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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환상의 경 탱크 M-24 채피

#41






라인 강을 건너는 신형 탱크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하고, 대륙 내부로 진격! 드디어 라인 강을 건너갈 때다. 이때 미군의 신형 탱크 한 종류도 강을 건너고 있었다. 나치 독일이 붕괴하고, 베를린에서 연합군 기갑부대 전승 퍼레이드가 열렸을 때도, 이 신예 탱크는 당당히 참가한다.


경 탱크 M-24 채피다.


그리고 이런 평을 얻기도 한다.


"제2차 대전 최고의 경 탱크."



*채피. 크고 묵직하진 않아도, 경 탱크 수준에서의 공격, 방어, 기동, 이 3가지가 제법 갖춰져 있는 듯하다. 출처: wikimedia



가장 말을 잘 타는 지휘관



채피는 원래 미 육군 기병대 지휘관 이름이다. 애드나 알, 채피, 쥬니어. (Adna R Chaffee, Jr.) 쥬니어가 붙은 건 군인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가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


그리고 그는 아직도 기병대가 중요시되던 당시, 미국에서 기마술 좋은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기병을 버리기로 작정한다. 앞으로 탱크의 시대가 올 거라고 예측했기 때문.


"기갑 전력이 충실해야 전쟁에 이길 수 있다."



*사진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다. ‘Father of the Armored Force’ 미 기갑부대의 아버지. 출처: wikimedia



그렇지만 1920년 대의 탱크라는 건 찬밥이었다. 대다수 군 상층부는 제1차 대전 때, 참호전에나 써먹는 무기로 여긴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심하게 어필한다. 


"탱크는 미래 지상전 에이스다."


그러나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도 탱크를 이렇게 까지 무시했다.


"탱크란 건, 신데렐라 무기야."


어쩔 수 없었던 참호전에서 갑작스레 스타가 된 무기.



*참호전 돌파용 무기. 그런데 언제 또 그런 전쟁이 있겠어? 1차 대전 후 유럽을 비롯해, 대다수 군 상층부 생각이었다. 출처: infopls.com



그러다 세상이 확 변한다. 히틀러에 의해서다.



독일의 전격전



'블리츠 크릭!' 독일 기갑부대의 눈부신 진격이다. 폴란드가 순식간에 점령당하고, 프랑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유린당한다.


맙소사! 대 육군 국 프랑스가? 정신이 번쩍 든 미국. 서둘러 탱크 개발에 들어가고, 기갑 군을 창설한다(진주만이 터지지 않았을 때다).


지휘관은 오랫동안 기갑 강화론을 펼쳤던 채피(이 외에 기갑론자가 있었는데, 그는 '패튼'이다)!


채피가 기갑 군의 본격적 지휘관이 된다. 독일을 능가하려는 탱크의 개발도 서두른다. 언제나 늦게 시작하지만, 막대한 자원과 우수한 공업력으로 결국 가장 질이 높은 군대와, 장비를 보유하게 되는 미군. 그런데 너무도 애석한 일이 일어난다. 채피가 바로 다음 해에 죽기 때문이다. 미국의 참전 직전이다.


병명은 암. 그의 기갑 군이 제1기갑 군단으로 오더가 바뀌고, 북 아프리카에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에게 항복을 받아낸 뒤 다시 유럽 본토로 진출, 독일 제3제국을 붕괴시킬 때까지 그 장렬한 전차전을 보지 못 하고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것이다.



*채피는 이런 날을 보지 못 했다. 그가 키운 기갑부대가 독일 탱크를 부수며 전진하는 걸. 출처: worldwarphotos.info



배스 체어 해리어(Bath chair Harrier)



군인 집안 출신으로 기마술의 일인자였으며 기병대의 주요 지휘관이었으나 기병대를 버리고 탱크에 몰입한 사람.


대부분의 경우, 나이 든 사람은 자기가 잘 했던 분야, 오래 몸 담았던 분야에 대한 애착과 고집이 강하다. 그래서 수구 보수적 사고로 흘러, 새로운 것을 거부한다.


영국 해군에는 이런 류의 제독들이 있었다.

"배스 체어 해리어(Bath chair Harrier)"라고.


흔들의자에 앉아, 사냥개(해리어)처럼 해군의 진보를 방해하는 늙은 제독들. 그러니까 자기 시대, 자기들 사고방식이 가장 좋다는 것.



