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믿음만 있어도, 삶은 꽤 괜찮은 게 아닐까

루스 크로포드 시거 '현악 4중주, 1931'

by 가영

많은 것이 변했다.

보스턴에서 작은 텍사스 시골로 이사를 왔고, 여전히 학생의 신분이지만 이제는 대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혼자 살다가 둘이 살게 되었고, 난생처음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박사과정의 시험을 준비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어른들이 늘 말하던 “학생일 때가 좋은 거야”라는 말이 요즘 따라 더 크게 와닿는다.

그땐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주어졌는데,

이제는 시간을 ‘만들어야만’ 공부가 가능하다.

뭐, 늘 과거는 그립고 현재는 어려우니...


3년 동안 필수 과목을 모두 듣고, 지난 학기엔 종합시험(Comprehensive Exam)도 통과했다.

이제 논문으로 가기 전 마지막 관문인 구두시험(Oral Exam)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시험을 보고 있겠지..!


발표는 내가 직접 고른 곡 한 곡과, 2주 전에 무작위로 뽑힌 곡 한 곡으로 구성된다.

며칠 전, 무작위로 뽑힌 곡이 미국 여성 작곡가의 현악 4중주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루스 크로포드 시거?’ Ruth Crawford Seeger(1901-1953)?

누구지?




공부를 시작하면서 놀라웠던 건, 그녀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여성 작곡가로서 주류 음악계에 들어서기란 쉽지 않은 사회에서, 소수의 여성 선배들이 그녀를 이끌어줬고, 그녀의 음악을 사랑한 사람들이 다방면으로 그녀를 도와줬다. 특히 그녀의 생전과 사후를 넘어 믿어준 사람이 있었다.


헨리 카웰 (Henry Cowell) (1897-1965)


헨리 카웰은 미국의 울트라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곡으로 밴쉬 (Banshee)를 작곡한 카웰은, 팔꿈치와 주먹으로 피아노를 치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 기법을 제시했다. 연주영상을 보면 신선하고 재밌다! 피아노 뚜껑-리드를 열고, 한 명은 페달을 밟아서 현을 울리고, 한 명은 하프를 하듯이 현을 쓰다듬는다!

https://youtu.be/WaIByDlFINk?si=isIPNgmqdmybjGG3

Henry Cowell - The Banshee





카웰은 그녀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였다.

나중에 그녀의 남편이 되지만, 처음에는 그녀를 가르치는 것을 반대한 찰스 시거(Charles Seeger)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가르치기를 거절하지 말라”라고 설득했다. 카웰의 도움으로, 그녀는 시거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또, 그녀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이사했을 때, 카웰은 생활부터 연주 기회, 출판까지 — 하나하나 챙겨주었다. 자신이 만든 New Music Society 단체를 통해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직접 출판까지 도왔다. 그녀의 생애동안 출판된 작품들은 모두 카웰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당시 익명으로 현대음악가들의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하던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에게도, 카웰은 편지를 써 녹음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기도 했다.


“그녀의 현악 4중주에 대해 말하자면,

이건 아마 미국 작곡가가 쓴 4중주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다른 어떤 곡보다도 이걸 듣고 싶을 정도예요.

정말 진짜 음악적인 경험이고,

그녀의 초기 작품들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에요!

당신도 꼭 들어볼 수 있도록,

이 곡을 녹음으로 남기고 싶어요.”

— 헨리 카웰, 찰스 아이브스에게 보낸 편지 (1933년 11월 14일)






카웰과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도와줬다지만, 그렇다고 당연히 삶이 쉬웠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이라는 성별과 경제적 힘겨움은 그녀의 삶을 늘 버겁게 했을 것이다. 작곡 스승에서, 남편이 된 찰스 시거는 질투심과 사랑이 뒤섞여 그녀를 대했다. 작곡가로서의 길과 어머니로서의 길 두 개 다 갈 수 있냐며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1930년, 대공황, Great Depression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네 명의 아이를 키워야 했고, 그녀의 삶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어쩌면 생계를 위해서였을까, 혹은 자신의 작곡에 대한 신념에 의문이 생겨서였을까.

