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음대 박사생의 논문일기 #1
미국 음대 박사생의 논문 일기 #1
- 새벽에 아주 작은 일 하나라도 하고 출근하자!
구두 시험(Oral Exam) 을 감사하게도 패스했다!
졸업이 가까워졌다는 말이, 그제야 조금 현실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내 논문을 흔쾌히 맡아 주시겠다고 한 전담 교수님(어드바이저)과 첫 미팅을 했다.
나는 프랑스 여성 작곡가 릴리 불랑제와 가브리엘 포레의 연결성을 주제로 하고 싶었다. 관련 자료도 꽤 찾아두었고, 나름대로 목차까지 만들어 방향을 잡은 상태로 교수님을 만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교수님은 내가 준비해 간 자료를 자세히 보지 않으셨다. 대신 질문을 계속 던지셨다.
왜 이 주제를 연구해야 해?
이게 왜 중요해?
누가 이 글의 독자야?
질문이 쏟아질수록 머릿속은 하얘졌다. 어버버 하는 나를 보며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가영, 아직은 주제를 정할 단계가 아니야. 자료부터 더 찾아서 읽어.”
그리고 이어서,
“무조건 primary source를 먼저, 그리고 많이 찾아야 해.”
음악에서 Primary Source-1차 자료란, 작곡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자료들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악보, 작곡가가 직접 쓴 다이어리나 편지, 초고(manuscript), 헌정(dedication), 당시의 연주 기록이나 프로그램 노트처럼 작곡가의 생각과 맥락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순간, 이번 학기에 제안서(proposal)를 내고 통과해서 다음 학기에 졸업하겠다는 목표가 한 번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형식적으로 최소 60페이지라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름도 ‘논문 dissertation’이 아니라 final project. 그래서 그래도 논문만큼 무겁진 않겠지—혼자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물론 우리 학교가 워낙 졸업을 잘 안 시켜주는 걸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래서 좌절스러운 마음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최근 지도하신 학생들은 2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고, 보통 3학기는 걸렸다고 하셨다.
뭐야... 그럼 논문이네... 프로젝트는 무슨... 우띠..
교수님과의 미팅 이후, 오히려 일주일 동안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컴퓨터를 열지도 않았다. 그리고 솔로지옥 5를 아주 재밌게 봤다. 왜 이렇게 재밌는 거야? (회피는 늘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그러다 교수님과 다시 만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면서, 일주일 전에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걸 느꼈다.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퇴근하고 책상에 앉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에너지도 없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일 가기 전, 새벽에 하기.
어젯밤 9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에 앉았다.
프랑스어 도서관 서비스를 이용해야 1차 자료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몇 번 도전하다가 짜증이 나서 포기했었다. 이번엔 진짜 회피할 수 없었다.
“해결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보다가, 1년 연간 결제를 하면 인터넷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일단 결제했다. 신분증 업로드도 해야 했고, 왜 도서관을 사용하려는지, 연구 주제가 무엇인지까지 다 작성해야 했다.
결제 후 메일이 왔다. 내 서류를 확인하는 데 3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별로 한 건 없지만, 짜증 나서 미루던 일을 새벽에 일어나 해내니 기분이 조금… 아주 조금 나아졌다.
미루고 회피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33년째 배우는 중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할 일을 하자..!
내일도. 내일모레도. 해보자.
(그리고 가능하면… 회피는 짧게 하자.)
나.. 졸업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