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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쑤 Jun 30. 2023

여자 공중화장실에 나타난 변태













인적 하나 없는 새벽 시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놀고 난 뒤 귀가를 할 때였어요.

(20대 때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용무가 마려워서 지하철 공중화장실로 급히 달려갔었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정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어요. 간신히 변기에 앉아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있는데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이 새벽에 나처럼 볼일이 급한 사람이 또 있네'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분명히 누군가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는 들렸는데 다른 칸에 들어갔다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거나, 손만 씻고 나간다면 수돗물을 트는 소리라도 들려야 할 텐데 갑자기 조용해지는 겁니다. 촉이 민감한 편인데 느낌이 싸해지더라고요. 


영화 '도가니' 보셨나요?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수진들이 비인간적으로 벌인 성폭력과 학대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그 영화에서 저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장면 중의 하나가 있었는데요. 나쁜 어른들을 피해 화장실 칸 안에 숨어있던 피해자 청각 여학생을 쫓던 교장이 옆 칸에 들어가선 화장실 변기 위에 발을 딛고 올라가 위에서 몰래 여학생을 지켜보는 게 나오거든요.

순간 그 영화 장면이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가지 뭐예요.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을 갖고 느낌이 이상해서 옆 칸의 위를 쳐다봤는데요. 저는 그 자리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큰 안경을 끼고 완전 찐따같이 생긴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볼일 보고 있는 저를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온몸이 굳어서 고함 소리도 안 나왔어요. 

그 변태는 제가 발견할 줄 몰랐는지 깜짝 놀라서 바로 도망가버렸고요. 전 잠시 숨을 고르고 뒤늦게 그 변태를 잡으러 화장실 밖을 뛰쳐나왔습니다. 이미 변태는 도망간 이후였죠. 역무원에게 알리고 변태를 잡고 싶었지만 늦은 시간이라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너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그냥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던 기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굳이 냄새나는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와서 그런 행각을 벌이는 이유는 뭘까요? 정상인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죠. 그때 만약 변태가 무기라도 갖고 있었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무서운 상상도 들더군요. 비겁하게 숨어서 지켜보는 겁쟁이 변태여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아쉬운 건 더러운 변태가 재등장할 것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죠. 

그날 이후로 여성 혼자서 밤늦게 외진 곳을 다니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왕이면 사람들이 다니는 시간에 귀가를 하고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요. 

아직 저는 자녀가 없지만 겪었던 이런 위험한 일들을 되짚어보면 세상이 각박해져서 딸 하나 키우기도 무섭습니다.ㅠㅠ 주머니에 비상용 후추 스프레이라도 하나 들고 다녀야 할까 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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