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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선전포고 I

#77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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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덥고 있는 가장 큰 바다, 태평양. 그 뜻은 매우 평화롭다는 의미다. 거친 파도나 바람이 없는 평화로운 바다.


오래 전 마젤란이 남미 맨 끝에서 태평양 입구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새로운 바다를 본다. 조금 전 그 지옥 같던 바다에서 너무도 잔잔하고 양광이 내려 쪼이는 바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바다에다 이름을 붙인다.

"너무도 평화로운 바다. 패시픽(Pacific)!"


맨 앞의 알파벳을 소문자로 해 pacific이면 평화롭다, 그리고 온건하다는 말. 그래서 강경파, 호전 주의자와 반대 의미로 평화주의자, 온건파를 퍼시픽으로 시작하지 않던가?


그런데 지금 이곳은 그렇지 않다. 정반대다. 4년여에 걸친 처절한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북 태평양! 소련의 맨 동쪽 쿠릴 반도, 그리고 더 위 쪽으로 베링 해가 있다. 알라스카와 연결되는 바다. 바로 그 아래로 지금 거대한 함대가 파도를 거르며 가고 있다.


*출처: 39-45.org



한 두 척이 아니다. 수 십 척! 그리고 톤수가 각각 몇 만 톤이나 되는 대형 함선들이다. 일본의 연합함대다.



6척의 함대형 항모



‘키리시마’와 ‘히에이’ 주력 전함 2척과 숱한 수반함들이 주위를 지키며, 선두로 6척의 항공모함이 간다.


모두가 다 일본의 정예 함대형 항모.


그 중엔 세계 최대의 항모도 2척이나 있다. 초대형 순양 전함과 전함의 건조를 중단하고 그 선체 위에다 활주로 갑판을 덮어, 항모로 만든 아카키와 카가, 가히 세계 최대 배수량의 항모들(미 항모 렉싱톤이 활주로 길이가 조금 길지만 톤 수에선 작다).


그리고 일본 항모 조선 기술의 정수만을 모아 만들었다는 중형 항모 히류와 소류. 히류는 날아다니는 용, 소류는 푸른 용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2척의 항모,이후 벌어진 많은 해전 중, 비교적 오래 살아남아, 운이 좋았다는 쓰이하쿠, 쏘우하쿠.


*카가. 배수량이 3만 8천 톤으로 진주만 기습 6척 항모 중 가장 크고 전 세계에서도 톱이다. 출처: freerepublic.com



여기엔 또 많은 수의 전투기와 급강하 폭격기, 어뢰 공격기가 흔들리는 갑판 위에 여러 겹 줄로 고정돼 있고, 선내에는 더 많은 수의 파일럿들이 긴장 속에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가 숙련된 파일럿들. '사람 죽이는 자'라는 별명의 항공전대 사령관 야마쿠치 아래, 죽어라 훈련을 받아 왔고, 또 중일 전쟁에서 이미 전투에 참가한 경력도 많기에 다분히 프로페셔널!



목표는 머나 먼 하와이!



그런데 이들이 지금 어디로 가는 가?


하와이다 여러개의 섬 중 하나, 오아후 섬. 그 섬 아래쪽에 항구가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산 아래 자리 잡은 진주만. 거기 미 해군 태평양 함대의 군함들이 모두 닻을 내리고 있다.


대형 항모인 렉싱톤과 엔터프라이즈. 그리고 메인 배틀 십(Main Battle Ship)이라 하는 숱한 주력 전함들! 펜실베니아 급과 테네시 급, 웨스트 버지니아 급 각각 2척을 포함, 그외 여타 구식 전함들이 있다. 대부분이 3만 톤 이상으로 무지막지한 거포를 지닌 대형 철갑전함이다(당시의 구축함들이 1천톤 정도였으니, 전함이라는 게 얼마나 큰 건 지 알 수 있다).


바로 그것들을 치기 위해, 이렇게 일본 북방 맨 위쪽 섬을 떠나, 북 태평양 험한 파도를 헤치며 가는 것이다. 피칭과 롤링으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여분의 연료 드럼통들이 선내에 굴러다니고, 중간 중간에 급유함에서 주는 연료를 받으며 가는 항로.


*길이 190미터 배수량 3만 1천 톤의 전함 메릴랜드, 같은 클래스인 웨스트 버지니아와 함께, 진주만 정박 중 폭탄과 어뢰를 맞는다. 출처: hazegray.org



누구나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쳤다면, 그 루트를 일본에서 하와이까지의 직선 투르로 생각한다. 그래서 서쪽에서부터 쭉 직진으로 항해해 들이친 걸로.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본 홋카이도 위쪽 섬들은 위도 상 하와이보다 한참 위에 있다. 일본 함대는 태평양 북쪽으로 많이 치우지다가 점점 남하, 하와이 북쪽으로 점차 접근해 가면서 북방 수 백 킬로 전에, 함재기들을 날리는 형태였다.



전쟁은 머리 좋은 해군이 일으켰다



지금에 와 돌아 볼 때, 일본에선 이런 얘기를 한다.


"태평양 전쟁이 일으킨 건 순전히 해군이야."

