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요
곰 아저씨는
마을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곰 아저씨의 꽃집은
마치 갓 구운 쿠키처럼 포근하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지요.
마을 사람들은 매일 꽃집 앞을 지나며
“아, 참 좋은 냄새!” 하고 웃었어요.
곰 아저씨도 그런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행복했어요.
우리는 모두 마음의 정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
마음의 정원에 때때마다 찾아와 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며 잘 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꽃이 시들고 잡초가 무성해지며 동네 쓰레기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도 둘러보려 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사람도 있다. 또 누군가는 마음의 정원 울타리마다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가시 울타리를 둘러 어느 누구도 정원에 잠깐 들를 수 없게 경계를 삼엄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울타리는커녕 지금 막 새싹이 피어나고 있다는 안전문구조차 없어서 아무나 지나다니다 새싹을 밟고 지나가기 일쑤인 사람도 있다.
곰 아저씨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예쁜 꽃집을 갖고 있다.
곰 아저씨는 곰 아저씨의 정원을 예쁘게 가꾸고 그중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만을 골라 꽃집에 진열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곰 아저씨의 예쁜 꽃들을 좋아했다.
꽃집은 하나의 페르소나이다.
우리가 모두 마음의 정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아마 인테리어와 향기와 찾아오는 손님이 각기 다른 꽃집도 하나씩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정원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나는 어떤 꽃을 판매하고 있고 나의 꽃집은 어떤 분위기일까?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꽃만 판매하는 곰 아저씨는 과연 정말 행복할까?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찾아준다는 것으로 나의 행복을 결정할 수 있을까?
페르소나는 사회적 자아이자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의식적으로 꾸미는 얼굴이 된다.
하지만 그 꽃집,
즉 페르소나는 진짜 나의 전부일까?
사람들에게 잘 팔리는 꽃만 골라 진열하고, 음악을 신중하게 고르고, 친절한 주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우리는 과연 내면의 나와 온전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페르소나는 ‘자기(Self)’로 가는 문 앞의 관문이자, 때로는 장애물이 된다. 꽃집이 곧 나라는 착각은 자아와의 동일시를 일으키고, 자칫하면 내면의 욕구, 혹은 상처받은 자아를 억누르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을 팔기 위해 내가 진짜 좋아하는 들꽃, 이름 모를 이상하게 생긴 잡초 같은 진실한 감정들은 짓밟히거나 진열대 아래 감춰지기 쉽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자아는 점점 ‘진짜 나’로부터 멀어지고, 삶은 공허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잠시 꽃집을 닫고 그 안쪽 마음의 정원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다.
혹시 내 정원에 누가 들어올까봐 문을 닫아두었다면, 내가 나를 돌보는 것조차 버거워 방치시켰다면, 이젠 울타리를 넘어 내 마음속에는 어떤 꽃들이 자라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외부의 반응과 타인의 시선에 맞춰 꾸며진 꽃집이 아니라, 진짜 나의 향기와 색깔을 지닌 꽃들이 피어나는 그 정원으로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나의 ‘정체성’은 페르소나 너머에서 시작된다.
과연 곰 아저씨는 꽃집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 모든 그림과 글은 작가가 직접 그리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