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셋과 사는 남자 이야기 -2
아내를 처음 만난 건, 내가 대학원을 수도권으로 가는 바람에 다니게 된 교회에서였다. 생글생글 웃는 게 귀여웠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랑 엄청나게 나이 차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6살 어리기 때문에 그냥 교회 열심히 다니는 여자 사람이었을 뿐이다. 내 성격상 낯을 엄청나게 가리고, 낯선 만남이나 사람을 대하는 것이 몹시도 부담과 스트레스가 되는 성격이라서 딱히 누구와 친해지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정반대로 '싹싹함'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교회 어르신들도 좋아하고, 주변 또래나 언니, 오빠들에게도 귀염 받는 사람이었다. '참 발랄한 소녀'였다.
당시, 나는 새 가족반 봉사와 청년부 예배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아내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으나 가끔이라도 마주치면 아내는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빠!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휙 지나쳐 버리기 일수였다.
결혼하고 나서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냥 대면대면하는 나의 반응을 보고 '저 오빠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분명 아내에게 나의 첫인상은 '이상한 남자'였다는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다니던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게 돼서, 아내가 봉사하고 있는 수요, 금요찬양팀에 같이 소속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찬양팀 전원과 친해지고, 역시 아내와도 친밀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이성으로써 관심이 없었을 때이기도 하다.
서로 친밀해지면서 카톡 연락을 하곤 했는데, 아내는 늦게라도 일일이 답장해주는 반면, 나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되면 무시하고 나중에 답장을 보내는 스타일이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잘하고 있는 카톡이 갑자기 어느 시간만 되면 예고도 없이 (잘 자, 낼 보자, 쉬어~ 이런 말 같은 예고 없이) 뚝 끊기는 카톡을 자주 경험하고 나서 또 생각했다고 한다. '이 오빠 왜 저래?' 그때 나는 아내가 여자 친구도 아니고 썸도 아닌데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연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철벽남)
수요예배나 금요예배는 밤늦게 끝나나 보니, 집이 같은 방향인 내가 아내를 집까지 태워다 주곤 했는데, 가다가 배고프면, 아내네 집 근처 돼지 국밥 집에서 같이 늦은 야식을 먹기도 했다. 아무래도 마주치는 시간도 많아지고, 둘만 있는 시간도 좀 있다 보니 나는 아내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좀 생기기 시작했다. 낯을 무척 가리는 나에겐 싹싹함으로 무장된 아내는 무척 매력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고 발랄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웃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참 소녀 같았다.
지금은 아이 둘을 낳고 서른이 넘어버린 아내이지만, 같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난 가끔 아내를 지그시 오랫동안 바라본다. 20대의 생그러움은 많이 사라지고, 눈가에 주름도 많이 생기고, 축 늘어나버린 티와 츄리닝을 입고, 대충 정리한 기름 낀 머리카락을 넘기지만, 왜 난 아직도 아내가 참 소녀 같을까?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략 3년 정도라고 한다. 그때까지 무슨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던가...(이과가 또...... 나는 문과...) 그래서 그 시기가 지나면 유비, 관우, 장비처럼 부부 사이가 사랑이 아닌 '도원결의'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자주 못 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사랑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물론 아내 입장은 도원결의일 수 있다는 게 함정 카드) 언제까지 나에게 소녀로 보이는 아내 일진 모르지만,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