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입시용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때 아이에게 가야금을 가르쳤다.
국악과 출신 선생님을 섭외해서 틈틈이 개인 지도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피아노학원은 짧게 끝내고, 그 대신 국악을 맛보게 해 준 것인데,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면 예체능을 시켜보겠다는 아내의 “입시 플랜 B”이기도 했다.
예체능 중에 왜 국악을 선택했냐 하면,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류 열풍으로 앞으로 국악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전망과,
국악은 나라에서 육성하기 때문에 다른 예체능에 비해서 돈이 덜 들 것이라는 추측 등을 고려한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몇 년 동안 꾸준히 가야금을 배웠고, 초등학교 졸업 전에 경험 삼아 국악 대회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권위 있는 거창한 대회는 아니었고, 서울 근교 도시 문화예술회관 같은 곳에서 열린 작은 대회였다.
새벽부터 한복과 가야금을 준비하고 차로 한 시간여를 달려서 대회장에 도착했다.
나름 여유 있게 도착한다고 했는데, 벌써 참가자들이 복도에 돗자리를 깔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대회는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일반부 이렇게 순서대로 대회가 치러졌다.
참가자는 각 부별로 열댓 명 정도.
우리는 경험 삼아 출전한 것이니, 오전에 초등부 경연이 끝나면 바로 심사결과를 보고,
근처 맛집을 검색해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초등부 경연이 끝나고 중등부 경연이 시작되었는데도, 초등부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회 관계자에게 살짝 물어보니 곧 발표가 날 거라고 했지만 함흥차사였다.
기대는 안 했지만 혹시나 상을 주면 받아야 하기에 자리를 비우지도 못하고 기다렸다.
공복에 예민한 나는 투덜대면서 기다렸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사람도, 주최 측에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다.
주최 측은 일반부까지 다 끝나고 오후 3시 무렵이 되어서야 수상자 명단이 적힌 종이를 벽에 붙였다.
예상대로 우리 아이 이름은 없었다.
상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은 전혀 없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는 우리 아이의 가야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저 내 새끼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한 거 같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대회 참가 신청서에 “지도 선생님”을 쓰는 칸을 보고 이미 직감했다.
'참가자의 실력보다 선생님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한 심사 요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러한 생각은 문외한 아빠의 근거 없는 억측이었기를 바라며, 대부분의 예술계가 공정한 심사를 한다고 믿는다.))
그 바닥에서 찍히면 안 되기에 대회 주최 측의 무성의에도 항의하지 못하고 묵묵히 기다리는 학부모님들 보면서 느꼈다.
‘예체능 학부모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나는 재력도 안 되는 주재에 끼니 거르는 것도 못 참고, 성질머리도 더러우니 예체능 학부모를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 대회를 마지막으로 아이의 가야금 배우기는 중단되었고, 그 이후로는 중학교 진학을 대비해서 영어, 수학 공부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 생활 중 학교 행사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등 이후 가야금은 아이의 자신감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줘서 국악이라는 입시 플랜 B는 가동되지 않았지만,
가야금은 아이에게 자랑할 만한 특기이자 평생의 취미로 남았기에 가야금을 가르친 것은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