그녀는 실험적인 작곡가에서 미국 포크송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사람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의 아이들 — 피트 시거(Pete Seeger), 페기 시거(Peggy Seeger) —

미국 포크 음악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현악 4중주 3악장이 눈에 띄었다. 느린 속도로 각 악기의 음들이 지속되며, 각자의 다이내믹을 보여준다. 그녀는 3악장을 '음량의 대위법 (Counterpoint of Dynamics)'이라고 소개했다. 보통의 현악 4중주는 4개 악기가 같이 음악을 만든다면, 여기서는 4개의 현악기의 음량이 독립적으로 커졌다 작아진다.


그녀는 전 시대인 낭만주의 음악이 ‘화성음악(Homophony)'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고 느꼈다. 하나의 뚜렷한 멜로디와 그 멜로디를 받쳐주는 구조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주성부와 뒷받침, 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여러 멜로디가 다 중요할 수는 없을까? 중세부터 바로크까지 이어진 '다성음악(polyphony)'를 다시 끄집어내었다. 여러 성부가 따로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다성음악을 사용하면서, 그녀는 또 질문을 던졌다. 각 악기의 멜로디만 독립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악기를 넘어서 악상, 리듬, 아티큘레이션 등 음악적 요소들이 다 따로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의 생각은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모두 다 같이 커지고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기는 커지고 어떤 악기는 작아지는 것이다. 또, 어떤 악기는 엑센트를 하고, 다른 악기는 대비되는 터치를 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움직임이 모여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각자 악기의 작은 크레셴도와 디미뉴엔도 (<>, 헤어핀이라고도 부른다)는 긴 음가를 가지고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부드럽게 지속되며 변화한다. 눈치채지 못하면 점점 쌓여가면서, 같이 또는 따로 움직인다. 4개의 악기 중 어느 누구도 한 번도 crescendo와 diminuendo를 같은 순간에 하지 않는다. 각 악기의 독립적인 음량조절은, 구조적으로 더 큰 에너지를 도출한다. 시작부터 76마디까지 아주 낮은 음역과 ppp 악상으로 시작해 음역과 악상이 올라가고 올라가다가, 빠른 속도로 무너지듯 77마디부터 99마디까지 다시 pppp와 낮은 음역으로 곡이 끝이 난다.



(퍼시피카 콰르텟 녹음이 있다니! 인디애나 공부할 때 퍼시피카 콰르텟 교수님들 연주 정말 사랑했었는데..!)


https://youtu.be/6rt7zJPfDRU?si=7Fiex1OyAeBAqFZb

String Quartet, "1931": III. Andante · Pacifica Quartet





비평가 버질 톰슨은 1949년 New York Herald Tribune에 이렇게 썼다.


“그녀의 현악 4중주 중 느린 악장은

놀라울 만큼 깊고 고양된 작품이었다.

고도로 불협화적인 화음들이 느리게 변하며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지만,

듣는 이는 그 고요함 속에서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품격 있고, 대담하며, 완벽하게 성공한 작품이다.”









어떤 걸 공부하든 교훈을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이상한 습관 때문인지,

그녀를 공부하면서 나 자신을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내가 혼자 해냈다고 생각했다. 내 삶은 늘 버겁다고 생각해서, 남들을 도와줄 여유는 당연히 없었고, 도움을 받아도 진심으로 감사한지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느껴진다. 내가 걸어온 길에도, 보이지 않게 나를 밀어준 손들이 정말 많았다는 걸. 헨리 카웰이 크라우포드에게 보낸 끝없는 지지와 사랑을 이미 가족들과 친구들, 선생님들에게 받고 있다는 걸. 나는 그런 지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을까. 반성이 된다.



덩치가 엄청 크고, 헤드셋을 귀에 걸치고 있는, 장난기 많은 흑인 신입생이 있다. 내 수업은 괜찮게 따라오지만, 다른 수업을 잘 못 따라간다고 한다. 어제 다른 수업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다들 그 친구를 약간의 포기한 느낌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나는 그 친구를 끝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삶에 바쁨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자 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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