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계절을 품고 산다는 것_02

'밥' 그게 뭐라고

by 공원의 서쪽




"쾅쾅쾅쾅 쾅!"




부서질 듯 현관문을 누군가 두드렸고, '헉. 너무 시끄러워서 이웃들이 찾아왔나?' 싶은 생각을 하며 문을 연 순간 완전무장한 경찰 4명을 발견했다.




경찰들은 남녀가 심하게 싸운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며, 주민들 말로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 같은 소리를 들어서 온 거라고 했다. 당황한 남편은 "어... 아니 우리 그냥 말싸움만 했어요"라고 했지만 경찰들은 집안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했다. 남편이 대답을 체 하기도 전에 그들은 주저 없이 신발을 신은 채로 현관을 넘었다.




거실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나를 본 경찰들이 제일 먼저 한 말은 뜻밖에도 다정했다.




"당신, 괜찮아요?"




나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경찰들은 우리 집구석구석을 조사하고 모든 문, 심지어 옷장 문까지 열며 또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 어딘가 부서진 자국이 있는지, 폭력의 흔적은 없는지 살폈다.




경찰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해달라고 했고, 나는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버벅거리며 말했다. 말이 자꾸 엉키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심장이 쿵쿵 뛰고 손끝이 떨렸다.




그때 옆에서 남편이 도우려는 듯 말했다.



"사실은요, 저희가 그냥..."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날카롭고 확고했다.



"조용히 하세요. 나는 여자에게 묻고 있고, 당신은 대답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 한마디에 방 안의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어디서부터 솔직해져야 할까.
그냥 여기서 눈물부터 터뜨리면 내 남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에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싸우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맴돌던 그 순간, 현관문을 부술 듯 울린 노크 소리. 그리고 지금, 경찰 네 명이 우리 집 거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분명 끝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질문을 받았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좀 더 남편이 오해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지?' 하지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망설이는 내 표정 하나하나가 의심으로 해석될지도 몰랐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사실은요... 우리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결혼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사실 얼마 안 되었다고 하기엔 5년이 넘었다) 그래서 서로 아직 의견을 많이 맞춰나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밖에 나가서 밥을 먹을지, 집에서 해먹을지를 두고 얘기하다가 감정이 격해졌어요.”




경찰들은 나의 말도안되는 영어와 독일어가 섞인 문장에도 주의깊게 들으며 내가 이 집에 살고있는게 맞는지, 여자친구인지 아내인지 정확하게 확인을하고 인내심있게 내 말을 들어줬다.




그러자 남편도 조심스럽게 "내 아내가 지금 너무 당황해서 그러는데 내가 말을 좀 도울게요. 우리가 요즘 건강을 좀 챙겨보자고 서로 식단 얘기를 했는데요... 그게 의견이 안 맞아서 말다툼이 커졌어요. 유치하죠. 네, 저희도 알아요. 정말 유치하고 부끄러워요.”




그 말을 들은 경찰 중 한 명이 허탈하게 웃었다.

거실에 나와있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지에 한가득 과자와 젤리들, 라면이 버려져있고, 싱크대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 깨끗하게 비워진 술병들과 콜라, 환타 음료수병들이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믿어졌을 것이다.




마치 긴장된 스프링이 풀리듯, 경찰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도요,”

중년쯤 되어 보이는 경찰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큰 소리로, 오래 싸우면 안 됩니다. 이웃들도 무섭고 걱정돼서 신고한 거예요.”




그 말투는 마치 선생님이 철없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듯 단호하면서도 살짝 너그러웠다. 경찰들이 돌아간 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다.
조용히, 아주 길고 묵직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