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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May 03. 2023

아이의 슬픈 추억은 엄마에게도 아프다.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버림받음에 대한 첫 기억은 대부분 동생이 태어나 할머니 집에 맡겨졌을 때..."


  동생이 태어나던 날 밤,  주위에서도 어릴 때 동생이 태어난 후 할머니 집에 맡겨졌던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는 동생이 태어나던 날, 집에서 아빠와 잠을 자고 있었던 나는 아빠가 느꼈어야 할 미안함과 안스러움을 엄마에게 느꼈다. 할머니에게 맡겨지기는 커녕 다음 날 부터 엄마 병원을 찾아가 함께 지내며 자다가 일어나서도 분유를 타오곤 했던 나였다. 






  그날은 딸이 생각났다. 밝고 명랑한 첫째가 가끔 한 번씩 예민해질 때가 동생에게 화가 났을 때였다. 4살 터울인지라 막무가내로 화를 내면 가끔 지나치다 싶기도 했다. 토요일 아침이라 둘이 놀자며 다락으로 뛰어간 아이들에게서 뭔가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올라가 보니 둘째와 함께 벽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을 마구자비로 떼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그린 그림 언니가 다 뗐어."


  언니의 화가 난 모습이 무서웠는지 둘째는 꼬리를 내리고 개미만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도 속상할 텐데 언니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오기를 부린다기에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첫째를 보며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물었다.


  동생이 집 여기저기 그림을 그려 붙이는 게 짜증이 난 모양이다. 함께 쓰는 방 한쪽 벽에도 자잘한 캐릭터며 제가 그린 공주 그림을 벽면 가득 붙여놓는 둘째다. 창문을 열면 온갖 종이쪼가리가 휘날렸지만 제 나름의 예술행위인가 싶어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같이 쓰는 방인데도 첫째가 별 말을 하지 않아 괜찮은가보다 했는데, 방에도 종이를 이것저것 붙여놓는 동생이 다락방에도 마음대로 붙여 놓아서 무척 화가 났다고 했다.


  "이거는 엄마가 하자고 했던 거였어. 아파서 집에 있는 동안 심심해해서... 그리고 네가 시간이 될 때 여기에덧붙여서 더 그리고 놀려고 떼지 않고 붙여 둔거야."


  첫째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까지 울 일인가 싶으면서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그동안도 동생이 그림을 붙여서 불편했을 텐데도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참 혼자 피아노를 두드리던 첫째는 잠시 뒤 동생과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과의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의 귓가에 들렸다. 우리 첫째도 동생이 태어나 외할머니집에 있을 때 그렇게 슬펐을까. 다섯 살이었던 아이는 어린이집을 마치면 조리원으로 왔다. 두 어시간이나 놀다가 할머니 집에 갈 때면 한 번도 징징거리지 않고 갔다. 엄마를 떠나 잠을 자는 게 처음인데도 의젓했던 첫째. 그러나 동생과 지내며 갈등이 있을 때 표현하는 화는 일면 엄마를 향한 배신감과 서운함이 깃들어있는 듯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놀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동생 태어났을 때 어디서 있었는지 기억나?"


  첫째는 할머니 집에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자기 전이면 유리창문에 붙어 서서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단다. 그러면 할머니는 '엄마 차가 오나 안 오나, 언제 오나 보자.'라고 함께 창문을 보고 있다가 할머니는 꾸벅 잠이 들고 저는 혼자 유리문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조리원에 오면 내가 잠이 든 동안 휴대폰으로 틀어준 이야기를 듣다가 광고가 나와서 깜짝 놀랐던 일까지 말했다. 처음 듣는 아이의 기억과 생생한 설명에 깜짝 놀랐다. 묻지 않았다면 오래도록 아이의 마음에 저장되어 있을 기억이었을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었다.


  "마음이 슬프고,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엄마가 나를 버린 것 같았어."


  어린시절 기억의 한 줄기가 버림받음이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엄마는 절대 너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로 아이를 안심시키고 그때 네가 얼마나 멋지고 씩씩했는지, 덕분에 엄마가 몸도 아프지 않고 잘 회복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몇 년이 흐르고야 알았지만 이렇게라도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기억하고 있음에 놀랄 때가 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아이에게 좋은 흔적도, 아픈 흔적도 남기게 되는 것 같다.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요즘이지만, 마음과 달리 아이에게 아픔을 주었던 기억은 다시 따뜻한 사랑으로 덮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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