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피

아버지가 돌아가신 첫 해의 글

by 미키

2018년 2월 10일.

겨울의 끝에 아빠가 죽었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아빠에게 감기는 치명적이었다. 끝내 패혈증에 이르고 만 것이다. 30여 년간 아빠 있는 애로 살아오다 아빠 없는 애가 된 기분은 뭔가 어색한 느낌이었지만, 사실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아빠가 없는 세상은 술술 잘 굴러만 갔다. 모든 것이 제자리인데 그 모든 곳에 아빠가 없을 뿐이었다.

다만, 이 길었던 겨울의 끝에 나는 몇 가지 질문이 마음에 생겼다. 좋은 생각도 좋지 않은 생각도. 그냥 아빠 생각인 것도 있었다. 질문으로 끝나는 것도 있었고 대답으로 생각나는 것도 있었고, 그냥 단어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중 몇 가지는 슬쩍,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해보았다.

“사람은 어차피 죽잖아. 죽지 않는 사람은 없잖아. 죽지 말았으면 해도 죽잖아, 사람은. 그렇다면 어차피 죽는 김에, 기왕이면 그 사람들이 백혈병에 걸려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도 죄가 될까. 이 정도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쁜 일일까?”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그런 질문들과 이별하라고 했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아빠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들 때, 아빠 대신 문득 이런 질문들을 떠올렸고 그러면 슬픔 아닌 다른 감정들이 나를 찾아왔다. 눈물이 차오르려 할 때 그런 질문을 떠올리면, 젖은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린 듯 어느새 물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살아가기에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마저도 이별하라니. 아빠와도 이별했는데, 아빠가 떠나고 남은 이 생각과도 이별해야 하는 걸까. 정말 그 편이 나은 걸까.



*



아빠는 오남매 중 막내아들이었다. 위로 누나 하나, 형 둘, 그리고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아니, 있다. 아빠만 아들이‘었’고, 나머지 형제들은 여전히 ‘있’다. 아버지의 형제가 다섯이라고 하면 “다복하시네요.”라는 말이 종종 돌아왔다. 상을 당했을 때도, 딸 둘인 우리 집에 그 다복함은 잘 발휘되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알리자 어린 여식 둘이 상을 어떻게 치르냐며 둘째 큰아버지가 달려왔다. 그분의 도움으로 장례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일가친척들에게 대신 부고를 알려주고, 친척들이 왔을 때 우리 대신 위로 인사를 받고 숙연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는 큰아버지의 모습은 아주 늠름했다. 딱 한 번 당선 되고 이후론 내리 낙선했지만, 이십 년 전 구의원을 지냈던 시절 처럼, 책임감이 넘쳤고 왠지 모를 생기까지 느껴졌다. 힘이 센 제사장 같이 큰아버지는 장례를 진두지휘했다.

첫째 고모는 빈소를 차린 오후에 찾아왔다. 고모는 영정 사진 앞에 엉거주춤 다가오더니 무너져 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아버지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아이고, 영섭아. 영섭아.” 너무 여러 번 부르는 바람에 나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뒤편으로 조문객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고모의 처절한 애도에 압도되어, 조문객들도 덩달아 숙연한 표정으로 얼굴을 고칠 정도였다. 아빠의 임종 전 이틀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러 오시라는 전화에 “내가 요새 일하잖니, 오늘 일 하고 들어왔다.”는 1차 의미체계에서는 해석하기 힘든 말을 했던 사람이었다.

막내 고모도 왔다. 평소 조용한 성정답게 영정 앞에 살짝 묵례하고, 친척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가서 얼른 앉았다.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캐나다에 있는 첫째 큰아버지네는 오지는 못했지만, 백만 원을 쾌척해 주었노라고 둘째 큰아버지가 덧붙였다. 오 남매 중 세 사람은 여러 번, 친척들이 새로 조문 올 때마다 저마다 다복함의 증인이 되었다. 첫째 고모는 자신이 얼마나 슬프게 울었는지 말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자신이 임종을 지킬 때 주님 영접 기도를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했는지, 그리고 캐나다에서 첫째 큰아버지가 송금해 온 돈이 무려 얼마였는지를 되풀이해서 말했다. 둘째 큰어머니는 우리 아버지가 자신의 어려웠던 신혼 시절 연탄 사다 준 이야기까지 하며, 사랑 많은 우리 아빠를 추억 했다.

친척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숨을 쉬기도, 눈물을 훔치기도,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 형제들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느냐”며 “형제들이 이렇게 든든히 챙겨주고 아빠가 복이 많았다”며 나와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고, 우리는 “그러게요”라며 그 손을 잡았다.