머리 잘 돌아가는 해군이, 머리 나쁜 육군을 꼬드겨 전쟁에 뛰어들게 했다고.


그것은 또 이런 얘기로 연결된다.

"머리 좋은 해군이 주범이고, 머리 나쁜 육군이 종범이다."


그럼 일본 공군은? 당시 일본엔 공군이라는 조직이 없었다. 아니 전투기, 폭격기 등의 항공 세력은 어디에 속하고? 특히 제로 전투기나 그 다음으로 유명한 하야부사(매) 전투기는?


육군과 해군이 각자 항공대라는 걸 갖고 있었다.

육군 항공대, 해군 항공대다. 그래서 제로는 해군 항공대 소속이고 하야부사는 육군 항공대 소속. 그런데 하야부사가 제로만큼 성능이 좋은 게 아니고,괜찮게 활약한 것도 초기의 버마 전선 등 한정 돼 있어, 제로의 인기도에 비하면 한참 아래다.

전쟁 이후 일본의 전쟁 영화에도 육군에 관한 건 거의 없다. 대부분이 해군 쪽이다.


최근의 제로 전에 대한 영화 ‘영원의 제로’라든가, 일본에 떨어뜨리려고 또 다른 원폭을 싣고 오는 미 군함을 격침시키는 ‘로렐라이의 노래’가 들어가는 잠수함 영화, 그리고 야마도 전함의 최후를 그린 영화 등, 대두분이 해군 쪽이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해군 쪽만이 인기가 좋고 육군은 땅 바닥이다. 그들이 전쟁의 주범이고 육군은 멍청한 종범인데도 말이다(그렇다고 해도 전쟁 기간 중 범죄는 대부분 육군이 저질렀다. 잔혹한 범죄의 상대가 되는 상대국 병사나 민간인들은 바다에 살지 않으니까).


지금 그 주범, 해군이 진주만을 치러 가는 길.



진주만 기습!



항모 부대의 기함 아카키. 함교 높이, 공격 개시의 깃발이 휘날린다. 지난 달 11월 26일 일본을 출발 했으니, 12월 8일 새벽. 무려 13일 동안 은밀히 북 태평양을 돌아 내려 온 것이다.


드디어 갑판 위의 함재기들 엔진이 걸리기 시작한다. 필살의 어뢰를 배 밑에 매단 97식 함공(함상 폭격기 a.k.a.어뢰 공격기).


*출처: hobbymastercollector.com


*출처: findmodelkit.com



그리고 이들을 지켜줄 함상 전투기 제로.


*일본 항공 기술력을 분명 오버하는 일류 전투기. 도그 화이팅을 벌이면 당해낼 연합국 전투기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곧바로 카운터 전법에다 더 좋은 전투기를 만들어낸다. 출처: wikimedia.org



1941년 12월 8일 아침. 6척의 항모로 부터 승무원들의 만세 소리를 뒤로 하며 이륙한 각종 함재기 183기는 오아후 섬을 양쪽으로 돌아 진주만 상공으로 들이 닥친다. 그리고 일본 기습대는 ‘나 잡아 잡수~’하며 평화롭게 늘어 서 있는 전함들을 발견한다.


즉시 북쪽 바다의 항모들에게 날리는 무전.


“도라! 도라! 도라!”

아수라 장의 시작이다. 99식 항폭이 필살의 폭탄을 투하하고, 항모 갑판에서부터 매달고 온, 무거운 어뢰를 수면 위로 떨어뜨리는 97식 함공! 그리고 기관총으로 전함 갑판의 고사기관포 사수들을 훑는 제로 전! 평화롭던 일요일의 진주만은 지옥으로 변한다.


*화염에 휩싸인 진주만의 전함 웨스트 버지니아. 작은 구조정이 다가가는데, 그들이 뭐를 할까? 출처: wikimedia.org



그런데 그때 지구 반대쪽에선?



같은 시각, 히틀러와 유럽에선?



나치 독일의 전격작전이 프랑스를 굴복시킨 뒤 1년 반. 그 뒤 발칸 반도와 그리스를 매우 스피디하게 점령하고, 또 북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롬멜의 기갑 군단이 시동을 건 게 10개월 전.


그리고 또 있었다. 히틀러가 그 해 초여름에 시작한 진짜 거대한 전쟁. 소련과의 전쟁.


독일군은 모스크바까지 거침없이 전진, 소련 심장부를 덮치기 직전, 생각보다 일찍 온 추위에다가 진흙 밭, 또 시베리아로부터 온 증원부대의 출현, 침공 이래 처음 만난 몹시 안 좋은 조건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태가 바로 일본의 진주만 기습 즈음.


그러나 추위라는 것 빼고 무적의 독일군 실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닌 것!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매우 우세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무기의 질과 훈련 량과 그와 더불어 ‘전투 메소드’에서 워낙에 우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틀러에겐 오직 승리만이 기억에 있었다. 지금까지 격파한 소련군 사단 수는 1백 개에서 2백 개가 되나? 하루에도 수 십 킬로 씩 전진을 지속했고,일단 포로로 잡으면 60만에서 70만, 실제 모스크바를 200킬로 앞에 둔 ‘비야즈마’ 포위전에서도 붉은 도시를 지키겠다고 나온 소련 군 60만 명을 포로를 잡았으니까.


