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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May 03. 2020

서른, 나는 지역신문 기자다.

한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모든 영상을 "클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참 현명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께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올해 서른이 됐다. 그리 실감이 나진 않는다. 크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도 않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나의 나이와도 큰 관련이 없다. 


다만, 다분히 고리타분한 인상을 풍기는 '지역신문'이라는 단어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그래, 내가 사는 지역에 신문사가 있지.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기자들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 나이를 드러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기자는 크게 중앙지와 지역지 혹은 지방지 기자로 나뉜다. 지역지의 자존심을 조금 부리자면, 중앙지는 서울에 적을 둔 '재경지'라고도 부를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다니는 회사에 합격하기 전 지역신문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다. 지원서를 넣은 여러 언론사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합격 전화를 받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들어가서 일을 배울까 아니면 시험 준비를 더 해볼까. 


전자를 선택한 결과로, 만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함께 입사한 동기 중 하나는 방송사로 이직을 했고, 다른 한 명은 공공기관 홍보팀으로 아예 전직을 했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한동안 이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입사 이후에도 중앙지에 가고 싶다는 잡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이 회사에 남아 있는 이유는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다. 우선, 서울의 복잡함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대학 4년을 제외하고 도심 생활을 한 경험이 많지 않아 '촌티'가 아직 벗겨지지 않았나 보다. 이런 환경적인 부분을 떠나 일적인 부분에서도 흥미로웠다. 지역의 관점에서 사물과 사안을 바라본다는 점이 좋았다. 지역신문이기에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다양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취재거리가 많았다.  


여기까지가 장점. 답답한 일도 많다. 좋게 말하면 규모가 작고, 재정적인 측면에서 어렵다. 나쁘게 말하면 언론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돈(광고)을 벌어와야 회사를 운영할 수 있고, 편집국은 출입처에서 광고를 따 내는 일에 상당 부분 개입한다. 


돈을 버는 기자가 많고, 기사를 쓰는 기자는 적다. 회사에 돈을 가져다주는 기자가 인정을 받고, 신문을 만드는 기자는 되레 찬밥 신세임을 느낀 적도 간혹 있다.


그래서 '기레기'라는 비난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 욕을 들을 법한 일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언론사가 기사를 써서 광고라는 물질과 바꾸는 일이 적지 않았다. 지역신문만의 일은 아니지만 옹호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기자가 혹은 회사가 광고에 목을 매는 건 눈에 보인다. 그래서 비판을 할 수 있고, 부당함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 '좋은 기사'를 쓰고자 하는 고민이 편집국에서 사라졌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뭐라 형용할 순 없지만 슬픈 감정이 북받친다. 나의 20대가 그리고 30대가, 내 청춘이 이렇게 흘러가버릴까 서글픔을 느낀다.


따뜻한 기사를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 동료가 아직 편집국에 있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젊은 기자들이 회사를 바꿔보자고 말하고 있다.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규모를 떠나 조직 앞에서 개인과 소수는 한없이 작아진다. 


매일 하는 일이, 그리고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이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인데, 정작 나의 이야기를 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가끔 이유를 알 수 없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서인지, 그런 내 모습이 처량해서인지 몰라도 그럴 때마다 이곳에 글을 남기고 싶다. 내가 쓴, 우리가 쓴 좋은 기사도 공유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날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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