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난치병 진단기(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을 시작합니다)
2024년 5월 13일
남편의 건강검진일이었다.
평소처럼 문제없이 검진을 받고 돌아온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위에서 조직을 떼어갔어. 검사를 좀 해봐야할 것 같대."
이런 경우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은 암일 가능성이다.
남편과 나도 최악의 경우에는 위암이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서로에게 말하지 못할 조급함을 가지고 일주일여를 기다렸다.
어떤 남편들은 너무 말이 많아서 귀가 아플 정도라고 하기도 하던데, 우리 남편은 정확히 그 반대다. 어디가 어떤지 어떤 상태인지 내가 세세히 물어보아야 겨우 말하는 정도인 사람이다.
조직검사를 한 후 얼마가 지났을 무렵 말도 없이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온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4시가 다 되었을 무렵인데 점심도 먹지 않았다고 배가 고프다고 말했고 차려준 밥을 말 한 마디 없이 조용히 먹고 일어났다.
'아, 무슨 일이 생겼구나.'
오래도록 말을 아끼던 남편이 꺼낸 말은 위에서 발견한 이상조직을 검사한 결과 '아밀로이드증'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시경 의사 말로는 아밀로이드 질환을 보는 곳이 잘 없으니 꼭 Big5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기도 했고, 암이 아니라는 말에 안도하기도 했는데 초록창에 '아밀로이드'를 검색해본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출되어서 없어져야 할 단백질이 몸에 쌓이는 건데, 이 단백질이 어느 장기에 쌓이느냐에 따라 뇌에 쌓이면 치매, 심장에 쌓이면 부정맥 등을 초래하고 다발성 골수종이 동반되면 증상이 급속히 진행되어...결국....
더는 내 손으로 남기지 못하겠다.
인간이란 자고로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기에 최적화된 동물이란 것을 그때 깨달았다.
다정하고,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세상 누구보다 나를 위해주지만, 때때로 한없이 밉기도 했던 그 사람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 날부터 시작된 난치성 희귀질환 판정기를 조금씩 기록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