따라서 세상은 독일을 축으로 돌고, 그 중에서 히틀러 그 자신을 위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때. 이 때 경천동지의 소식이 지구 반대쪽에서 날아든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기습은 대단히 성공해, 진주만 내의 모든 전함들은 격파돼 침몰!"


"그 뒤, 일본 함대는 단 1척의 손실도 없이 유유히 일본으로 돌아 가."


히틀러는 혀를 내 둘렀다.


"세상에~ 미국의 전함을 죄다 박살 내?"


전함이라는 게 뭔가? 바다에서의 최 상위를 점하는 거대 무기다(당시는 2차 대전 초기라, 항공모함보다 전함의 전투적 가치가 훨씬 높았다). 자기네도 그렇게 많이 만들어내려 했으나 겨우 2척만을 갖곤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나? 그러나 그 중 한 척인 비스마르크는 대서양으로 나가 진작 침몰. 그리고 지금은 단 한 척뿐이다.


티르피츠 한 척!


그것도 비스마르크가 격침된 이후, 바다로 나가지 못 하고 있다. 영국 놈들의 전함이 잔뜩 밖에서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전함들을 하루아침에 거의 9척까지 격침시켜?


*이게 전함이다! 바다에서는 최강! 거대한 해상 전투 요새. 2차 대전이 터지기까지 비행기는 항해 중인 전함을 격침시킬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출처: wikimedia.org



히틀러는 상당히 고무된다. 일본 이 친구들이 한 걸 보라고!


"대단한 친구들이다. 역시 예전,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전멸시킨 실력이 어디 가는 게 아니야."


태평양 전쟁이 터지기 전 까지, 일부 유럽 인은 물론 미국인까지 일본이라는 나라를 신비롭게 생각하고, 일본군에 대해서, 그 전투력을 과잉 업그레이드 시켜 보는 경향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그 넓은 아시아에서 오직 하나, 완전한 독립 국가로서 서양에 견줄만한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청일 전쟁에선 중국을 이기고, 그 뒤, 러일전쟁에선 거대 제국 러시아에게 승리를 거둬, 치욕의 조약을 강요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들은 조선이나 만주, 대만 등의 식민지를 획득하고 원래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까지 집어 먹었다. 그 뿐인가? 지금은 아예 중국으로 쳐들어 가, 그 넓은 영토, 그 많은 인구들을 상대로 용약 우세한 전쟁을 하고 있는 강국. 그래서 일본군에겐 약간의 신비로움까지 덧붙인 경이의 눈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그들 군대는 너무도 용맹하다. 죽음을 모르고, 죽어도, 죽어도 돌격하고 백병전을 강행한다. 따라서 이들과 붙어선 이길 수 없다."


*초기의 서양인에게 일본군은 죽음을 모르는 군대로 알려져 있었다. 출처: i.redd.it 



그리고 히틀러는 이런 쪽으로 사고를 더듬는다. 일본이 미국을 기습했기에 미국이 참전할 거라는 우려보다, 다음 단계를 매우 낙관적으로 예단한 것.


"일본 해군이 태평양이면 일본 육군은 소련을 친다!"


더구나 일본dms 러시아와 러일 전쟁이란 큰 전쟁을 했고 얼마 전에도 쌍방 여러 개 사단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투를 시베리아 아래 쪽 몽골 국경에서 벌이지 않았던가?


이 노몬한 전투는(소련과 몽골에서는 ‘할힐 골 전투’라 한다. 그리고 이게 맞는 거 같다), 전투라기보다 전쟁에 해당하는 큰 스케일. 연 1천 3백대의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이고, 대량의 탱크나 장갑차까지 동원돼, 드넓은 들판에서 기갑전을 벌였으니.


*당시 소련 기갑부대의 주력인 전차 BT-7. 출처: wikipedia.org



인간의 속성 중의 하나는 자기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사고를 한다고 하지 않던가? 히틀러는 그게 일반 사람보다 더 심한 편.


“육박전에선 당할 자 없는 그 용감한 일본군이, 이제 시베리아로 쳐들어 갈 거야!”



소련은 이제 협공 당한다



"그럼 소련은 양쪽에서 협공을 당한다고! 동쪽에선 우리 독일이. 서쪽에서는 일본이!"


바로 2년 전, 자기네와 소련이 합쳐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의 상황. 자기네는 서쪽, 얼마 뒤 소련군은 동쪽. 그래서 폴란드를 손쉽게 항복시킨 일.


그렇다. 일본이 동쪽에서부터 소련 땅으로 침공을 개시한다면 바로 그런 케이스가 되는 게 아닌가?


히틀러는 진주만 기습 직후 자신 있게 발표한다.


"미국한테 전쟁을 포고한다."


*출처: nicolesommoreking.com



실제 순수 독일 인구만 6천 5백만, 거의 3배 가까이 되는 1억 8천만 소련과 싸우면서, 다시 또 1억 3천만의 미국한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대미 선전포고 II'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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