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세 시 반.
아직도 침대에 있다. 이불 킥킥 차면서 뒤척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천장만 바라본다.
휴대폰 들었다 놨다 하기를 몇 번째인지 모르겠고, 배는 고픈데 일어나기는 귀찮고.
엄마가 보면 뭐라고 할까.
"일요일이라고 하루 종일 침대에만 있니?"
근데 이게 뭐가 잘못된 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죄인가 요즘 사람들 진짜 바쁘게 산다.
인스타 보면 누구는 홈카페 만들어서 원두 갈고 있고, 누구는 새벽 운동하고, 누구는 독서모임 가고. 나만 이렇게 축 늘어져 있는 것 같아서 가끔 미안해진다.
나도 뭔가 해야 하나? 청소라도? 책이라도 읽을까?
근데 솔직히 하기 싫다. 평일에 얼마나 치여 살았는데.
월요일에 컴퓨터 켜자마자 밀려오는 메일들, 화요일 끝나지 않는 회의, 수요일 야근, 목요일 또 야근, 금요일엔 죽은 듯이 잠들었잖아. 그런데 주말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아니다.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안 한다.
침대에서 발견한 것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
창문 너머로 햇빛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파트 복도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옆집 아저씨가 발코니에서 기침하는 소리까지.
평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것들.
그리고 내 마음도 좀 보였다.
아, 내가 이렇게 피곤했구나. 이렇게 지쳐있었구나. 매일 뭔가에 쫓기듯 살았구나.
이불 속에서 한참 멍하니 있다가 문득 든 생각.
이게 치유인가?
언제 쉬었나? 진짜로 아무생각 없이 편하게 있었던 적이 언제인가?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내 침대, 내 이불, 내 베개. 아무한테도 신경 쓸 필요 없이 대자로 누워있을 수 있는 이 공간.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들여다본다.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이유도 없다. 시간을 아무렇게나 써버릴 수 있는 자유. 뭔가 달라진 기분이다.
창밖이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움직이기 싫어서 물 한 잔 떠오는 것도 귀찮았는데, 지금은 기분이 좀 다르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 마음도 한결 편해졌고.
충분히 쉬고 나니까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밀려 있던 책을 읽어보고 싶고, 오랫동안 연락 못한 친구한테 안부라도 물어보고 싶고, 저녁은 배달음식 말고 뭔가 간단하게라도 해먹고 싶고.
신기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지금은 억지로가 아니라 하고 싶어졌다.
휴식의 힘인가?
충분히 쉬니까 움직이고 싶어지는 거구나.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분 좋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으른 휴식으로 나를 다시 채우는 것이었다.
침대에서 멍하니 보낸 몇 시간 덕분에, 지금 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고. 내일 월요일이 와도 이제 괜찮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기대된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으니까.
"진짜 쉬면, 진짜 일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