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이 만들어지는 이야기
산산산 산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들들들 들에서 곡식들이 자란다
조롱조롱 가지에 과일들이 자란다
졸졸졸 비맞고 잘도 자란다
재희가 즐겨 듣고 불렀던 동요이다.
이 동요를 들으면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재희를 낳고 기른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태어나자마자 응급실에 실려가고
알수 없는 수유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 뒤로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 하며
치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발달장애라는 큰 짐을 얹고
살아가는 우리 딸 재희.
몸과 마음의 준비 없이 엄마가 된 나의 죄를
재희가 대신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죄채감과 반성 시간
뜨거운 눈물로 키운 시간
그 가운데 내 손을 잡아 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여러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쌓여가고 있다.
재희 어린이집 원장 수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 태어나서 남을 감동시키고, 삶을 변화시키고 죽는 사람은 흔치 않아요. 그런데 재희는 벌써 그것을 해내고 있는 아이에요. 엄마의 삶도 변하지 않았나요?"
그렇다. 내 삶은 재희를 낳기 전과 낳은 후로 구분 되어져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인생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나를 새롭게 찾아가고 있다. 재희와 같이 살아가는 일상의 기록들에서 나를 발견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어른이 된다는 건'이란 책을 보면 마음에 닿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
"다만 어린 시절에 체험한 일의 가치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것의 중요함은 어른이
되지 않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인생이란 참 절묘한 것 같습니다."
"괴롭고 힘겨운 일은 자신의 깊은 곳까지 뒤틀어 놓기도 하고 또 그 당시에는 정말 괴롭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어떤 토대가 되기 마련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견디는 수밖에 없죠.
긍정적인 사고로도 맞설 수 없고, 없는 일로 해 버릴 수도 없습니다. 비참하고 하찮은 자신과
마주하고 보내는 모래를 씹는 듯한 나날은 인생에서는 어쩌면 필수 과목일 테니까요"
"올바르게 행동하면 마음의 응어리가 없어지는 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인 자신을 살갑게 보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어제는 성당에서 신부님께서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태국의 한 젊은이가 매일 반복하며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은 행동들이
시간이 흘러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매일 의미없이 흐르는 물주기 밑에 화분을 매일 갖다놓았더니
시간이 흘러 그 화분은 크게 자라났다.
점심을 먹을 때 마다 따라오는 강아지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독거 노인 문 앞에는 매일 과일을 매달아 놓고 갔다.
나중에 강아지와 할머니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동냥을 하는 어린아이에게
지갑에 있는 돈에 반을 꼬박꼬박 주었더니 나중에 그 아이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
재희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이었지도 모른다.
재희의 맑은 눈망울과 착한 행동에 감동 받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였던 나는 재희로 인해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재희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바라 "봄"
마주 "봄"
살펴 "봄"
돌아 "봄" 의 과정들을
"ㅂ"에 담아가는 글들을 이제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