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 적절한 온도는 몇 도일까
나는 추위를 잘 타고 더위는 잘 견디는 편이고 남편은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는 잘 견디는 편이다.
그런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
같이 한 침대 생활을 하기 시작하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잠자리 문제로 꽤나 여러 번 골치가 아팠다. 한여름에도 두툼한 솜이불을 덮는 나는, 겨울에도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며 얇은 홑이불조차 밀어내다가 재채기를 여러 번 해대는 남편이 이해가 안 됐고, 남편은 여름에조차 털양말을 신고 돌아다니다가 "더워~~ 근데 양말은 발 시려서 벗기 싫어~~"라고 말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태생적으로 이렇게나 다른데, 서로 30년을 각자 다르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결혼을 했다고 해서 한 집, 한 침대 한 이불을 덮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그때는 잘 몰랐다.
사회가 만들어준 기준.
대략 20대 후반 30대 초에 연애를 잘 해왔으니 다음 수순은 결혼이다라는 루트를 따라 우리는 결혼을 했고, 서로의 다름 보다는 서로의 같음에 더 집중하며 비슷한 게 많으니, 취향이 겹치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을 했지만 실상은 같이 잠을 자는 것조차 꽤나 다르고 맞추기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맞춰야 하는 건지 뭘 맞춰야 하는 건지도 잘 몰랐다. 나는 이게 맞다고 하고 남편은 저게 맞다고 하고. 서로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다가 싸움이 시작되고. 진짜 솔로몬이 있다면 나타나서 제발 누가 맞고 틀리다고 말해주기를 바랐었다.
하나의 상황을 놓고 둘은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서로 마음의 온도가 달라서 같은 단어도 다르게 이해한다. 한 가지 문제에 한 명은 뜨겁고 한 명은 시리게도 차갑다. 연애 때 잘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맞다기 보단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독일에서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회사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 커리어를 인정받고 잘 해내고 있는데,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도,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학원을 다니며 독일어를 배우고, 가스트스튜디움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꽤 단조롭고 더할 것이 없는 일상. 간혹 한창 바쁘게 일할 나이에 무력하게 집에 있는 것 같아 쓸쓸하고 속상했지만 남편은 이런 내 슬픔을 이해해 주기보다는 자꾸 "아니야, 자기 잘하고 있어~"라는 말로 위로되지 않는 위로를 했다. 내가 스스로 잘하고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뭘 자꾸 잘하고 있다는 건지... 그런 말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지만 이건 내가 남편과 함께 결정한 일이고 나도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라고 생각해 왔다. 분명 한국에서 살 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꽤나 좋아하고 고독을 즐겨왔는데, 내가 만든 자의적인 고독과 다르게 타의에 의해서 주어지는 고독은 견딜 수 없이 막막했고 바다 밑처럼 적요했다.
곰이 겨울잠을 자듯 나는 컴컴한 동굴 속에 곰처럼 잠들어갔다.
남편이 평소처럼 건넨 짧은 말 한마디에도 나는 날이 선 채 되받아쳤다. 이유 없이 우는 날도 늘었고 독일어 공부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부질없게 느껴지고 이런 내 마음은 아무 데도 닿지 않았다. 무기력함이 온몸을 잡아끌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든,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짜증이 늘어가는 나에게 남편도 점점 지쳐갔다. 항상 다정할 것 같았던 남편도 어느 날부터는 쉽게 화를 냈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빈도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는 부딪혔고, 싸웠고, 또 어제와 똑같이 화해했다. 어쩌면 싸움은 싸움 그 자체보다, 그 끝에 나오는 말들이 더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자기는 항상 그래."
"전에 그랬던 거 또 생각나."
'지금'의 다툼은 언제나 '예전'이라는 이름을 끌어오며 점점 커졌고, 결국 끝에는 눈물로 얼룩진 서로의 어깨가 남았다. 나는 자꾸만 나를 의심하게 됐다.
‘내가 내 일을 안 해서 그런 걸까?’
‘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그러다 문득, 한국에서 바쁘게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니, 그때도 우린 싸웠다. 그땐 나도 직장이 있었고, 사람도 많았고, 할 일도 많았다. 결국 문제는 ‘일’이 아니라 ‘우리’였던 걸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또다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 다른 리듬으로 삐걱거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분명 그날도 별거 아닌 문제였다.
밥을 사 먹을까 집에서 해 먹을까 하는 보편적인 대화였고 싸움거리는 단 한 개도 없었는데 갑자기 정신 차려보니 서로에게 날선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찔러대며 악에 받쳐 싸우고 있었다.
그 순간. 활짝 열려있는 창문 밖으로 누군가 소리치며 말했다.
"Hey!!!!!! Ruhig sein!!!!"
(이봐!! 조용히 좀 해!)
"Jetzt ist Ruhezeit!!"
(지금은 조용히 해야 하는 저녁시간이라고!)
아뿔싸.
맞아 여기 독일이었지.
'Ruhezeit' 해가질때쯤이면 보편적으로 퇴근이후부터 출근 전까지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지내야하는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가 한국말로 서로 큰소리로 싸워대는 소리가 들리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동네 주민들이 창문 밖으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무리 언어가 달라도 이건 싸우는 소리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때 그만했어야 하는데, 그때 창문을 닫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참지 않았다 서로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가, 서로에게 날선말을 해댄 상대방이 미워서, 아니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사람에게 이렇게 모진 말을 내뱉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더 심하게 싸웠다.
그렇게 30여분을 더 질러댔을까.
"쾅쾅쾅쾅 쾅!"
그 순간 누가 우리 집 현관문이 부서지도록 두드려댔다.
그냥 이웃 주민이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 생각과 다르게 완전무장한 경찰 4명이 현관 앞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