*영국의 위풍당당한 전함 '아작스'. 이런 전함들이 건조될 때, '흔들의자의 사냥개'들은 마냥 찬성만 한 게 아니었다. 출처: imgur



그러나 채피는 달랐다. 해리어 식 인간이 될 확률이 많았으나, 미 육군의 장래를 위해, 그는 자기를 깨고 '진보'를 택한 것이다.


그래서 2차 대전 최고의 경 탱크에 그의 이름이 붙는 건 당연한 일.



전쟁이 끝난 후의 채피



채피는 전후,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한테 공급된다. 대부분의 나토 회원국을 비롯해 무려 30개국!


노르웨이는 주포를 프랑스 제 90밀리로 바꿔 비교적 최근인 90년까지 탱크 디스트로이어로 사용했으며(새 명칭 NM-116이다), 일본도 그들 유일의 기갑사단인 제 7사단에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노르웨이 육군이 장기간 걸쳐 사용한 90밀리 포 대(對) 전차 사냥 차 채피. 출처: pds21.egloos.com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일어난 여러 전쟁에서도 쓰인다. 파키스탄에 공급돼 인도 파키스탄 전쟁에 불을 뿜었으며, 프랑스는 두 군대의 전쟁에서 채피를 투입한다. 알제리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다.


그리고 한 곳 또 있다.

'한국전쟁.'



채피가 한국에 상륙하다



기습 남침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다시 한강을 도강, 충청도까지 내려왔을 때다. 그 선두는 3사단과 예하 기갑부대. 북한군 3사단은 한국전 당시, 그 기동력과 전투력으로 미군의 혀를 내두르게 했던 부대다.


사단 병사 모두가 다 사기가 높고, 전투력이 유달리 강했던 북한군 정예(지금도 개성 위쪽에 주둔해 있어, 여차하면 남침 선두에 서게 될 사단이다). 그리고 그 선봉은 강력한 주포에 장갑이 좋은 T-34/85였다. 두 말이 필요 없는 2차 대전, 최고의 탱크.



*T-34/85, 채피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특히 저 85밀리 탱크 포의 강렬함! 출처: ytimg.com



그리고 그들의 전진을 막고자, 일본에서 긴급 투입된 미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 제 24사단과 역시 예하 전차 부대. 



한반도 최초의 기갑전



때는 한국 전 발발 이후 열흘. 기갑 전이 터진 곳은 충청도 조치원 부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천안에서 조치원 사이에 있는 전의 면. 지금이야 수많은 도로가 있으나, 당시에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로드 넘버 원'. 바로 1번 도로가 지나가는 곳(예나 지금이나 1번 도로는 확실히 북한의 주 침공로다).


일본 주둔 미 제 24사단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부산에 상륙, 이곳에 진을 친다. 정말 가벼운 마음이었다. 이때 가지고 온 게 M-24 채피. 자기들은 당대 최고의 독일군과 일본군을 굴복시킨 군대 아닌가?


그런데 북한군은 듣도 보도 못한 군대. 그런 놈의 나라가 있었어? 군대도 있었고? 그리고 그것들이 무슨 탱크를 운전해? 길가에 꼴아 박지 않으면 다행이지...


점령군으로서 일본에 진주, 세월아 네월아 보냈으니 무슨 심각함이 있을까? 피크닉보다는 약간 위험성이 따르는, 일종의 사냥행? 맥아더 회고록에 이런 게 쓰여 있었다.


그가 일본의 점령군 사령관으로 동경에 있을 때. 

"내 부관은 차에서 내려 관사로 들어올 때까지 짧은 시간에, 무려 열두 차례 이상의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돈 받고 몸 파는 일본 여자들...


더군다나 그들이 갖고 온 탱크는 채피. 논밭과 개울이 많고, 다리가 무거운 걸 버티지 못하는 일본 국토 전용의, 18톤 경 탱크.



*M-24 채피. 경 탱크라는 건 원래 정찰과 수색이 주목적이다. 그리고 소프트한 목표에 대한 사격. 그래서 주포가 약해 보인다. 출처: americangimuseum.org



또 채피의 탱크 포라는 거. 당시 대다수의 탱크들이 야포나, 대전차 포, 아니면 고사포를 가진데 반해, 채피는 쌍발 폭격기 B-25 미첼의 포를 데려다 포신에 얹어놓았다.


나중에 우리 국군에 도입된 M-36 잭슨은 90밀리 강력한 포를 달았는데, 이는 미군의 고사포 M1을 탱크 포로 개조한 것이다. 그래서 완전 하드 펀치.



