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을 나오면서
[OO님이 웜띵님을 멘션했습니다.]
나를 지목한 메시지가 왔다. 보내온 곳은 엄마들의 단톡방이었다. 오랜만에 엄지손가락에 힘을 싣고 카톡을 열었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잘 못 지낸 것 같아졌다. 잠에 들지 못하다가 결국 장문의 사과글을 남기고 채팅방을 영영 나왔다.
재작년 난생처음 익명의 단톡방에 들어갔다. 같은 달 출산을 앞둔 예비 엄마들이 모인 곳이었다. 출산 시기가 비슷했으니 임신부터 육아에 이르기까지 서로 닮은 고충들을 안고 지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고민을 자기 일처럼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엄마들은 ‘육아 동지’라는 이름으로 현실에서의 우정과 의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단톡방 개설 만 2년 차, 그곳에서 울리는 알림은 잦아들었다.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면서, 고만고만했던 엄마들의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를 포함한 두 명 빼곤 모두 등원하는 아이들이었고, 엄마들 역시 다시 일을 시작하는 등 각자의 생활을 찾아갔다.
다른 엄마들이 아이와 조금씩 독립된 시간을 갖는 동안, 나는 여전히 초밀착 육아를 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도 체력이 떨어질 줄 모르는 세상 팔팔한 만 2세 vs. 아침 먹은 설거지를 했을 뿐인데 체력 저하에 위기감을 느끼고 커피로 수혈하는 만 31세. 거기다 주 7일 가정 보육은 곰이 마늘 먹고 사람 되어가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싶게 만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면, 밀린 수백 건의 메시지를 소화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괜히 뒷북치다 다른 사람 말이나 잘라먹지 싶어, 침묵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러다 결국 얌체 취급을 당하고 만 것이다.
친목 도모는 차치하고 육아 정보만 편취한다 생각한 걸까. 그런데 사실, 그곳에서 공유되는 정보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기저귀 핫딜조차도 챙겨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방에 기어이 남으려 했던 이유는, 각별해진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 앞으로는 없을(없겠다고 다짐하는!) 임신과 출산을 함께한 엄마들이 있는 곳이었다. 또 ‘원래 엄마들은 다 그렇게 살아.’라는 식의 어설픈 조언 대신 솔직한 말들로 가만히 슬픔을 끌어안아주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랬던 곳에서 비아냥 섞인 소리를 들으니, 너무나 소중했던 공간이 훼손되는 기분이 들었다.
대화 상대를 저격하는 일은 ‘관계의 진실성’ 문제이다. 불쾌한 메시지를 받은 까닭 절반에는 반드시 내 지분이 있다. 하지만 문제의 메시지를 보낸 사람 역시 나에 대한 진심이 부족했던 것 또한 분명하다. 진실되지 않은 관계를 애써 이어나가는 건 손해다. 가뜩이나 현실살이도 등을 굽게 만드는데 굳이 이런 데서까지 괴로움을 얻어가는 건 미련한 짓이니 말이다. 말로는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자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누군가를 ’그런‘ 사람으로 만드는 ‘그런’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는가. 혹 누구에게나 거침없는 성격이라 그랬다 쳐도, 수신자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대화 습관은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채팅방을 나와 며칠 내내 마지막 카톡을 남겼던 순간을 곱씹었다. 그런데 아주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사과를 전달해야 했던 쪽은 OO님이 아니라, 그간 진심으로 나의 안부를 물어주던 몇 엄마들이었다는 걸.
ps. 기꺼이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내준 엄마들,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꼭 현실에서 마주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