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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l 28. 2020

쿨하지 못해 미안해.

여자 셋과 사는 남자 이야기-5 : 사과하는 삶

 첫째 아이가 매주 화요일마다 학교에 간다. 이 아이가 가진 장애 때문에,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유치원을 다닐 때도, 심지어 치료 재활 센터에 다닐 때도, 내가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이 질문의 다른 뜻은 첫째 아이가 수업받으면서, 혹은 치료받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마음을 어렵게 했거나, 사고를 치지 않았는지 묻는 표현이다. 아내는 첫째 아이의 나아진 점에 더 집중하는 반면, 나는 이상하게 이 아이가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사실 아이의 긍정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다. 때론 머릿속으로 이 아이가 사고 쳤을 경우 어떻게 반응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지 수십 번씩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도 한다.


 내가 지도하는 교회 학교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엄마 아빠도 잘 알고, 각자 어떤 성격이고 심지어 집안의 분위기도 알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에게 때론 버릇없거나 못되게 굴어도 전혀 마음 상하거나 화도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인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첫째 아이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다 나와 같은 마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늘 밖에서는 아이를 더욱 강하게 통제할 때가 많다. 이 아이의 표현 방식은 그 또래와 같지 않기 때문에, 때론 눈총을 받기도 하고, 시선을 끌기도 한다.


 부모가 옆에서 통제해도, 불편한 시선이 꽂히는 아이가 부모와 완전하게 떨어진 초등학교 생활은 어떨까? 너무 불 보듯 뻔하다. 물론, 도움반 선생님이 많이 노력해 주시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그렇듯이, 많이 기다리고 인내의 시간이 지내야 겨우 통제가 될까 말까라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은 사실 부모를 많이 지치게 한다. 특히 아이들의 주 보호자의 심리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때론 장애아를 가진 엄마가 아이를 먼저 죽이고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고,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들에게 대부분 '우울증'이 발견된다는 통계가 있기도 하다.


 나는 아무래도 주 6일간 일하기도 하고 저녁 예배도 있기 때문에, 아내가 대부분 아이들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 나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이런 부분에서는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이들을 놓고 친구를 만나거나 지인을 만난다고 했을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내 약속을 취소해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고 아내를 외출시켜주는 편이다.(그래서인지, 아내가 한 번 나가면 귀가 시간이 꽤 늦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첫째 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는 날이면 아내는 나에게 할 말이 많아진다. 첫째 아이가 짜증내고, 소리 지르는 거야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놀라지도 않지만, 최근에 꽤 신경 쓰이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첫째 아이 반 친구 중에 한 여자 아이가 예쁜(?) 머리 끈을 하고 왔었나 보다. 우리 첫째 아이는 그걸 보고 머리 끈 만지느라고 그 친구를 좀 귀찮게 했나 보다. 친구가 여러 번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는 통제가 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선생님의 개입이 있었고, 우리 아이는 역시 자지러졌다는 것이다.


 아내는 첫째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엄마들하고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첫째 아이가 좀 불편하게 굴어도, 친구들이 자신들의 엄마를 통해 이 아이를 이해하고, 조금 참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사실 본의 아니게 첫째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그 친구가 엄마에게 어떻게 말하냐에 따라서, 학교 생활이 굉장히 피곤해질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아내는 결국 그 친구의 어머니에게 따로 연락해서, 사과를 했다. 마음이 참 복잡했다. 사실 아내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 아이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라는 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인데, 첫째 아이의 잘못이라고만 하기에도 가혹하고, 가정교육의 부족함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렵다. 아내가 아이 대신 사과함으로 어찌어찌 잘 마무리된 것 같았지만, 몇 주간 이 사건의 씁쓸함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아이가 잘못하면, 내가 대신 사과해야 할 때가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이다. 사과 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주의가 이제는 사과를 자주해나가야 하는 삶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의 삶을 살면서 나는 그래도 사과를 적게 해 봤다. 본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가풍에서 자라기도 했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즐겨하는 성격도 아니기에, 사과할 일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뭐 목사가 성격이 그러냐?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게 나의 진짜 타고난 성격이며, 사실 목사로서의 목회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뭐...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즐거운 불편함이랄까?


 사과를 자주 해야하는 삶은 그리 내가 바라던 삶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럴 때면 쿨하게 사과하고 잊어버리면 좋겠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은 금방 잊어도 내가 사과를 하거나 잘못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내 자신을 괴롭히기에, 사과하는 삶의 쿨함이 있길 기도해본다. 이런 나의 쿨하지 못한 태도가 내가 이 아이를 더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 


 어제는 아내가 둘째 아이를 데리고 저녁 약속을 나가는 바람에, 내가 첫째 아이를 밥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예전에는 엄마가 없으면 잠자기를 거부했던 아이가, 이제 아빠와도 편하게 침대 위에 누워있다니, 어떻게 보면 참 놀랄만한 일이다. 아이의 자는 얼굴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콧등이 시큰해진다. 


'사실 널 힘들고 어럽게 하는 게 너의 잘못은 아닌데...'


 평화롭게 잠든 아이의 얼굴 보면서, 내일도 이렇게 평화롭길 원했다. 


"세상이 이 아이를 싫어하고 거부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너를 사랑할 거야."


 영원한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뭐 별건가? 이 아이를 키우면서 때론 지치고, 짜증이 나고 화도 나도, 이렇게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 아이를 향한 놀라운 사랑의 감정들이 차오른다. 그리고 내일도 사랑을 살겠다고 결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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