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教)와 탈강남의 사이에서
나는 1980년대에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현재 거주지인 서울 강남권 끄트머리로 이사 왔다.
부모님이 학군지를 찾아다니는 그런 성향의 분들은 아니셨고, 아버지의 직장 따라서 집을 옮긴 것이다.
구로공단에 있던 직장을 다니시던 아버지가 서울 강남권에 있는 직장으로 옮기신 것이었는데, 그것도 나중에 복기해 보니 한국의 경제 발전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강남은 잘 사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사하기 전부터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격차가 크지는 않았다.
대단지 아파트 촌에서 살짝 벗어난 우리 동네는 동네 입구에 연탄 가게도 있었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된 무허가 주택 밀집지도 있었고, 동네에 건물이 지어지지 않은 공터가 많아서 겨울이면 가마니 깔고 물을 뿌려 야외 스케이트장이 열리던 시절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른바 '교육 1번지'라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도 1990년대 중반에 형성되었다고 하니, 내가 보낸 강남에서의 학창 시절은 지금의 치열함보다는 조금 덜 했던 것 같다.
나의 신혼살림은 금전적인 이유로 서울 외곽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무리를 해서 다시 내가 자란 강남권 끄트머리로 들어왔다.
주거 비용의 압박은 상당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는 환경은 단순히 집값이 비싼 동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학군지에서는
"왜 나만 이렇게 공부해야 해?"라고 묻던 아이가,
이곳에 오니 더 이상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이곳은
공부를 하는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이고,
공부를 안 하는 아이가 특이한 아이인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이동 시간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대치동 학원에 자주 다니지는 않았고, 대치동은 간혹 방학 특강을 듣는 정도였다.
처음 대치동에 라이등을 갔을 때 마주한 대치동 학원가의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밤늦은 시간,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아이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끝없는 차량의 행렬.
부모인 나도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분위기였다.
그 거대한 치열함 속에 던져진 아이라면 "이 정도면 됐어"라는 안일함 대신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형편상 학군지 진입이 어렵다면, 나는 방학 특강만이라도 대치동(또는 해당 지역의 거점 학원가)의 공기를 마셔보길 권하고 싶다.
그곳의 공기는 단순히 문제 풀이법을 하나 더 배우는 것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바꿔놓기 때문이다.
최근 입시 제도가 변하면서 내신 성적을 따기 유리한 곳으로 옮겨가는 '탈대치', '탈강남' 전략이 유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보편적인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어떤 폭풍이 쳐도 돌부처처럼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극소수의 아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간은 주변 환경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탈학군지?
전교 1등 하러 가는 거라면 가는 게 맞다.
하지만 '학군지에서 3등급인데 비학군지 가면 1등급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는 거라면 말리고 싶다.
전략에 앞서 아이의 성향 파악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