내가 자신이 가진 소질과 꿈을 이뤄갔으면 좋겠고, 바란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훨씬 행복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방자치단체나 국가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지원사업이 있다. 취업 교육과 상담도 해주고, 소개도 해준다. 나는 아내에게 이러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첫째도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그곳에서 상담과 교육을 한번 받아 보는 게 어떤지 넌지시 제안을 했다. 아내도 동의를 했고, 좀 시간이 지난 후 상담을 받아왔지만,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장애아를 기르는 기혼 여성이 할 수 있는 직업이 매우 제한적이라는(실질적으로는 없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대답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장애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꿈도 제한해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화가 나지만, 냉정한 현실이기도 했다. 다시 아내의 꿈은 멈춰버렸다.


 얼마 전, 총선이 있었다. 아내는 본래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보통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내가 어떤 후보와 당을 찍어야 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자신이 잘 알아봤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나는 좀 못 미더워서 두세 번 더 물어봤지만, 아내는 자신감이 차 있는 표정으로 조사를 다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속으로 '별일이 다 있네.'하고 생각했고, 선거일 당일 아침에 아내는 선거를 하러 아침 일찍 다녀왔다.


 투표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에게 투표 잘했는지 물어보니, 민망한 표정으로 웃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누구 찍었게?" 이 질문은 불안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왜? 국가 혁명 배당금당이라도 찍었어?" 묻자 아내에게선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아니! 여..무슨 당인가.. 여성당인가? 여성의 당인가? 찍었어!" 갑자기 '여성의 당이라니!' 심지어 자기가 비례대표로 찍은 정당의 이름도 잘 모르고 투표했단 말인가?


 무슨 사연인고 하니, 아내는 지역 국회의원 후보는 잘 알고 갔는데, 비례대표가 이렇게나 많을지도 몰랐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하고 비례대표랑 매치가 잘 안됐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가장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름의 정당에 투표를 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나는 아내를 바라보면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여성의 당!!"


 며칠이 지나고 문득 '여성의 당'이라는 곳이 궁금해졌다. 물론 선거 공보물에서 보긴 했지만, 나에게는 그리 기억나지 않는 소수정당에 불과했다. 그래서 궁금증도 해결해볼 겸, 여성의 당 홈페이지에 검색해서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정말 별거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왜 여성 정치인들은 다 헤어스타일이 짧지??? 내 기억엔 머리카락을 어깨 넘어까지 기른 여성 정치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난 강경화 장관을 참 좋아한다. 일단 멋있다.


 어쨌든, 그들이 무슨 공약을 걸었는지 살펴보았다. 바람이 있다면 무슨 당처럼 허무맹랑한 소리만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무슨 공약인고 하니...


1.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

2. 여성 1인 가구 지원

3. 남성의 육아 휴직 의무화

4. 가정 폭력 및 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

5.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 해소

6. 여성 혐오 근절 등등...


 의외로 멀쩡한 공약에 놀랐다. 물론 자세히 그 면면을 들여다봐야겠지만, 사실 이 정도 공약이면 많은 사람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만약에 이 공약에 동조하여 투표했다고 해도 끄덕였을 것 같지만... 아내는 모르고.. 투표를... 하는 웃픈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인간은 당연 누구든지 혐오받지 말아야 하며, 어떤 존재이건 인권을 존중받아야 한다.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이란 이유로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 성소수자여도 우리가 그들을 미워할 권리는 없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하지 않는 명제가 되어야 한다. 내 종교가 기독교여도 내 직업이 목사여도 난 그들을 미워하고, 지옥에 보낼 권리가 없다. 오직 사랑의 의무만 있을 뿐이다.


 텔레그램 n번방의 사건을 들여다보면, 내 아내와 딸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어느 날, 첫째 딸을 하원 시키려고, 학교에 가는데 학교 주변을 서성이며,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중년의 남성의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실 두렵다. 무섭다. 첫째 딸이 이제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되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눈도 잘 마주치고, 사랑의 표현들을 하는데, 오히려 이런 것을 이용해 이 아이를 착취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왜 이러한 걱정과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그 이유가 뭘까?


우린 여전히 충분히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당당한 사회는 여성만 위하고 여성만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여성이 당당하고 용감하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뤄갈 수 있는 사회는 나와 같은 아빠들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이다. 여성을 배려하는 삶은 남성을 차별하는 삶이 아니다. 약한 존재들이 스스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야 말로 모두가 안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약한 존재를 빼앗고 착취시키는 사회는 인간의 삶이 아니라, 짐승의 삶일 뿐이다.


 나는 소위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여성의 당의 정책에 모두 동감하고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들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 남성의 당이 나와도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독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간에, 어느 한쪽 편만에 서서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편협한 사고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성 정치인에다가 자녀가 장애인일지라도, 그녀가 우리와 같은 가족을 지지하고 그에 대한 정책을 내고, 법률을 제안했으며 공감대를 이끌어냈는가? 아니다. 결국에는 선거 결과로 대답해주고 있다.


 나는 다만, 아내가 안전한 나라, 내 두 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나라를 꿈꿀 뿐이다.


아내와 딸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미래. 그 미래를 위해 난 아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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