**



아빠의 3차 항암치료가 끝나갈 때였다. 항암치료로는 완치할 수 없어서, 골수를 기증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빠가 앓고 있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쉽게 말해 피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가 고장 나는 병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바보가 된 조혈모세포가 비정상적인 백혈구를 만들어 내고, 몸 밖에서 침입한 유해한 세균을 방어하지 못하면서 아빠의 체내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던 즈음에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적혈구 수치가 너무 낮아졌고, 피가 산소를 몸 구석구석에 전달하지 못했다. 아빠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 쁘고 열이 나곤 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세포들이 약해지니, 점막으로 이루어진 입 안이나 콧속의 연한 살들이 헐고 그 부 분에서 피가 비쳤다.

“물이 닿으면 아파.”

그나마 빨대로 물을 마시면, 조금 수월하다고 했다. 작은 관을 통해 물을 빨아들이는 것도 힘드니, 음식을 먹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한 번씩 38도, 38.5도까지 열이 오를 때면,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져버린 알머리에 열이 나서 모공마다 송골송골 땀이 맺혔 다. 푹 젖은 환의를 갈아입느라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숨이 차다고 했다. 차라리 몸의 한 곳이 아픈 것이면 어루만져 줄 수 있을 텐데, 잘못된 피가 돈다는 것은, 온몸을 아픈 피가 적시고 있다는 것은, 그 피가 아빠의 머리, 가슴, 팔, 다리, 입술, 머리, 뇌, 온 몸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은, 손 쓸 길 없이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백혈구는 아빠의 세포를 연료로 열에너지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었다. 이 나쁜 피를 끊어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는 것이었다. 의사는 친형제의 경우 골수가 1/4의 확률로 일치한다고 했다. 이식 후 부작용도 고려해야 했지만, 일단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지만은 않아도 되니 한 가닥 희망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아빠는 오남매의 넷째 아들. 형제가 넷이나 있는 다복한 사람이었다.



***



“엄마, 둘째 큰아빠 뭐라고 그러셔?

“전화를 안 받아.”

“큰고모는?”

“거기는 말도 안 꺼냈어.”

아빠 형제들 모두가 우리 가족의 연락을 피하고 있었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는 “그러마”라고 말해서 안심하고 돌아섰을 뿐이었다. 골수 일치 여부 검사비가 인당 삼백만 원에 달해서 순차적으로 한 명씩 해 봐야 할지, 시일이 시급하니 한꺼번에 검사를 해야 할지, 혹여나 형제가 넷이나 있지만 유전자형이 안 맞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지, 하필이면 연 로한 첫째 고모나 몸이 약한 막내 고모가 유전자가 일치해 건강에 무리가 되지는 않을지……. 이런 질문과 고민들은 사실 할 필요 가 없었던 것이었다. 간단한 사실이었다. 넷째인 우리 아버지가 이미 환갑이었다. 그들은 더 연로하고, 나이에 걸맞은 지병이 있었고, 그 몸으로 살아내는 것 자체를 버거워 했다. 혹시 재수가 좋아서, 혹은 나빠서 골수가 일치한다면 골치 아파진다는 것 정도를 내가 몰랐다.

“엄마, 내가 전화해 볼게. 주삿바늘 한번 꽂아서 검사해 보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아버지는 침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명절이나 모임에 한 번씩 만나면 아빠의 형제들은 허리가 아프다며, 발목이 삐었다며 드러누워 옷을 훌렁 까고 잘도 바늘을 몸에 꽂았다. 그런 이들이 형제가 죽어 가는데, 바늘 한번 꽂아 보는 일로 전화를 피하고 자신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아빠는 괜찮다고 했다. 사람은 다 죽는 것이고, 자기한테 그 일이 일찍 왔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몸은 여전히, 꾸준히 36.5도보다 1~2도 높이 타올랐다.

다른 공여자를 찾아보려던 중, 아빠의 골수 유전자형 검사가 나왔다. 유전자형 8개 중 돌연변이가 있어서 맞는 사람을 찾을 확률이 매우 적다고 했다. 이런 유전자형이 나올 경우는 우주에서 떨어진 확률이라고 했다. 일본, 중국에는 아마 맞는 골수가 없을 것이고 유럽 쪽도 찾아보겠지만 어렵다고 했다. 아마 이런 상태라면 형제 중에서도 돌연변이까지 일치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했다. 엄마와 나, 동생은 의학과 숫자는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숫자놀음의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너무나 간절했지만, 이제는 그 작은 확률로 더 이상 아빠 형제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그만두자고 했다.

아빠는 그때 의사의 말을 듣고 “차라리 잘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죽음을 늦추는 치료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족들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쳤다.

