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당연필 Aug 27. 2020

여행의 이유 Review

여행을 가고 싶으나 가지 못하는 직장인의 이야기

직장인에게 여행이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여행은 먹구름 낀 날씨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이다. 겨울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여름휴가를 계획하며 반년을 견뎌낸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결혼과 코로나 전까지는...) 인터넷에 떠도는 MBTI를 하면 늘 INFP "열성적인 중재자"가 나온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취미는 "여행"이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해외여행은 물 건너가고, 결혼을 하여 재정적 부담이 다가와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왔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여행 뭐 안 가도 되지, 씨드 머니를 모으고 몇 년 후에 가면 되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나를 위로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며 느끼는 설렘과 행복함이 없는 직장생활은 회색빛으로만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잠식할 즈음 김영하 작가가 쓴 여행 에세이 여행의 이유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은 단순히 여행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정리한 책인 줄 알었다. 그러나 여행의 이유는 여행을 하며 드는 생각들, 왜 우리는 여행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의 답변이 들어 있었다. 하긴 여행의 이유를 알게 되면 그 이유들을 충족시켜 여행을 갈 필요가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행의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작가님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9가지로 풀어서 기록하였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세 가지를 정리해 보겠다.

고요한 겨울 김제의 밤하늘
첫 번째 추구의 플롯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18p


작가님은 로널드 B. 토비아스가 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서 추구의 플롯을 언급한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플롯이며,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무엇을 추구하기(이루기) 위해 여행을 떠날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작가님은 여행의 목표를 2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외면적 목표이다. 이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드러내 놓고 추구하는 목표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 목표인 내면적 목표를 달성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감명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내 여행의 대부분도 표면적 목표보다 내면적 목표를 이루는 여행이다. 대학교 시절 여름 방학이 되면 농활을 떠났다. 농활을 떠나면 마을회관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과 시간을 갖는다. 어르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마스크팩, 매니큐어, 장기자랑 같은 것을 준비해 간다. 표면적인 목표는 농촌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고 사랑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마을회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가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사랑보다 어르신들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이 더 크다.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호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매 끼니마다 평소 먹는 것보다 1.5배는 먹어야 한다. 순간은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더 먹으라는 어르신들의 말엔 사랑이 담겨 있어 기쁜 마음으로 밥그릇을 들고 밥솥으로 향한다. 


두 번째 Nobody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180p


  여행을 하며 우리는 Nobody 혹은 Somebody가 되고자 한다. 파리와 뉴욕같이 선진국에서 여행을 하면 현지인과 똑같은 Nobody가 되고 싶어 하며, 후진국을 여행할 때는 현지인과 다른 Somebody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부분은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다. 여행을 하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그리고 이는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Nobody가 되어 여행을 하며 자신을 잊어버리고 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일상의 부재

 사람들은 살아가며 다양한 이유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렇다면 이주와 여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주는 일상의 연장이다. 일상은 통제하기 어렵고, 복잡하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여행은 일상과 다르다. 한 도시를 핵심으로 돌진한다.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보긴 원하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일상을 잊어버린 채 여행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여행은 일상의 부재이다. 작가님은 이런 관점으로 여행을 볼 때 소설을 적는 것이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작가가 글을 쓸 때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라고 한다. 주인공이 겪는 것, 시대적 상황을 상상하며 일상은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여행을 하는 것과 같은 일상의 부재를 경험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에 집중하게 되고, 잘 정돈된 줄거리에 생각을 맡긴다.

"우리는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6p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며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었을지 상상이 되는가? 결론은 역시 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느꼈다. 여행을 떠나며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문장이 아내를 설득했다. 그러곤 여행을 떠났다. 


추구의 플롯과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