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계절을 품고 산다는 것_03

서로에게 맞는 온도로 다가가기

by 공원의 서쪽




경찰들이 떠난 후 경찰 4명의 발자국만 남은 집 안에는 조용한 적막만이 흘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얼마나 멀어졌고 또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았다.




'밥'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싸우다 독일에서 경찰까지 만나게 되는걸까.

살아간다는 건, 왜 이렇게 유치하고 복잡한 일인걸까.




그날 이후 우리는 잠시 조심스러워졌다.

말끝을 흐리거나, 괜히 웃으며 말을 돌리거나,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잘못한 사람도 잘 한 사람도 없는 싸움.

결국엔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다고만 하는 싸움.

그 조심스러움은 작은 평화를 줬다. 덜 싸웠고, 덜 아팠다. 하지만 그만큼 솔직하지 못했다. 속마음을 꺼내기엔 겁이 났고, 꺼낸 마음이 또 무기로 변할까 봐 조심했다. 나는 묻지 않았고, 남편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무탈하지만 어딘가 씁쓸한 날들.




그러다 문득, 우리가 너무 멀어진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너무 오래 참고, 너무 자주 넘기는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려던 마음보다, 피하려는 습관이 먼저 생겨버린 건 아닐까.




우리는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나 사실 무서웠어. 우리 싸움도, 자기 얼굴도. 그리고 경찰이 자기를 데려갈까 봐.” 남편은 놀란 얼굴로 내 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내 손을 잡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남편의 손끝에서 사과와 다짐, 그리고 조심스러운 애정이 전해졌다. 하루종일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깊게 쌓여있던 해묵은 감정들을 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한 집 안에서, 같은 이불 아래에 있으면서도 온도가 너무 달랐다.

나는 따뜻해야 안심이 되었고, 남편은 시원해야 편안해졌다.

서로가 추운 날씨 속에 따뜻한 방을 찾는 방식이 달랐다. 나는 이불을 덮었고, 남편은 창문을 열었다. 나는 속이 식어야 마음이 풀렸고, 남편은 말로 풀어야만 견딜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위하려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순간들이 많았다. 내가 침묵을 선택한 날에 남편은 외로워했고, 남편이 가볍게 던진 말에 나는 무너졌다. 말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날이 있었고, 말이 많아서 더 아파지는 날도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처럼, 우리는 번역기 없이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든 갈등이 그날처럼 폭풍처럼 지나가고 나면, 결국 돌아오는 건 소소한 일상이었다. 같이 장을 보고,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빨래를 개며 웃는 순간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온도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나는 창문을 조금 열어두기로 했고, 남편은 얇은 이불을 하나 가져와 덮었다. 남편은 내 입모양을 더 오래 바라보았고, 나는 남편의 어깨에 손을 얹는 법을 배웠다.




사랑은 뜨겁기만 해선 안 되고,

또 차갑기만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배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조절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었다.

아직도 가끔 너무 뜨거워서 식어야 하고, 너무 차가워서 덮어야 하는 날들이 있지만, 중요한 건 같은 방 안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은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크든 작든, 앞으로도 우리는 감정의 부딪힘 속에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싸워도 다시 마주 앉기 위해 함께 사는 거라는 걸.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유치하고 복잡한 일이지만 그래도 매일 옆에 있는 그 사람과 조금씩 온도를 맞춰가는 일. 그게, 우리가 함께 배우는 삶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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