“제에기. 내가 말년에 재수가 없는 놈이지 뭐야.” 아빠가 희미하게 웃었다. 의사를 만나고 온 그날은 다행히 열이 나지 않았다. 다만 에너지 보전의 법칙에 의해, 아빠의 몸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가 타고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



“누리 아빠, 천국 갈 거야. 주님은, 자신을 믿는 자를 절대 내치지 않으셔. 주님이 계신 곳에 가서 부디 편하게, 이제는 아프지 말고 살어.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어! 응! 누리 아빠.” 둘째 큰아버지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가장 아빠를 속상하게 했을 사람이 임종을 지키며, 축복을 해 준다는 것이. 이제는 백혈병이 없는 곳으로, 아빠는 갈 것이다. 지긋지긋하게 아빠를 괴롭혔던 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걸까. 참으로 더러운 병이다. 약으로 치료가 되는 병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생명을 구걸해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병.

고마운 큰아버지.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지켜주고, 장례 내내 함께해 준 큰아버지. 그러나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떠오른다. 숫자가. 확률이. 한번만 꽂아 봤으면 좋았을, 당신이 끝내 거부한 주삿바늘이. 당신의 피가 아빠의 피와 맞았을 확률은 얼마일까. 아빠의 형제들을 볼 때마다, 사람의 모습 대신 산가지들이 들어선다. 1/4의 확률을 가졌던 당신들이 네 명이나 되었을 때, 아빠가 살 수 있었던 확률. 혹여나 재수가 좋아서, 재수가 없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지금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



아빠가 죽고 나서, 세상은 너무 똑같이. 한결같이 굴러간다. 나의 삶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티브이를 본다. 아빠 목소리를 못 들은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원래 아빠와 전화 통화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다. 다만 나에겐 몇 가지 질문이 생겼고. 그 생각은 집에서도, 친구의 말을 듣다가도, 기분 전환하러 간 콘서트장에서도, 피자를 먹다가도 떠오른다. 질문으로 대답으로 때로는 단어로 계속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런 생각을 말하면, 사람 들은 이제 이런 질문들과 이별하라고 한다. 그래, 그래야지. 하지만 이것들과 과연 이별할 수 있을까. 한번 분하다 서운하다, 말도 않았던 바보 같은 아빠 대신 나라도 이렇게 검은 악의를 갖는 것. 이 정도도 안 될까. 나라도 이렇게 화내고 미워하는 것, 아빠는 하지 말라 했을까. 글쎄, 아빠를 만나서 물어보지 못하는 한, 계속 사라지지 않을 질문들이다. 동생이 말했다. 아빠에게 불행이 있었다면 뜻하지 않게 백혈병을 얻은 것. 그것뿐이라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의 불행은 아픈 피를 가지게 된 게 아니고 잘못된 핏줄을 가졌던 것. 사람은 어차피 죽으니까. 어떻게 죽어도 조금 빨리 죽어도, 슬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핏줄이 없었더라면, 형제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었다면 차라리 외롭고 속상하지는 않았으리라.


“엄마, 아빠 형제들이 언젠가 죽는다면. 아빠와 같은 병으로 죽었으면 좋겠어. 사람은 어차피 다 죽잖아. 죽지 말았으면 해도 죽잖아. 감히 나 따위가 조금 어떻게 바란다고 바뀌지 않잖아. 어차피 죽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군가가 어떻게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죄가 될까. 그 사람들이 백혈병에 걸려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혹시 먼저 죽은 우리 아빠와 골수가 일치하지는 않았을지. 혹시 살아 있었다면, 그 골수를 이식받아 살 수 있지 않았을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 계속, 그 가능성과 끊임없이 밀려오는 숫자와 피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주 고통스럽고 외롭게. 이거, 많이 나쁜 생각일까.”

하나씩 아빠의 기억을 잊으면 이 감정들과도 이별하는 날이 올까. 그날은 언제일까. 희미하게 웃던 아빠를 기억한다. 지금은 어디에도 없지만. 살이 있고 피가 돌던 도톰한 양감의 한 육신이 분명 내 곁에 있었다. 분명, 그랬던 적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 형제들의 이름은 최영심, 최영석, 최영만, 최영미이다.

그리고 아픈 피로 끝내는 세균에 잠식당해 죽은 내 아버지의 이름은 최영섭이다.


이 이름들을 어딘가에 쓰고 싶었다. 아픈 피를 가졌던 아빠의 이야기와, 핏줄에 대한 이야기와 피에 대한 떨칠 수 없는 생각들. 그리고 그 피에 새겨졌을 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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