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노예
요 몇 주간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운동인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비보호 좌회전 차량과 접촉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전거에 블랙박스(?)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 차량의 잘못으로 잘 마무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치진 않았고, 척추 디스크가 좀 튀어나오고;; 갈비뼈 하나가 골절되었다. 병원에 2주간 입원했지만, 그 덕분에 아내는 아이 둘을 온전히 독박 육아를 해야만 했다.
나머지는 이유는 내가 믿고 있는 종교에서 병크(?)가 몇 가지 터졌기 때문이다. 하나는 가까운 지인에게서와 하나는 서울에 대형교회에서이다. 이 대형교회에도 지인이 다니고 있는 교회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믿고 있는 종교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예속화된 상태가 되고, 나 또한 '목사'로써 일종의 책임감과 자괴감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에 있는 대형교회인 ㅂ교회는 청년 목회로 굉장히 유명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매료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 훈련도 받았다. 교단에서도 인정을 받았는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교단의 노회에서 부회장직을 맡을 정도였었나 보다. 그렇게 그냥 개신교 내에서만 유명했던 이 교회의 소식을 온 국민이 알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인분을 먹인 교회', '훈련받다가 뇌출혈로 쓰러트린 교회'라는 아주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의해서다.
나는 본래 반골기질이 강해서, 카리스마 있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 그냥 순전히 개인 취향일 뿐이지만, 덕분에 안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교회를 다니는 지인을 통해서 혹은 그 주변인들을 통해서 몇 마디 듣진 못했지만, 담임목사에게 너무 의존적인 그리고 교회의 특정 시스템에 너무 몰입되어 있는 것을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나와 무슨 상관이던가? 이단도 아닐뿐더러 버젓이 기성교회에서 인정받으면서 목회를 하는 담임목사나 그 시스템에 관해서는 그냥 '훈련이 좀 빡쎈가 보네.'정도의 소감이었을 뿐이다.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자란 교회에선 신앙생활이 그저 그랬는데, 그 교회에선 열심히 하나 보다. 기특하네. 느끼긴 했지만.. 기특한 게 아니라.. 뜯어말렸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물론 내 말을 듣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한국 사회가 그런지 아니면 세계적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한 개인을 '영도자' 혹은 '우상화'시키는 경향이 크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좌파나 우파나 다 똑같다. 심지어 역대 대통령 중 누구는 '반인반신'이라는 데미갓 같은 존재로 인식이 될까 싶다. 종교를 넘어서 즉석에서 질문하고 답을 잘해주는 스님도 무슨 인생의 모든 의문의 해결사처럼 여겨지는 것도 그렇고, 특히 개신교 내에서는 특정 목사들이 하나님의 대언자, 혹은 예수 다음 가는 사람으로 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본래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과 다르게 '만인 제사장'이라는 사상이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모두 다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가톨릭은 신부님이 예배를 주관하고 인도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꼭 목사나 전도사가 아니어도 주도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릴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계급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목사나 그 목사의 사모, 전도사는 계급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서는 '직업'이다. 하지만, 이 직업의 급은 없다. 말단 사원이나 목사나, 사장이나 목사나, 거지나 목사나 급은 똑같다는 이야기이다. 더 신랄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반 성도나 목사나 역할이나 다른 것뿐이지, 급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교단에서는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부른다. 한자가 들어가서 고상해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의 노예'라는 말이다. 그런데 종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왕'의 삶을 사는 목사들이 자주 보인다. 자신이 말이 무슨 하나밖에 없는 진리인양 이야기하고, 순진한 성도들을 세뇌시키고 자신의 권위에 노예화를 시킨다. 한 번 노예화가 되면 거의 빠져나갈 수가 없다. 성도의 머릿속엔 목사를 거부하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상한 논리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인분 먹인 교회'의 뉴스를 인터넷에 보면서, 거기에 달린 댓글이 아주 가관이었다.
ㅂ교회의 교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억울하다.' '언론의 소설이다.' '교회가 잘못 없이 공격받고 있다.'라는 댓글을 거리낌 없이 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버젓이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훈련의 시스템이나 담임목사는 건들지 말아야 할 '성역'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설사 오해라고 할지라도, 한 개인의 일탈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던 리더는 '억울하다'라고 외치는 자인가? 되묻게 된다. 리더는 '억울하다'라고 외치는 자리가 아니라, 특히 교회는 그렇다. 개신교인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면서 예수의 길을 가기 원한다. 예수가 고발당하고, 채찍에 맞고 살갗이 찢어지고 십자가를 지고 고행의 발걸음을 옮길 때 '억울하다!'라고 외쳤는가? 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책임졌다.
리더는 그런 자리이다. 책임지는 자리이다. 목사는 더더욱이 그렇다.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면,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책임지는 게 목사다. 교회의 리더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 속에는 책임지는 것은 없고 온통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치가 떨린다. 자신의 교회와 감정 믿음만 소중하지, 타인의 아픔은 공감하지 못하는....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종교적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특히 양복이 입은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새벽에 가까운 지인 자신의 쫓겨난 교회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상담해 왔다. 부부가 함께 다니지만, 그 교회의 설교에 의문을 품었고, 잘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퇴출당했다. 하지만, 아내는 계속 그 교회에 다니게 했다. 그리고 교묘하게 아내를 예속화시켜, 남편인 자신을 깨닫지 못한 자,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로 만들어 버리고, 부부간의 불화가 늘어가게 했다. 욕이 절로 나왔다. 하나님 믿고 기도하면 돈 많이 번다는 쓰레기 같은 설교를 늘어놓고는 그것에 의문을 품으면 교회에서 배제시켜 버리고 왕따를 시켜버린다. 목사가 하나님인가?
목사도 사람이다. 실수 투성이 사람이다. 죄인이다. 아니 죄인 중의 괴수이다. 그럼에도 성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목사를 따를만한 이유는 오직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믿음으로 끝없는 고통의 몸부림을 쳤었고, 치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삶을 통해 기도해서 재물을 얻는 게 아니라, 자기 부인과 희생을 통해, 새로운 돈의 가치로 매길 수 없는 생명의 삶을 얻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데에 있다. 목사가 이야기했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며, 예언도 아니고, 특별한 깨달음의 말씀도 아니다.
목사의 사명은 자신을 따르는 수천수만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단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예수가 수천억 대의 부동산 자산가도 아니며, 유능한 사업가도 아니다. 그는 허름한 옷을 입었고, 편하게 머리 뉘일 만한 곳도 없었다. 다만 그는 진리를 따르는 삶을 몸소 보여줬고, 십자가에서 완성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스승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부와 명예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이뤘다.
목사라는 존재는 전혀 따를 만한 존재가 아니다. 오직 예수만이 따를만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