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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Sep 23. 2020

차 없는 데이트

그는 이 사건 이후 지하철에 빈자리가 있어도 절대 앉지 않았다.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는 데이트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고, 다시 차를 타고 카페로 이동해 커피를 마시고 산책할 데가 있으면 걷고, 아니면 바로 차에 타 다시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런 정적인 데이트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번 주말에는 차 없이 홍대에 가서 놀자 제안했고, 지하철을 타고 같이 홍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차로 갔으면 벌써 도착했을 텐데 불편하다며 계속 서서 왔다며 힘든 내색을 했다.

항상 그가 짜오는 일정대로 움직이다가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데이트를 제안했는데, 투덜거리는 그를 보니 섭섭하면서도 진짜 힘든가 보다 싶어 미안했다. 내내 서서 왔다는 그의 말에 나는 자리 나는 곳이 있는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때마침 가까운 곳에 빈자리가 생겼다.


“나는 다리 안 아프니까 오빠 앉아.”


그는 자리에 앉았고, 서 있는 상태에서 그에게 말을 걸기 위해 고개를 숙였는데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의 정수리가 눈에 들어왔다.


“오빠. 여기 머리가 왜 이렇게 없지? 가르마가 이상하게 타졌나. 두피가 보여.”


그저 보이는 대로 말했는데 그는 갑자기 전에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로 ‘아이씨’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에서 보니까 조명 때문에 잘 보이는 거야. 나, 서있을래.” 그가 인상을 잔뜩 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이나 주변에 탈모를 앓는 사람들도 없어서 ‘탈모’라는 사실 자체에 긍정, 부정의 인식조차 없었다.


그가 가진 콤플렉스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내뱉은 실수였다. 

오히려 머리숱이 많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미용실을 가면 다들 

“어휴. 생각보다 머리숱이 많네요. 돈 더 받아야겠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머리숱이 많은 게 안 좋은 건 줄 알았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재승은 그날 내내 홍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내게 들으라는 듯이 

“쟤는 머리숱 많네, 쟤도 뚜껑이 빈약하네.”를 연발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지하철에 빈자리가 있어도 절대 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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