*잭슨의 주포, 원래 고사포였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준다. ‘한 방이면 끝나~.’ 출처: tanks-encyclopedia.com



그러나 채피는 다를수 밖에..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일본의 민간선박이나 소형 수송선을 때려잡을 때 쓰던 포.


관통력이 최우선인 전차전에서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용약, 전의면 1번 도로 근처에서 포진하고, 전투 준비를 한다. 지극히 낙관적 생각을 하며.


"우릴 보면 그대로 도망갈 걸."

(한반도에 최초로 온 미군들은, 진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멸한다. 미 24사단 기갑부대, 북한 3사단 기갑부대한테 전멸!



케세린 패스 이래의 치욕!



위키피디아에선 이때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채피에 비해 북한군 탱크들은 강했다. 

Better armed, better armored, and better crewed medium tanks.

(두꺼운 장갑에다, 커다란 주포, 그리고 잘 훈련된 승무원의 중형 탱크였다.)


채피가 쏘아대는 75밀리 포는 북한 군 T-34/85의 장갑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가고, 뒤이은 T-34/85의 반격으로, 채피는 한 방에 날아간다.



*B-25 미첼 폭격기, 4정의 12.7밀리 기관총 아래쪽에 75밀리 포구가 보인다. 채피는 이걸로 2차 대전 최강 탱크와 붙었으니... 출처: wikimedia



또 다른 무기도 있었다. 북한 3사단 보병들의 대 전차 라이플! 그게 채피의 경장갑을 뚫어버린다. 소련군이 독일 탱크들과의 싸움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대전차 라이플이다.



*대 전차 라이플. 출처: deviantart.net



보통 15킬로가 넘고, 대구경 철갑 총알을 쏘기에 반동이 엄청 세다. 그 대신 경 장갑이라면 충분히 관통.


일본의 '에어리어 88', '팬텀 무뢰' 등의 작가인 新谷(신타니라고 읽나?), 바로 그 '신타니 가오루'의 어떤 작품을 보면, 은행 강도들이 탱크를 훔쳐서 은행을 터는 게 나온다. 경찰차들이 출동하나, 한 방에 그냥 부셔버리는 거리의 언터처블! 그런데 참전 군인이었던 동네 할아버지가 이 대형 라이플을 가지고, 그 탱크를 뚫어버리는 장면이 있다. 허나 할아버지는 그만 숨이 끊어진다. 반동이 너무 강했기 때문.


어쨌든 미군 기갑부대가 북 아프리카 캐서린 패스 첫 전투에서, 독일 군에게 대 패한 것처럼, 충청도 조치원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이틀간의 전투에서 채피 7대와 나중 다른 1대도 파괴되는 치욕을 겪는다. 그리고 낙동강까지 밀린다.



채피, 2선으로, 그러나 국군 도입!



이제 미군은 채피를 2선으로 후퇴시키고 제대로 된 탱크를 내 보낸다. M-36 잭슨, M-4 이지에이트, 그리고 M-46 패튼. 그리고 우월한 항공력과 함께, 복수에 나선다.


한 대, 두 대, 불타오르는 북한군 T9-34/85 탱크들. 다 알다시피 38선을 넘어온, 북한 탱크와 자주포는 단 한 대도 굴러 돌아가질 못 했다.


그리고 한국군한테도 기갑전력이 생긴다. 바로 그 M-24 채피의 한국군 이양이다. 비록 저(低) 구경에 충분치 못 한 장갑이었으나, 그래도 최초의 탱크가 국군에게 도입되는 순간이었다.



*출처: geocities.ws



이제 훈련이 시작되는데(아마 부산 동래 쪽인가?), 그러나 전력화까지 이르지는 못 한다. 약 2달 후, 미군이 채피 전량을 회수해 갔기 때문. 대만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다. 물론 훨씬 더 펀치력 좋은 M-36 잭슨을 얻게 되나, 어찌 됐건 채피와 국군의 인연은 이렇듯 짧게 끝났다.


전쟁 발발 첫 해인 1950년, 충청도 천안 아래에서 첫 전투를 벌였고 다시 국군에게 넘겨져 대한민국 육군이 최초로 가져 본 탱크.


그러나 그 것은 늦가을의 두달 뿐이었다. 우리 국군에게 있어, 채피가 환상의 탱크로 남는 게 바로 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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