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미술대회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작은 성취감의 누적이 큰 성과를 만든다.

by 와룡선생

"우리 아이는 도통 의욕이 없어요."

"목표 의식도 없고, 뭘 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뭔가 시작해도 금방 포기하네요. "

주변 부모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의욕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맛보게 하는 ‘작은 성취감’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에, 우리 가족은 어린이 미술대회에 엄청나게 많이 참가했다.

무슨 대회가 그렇게 많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나도 몰랐던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엄청나게 많았다.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한은행, 빙그레 같은 기업부터

국립현충원이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국가기관에서도 미술대회를 개최했다.


아내는 봄가을이면 부지런히 대회를 검색하고 참가신청을 했다.

나는 차를 운전하고 돗자리와 캠핑 테이블을 설치해 주면 아이는 그림을 그린다.

아내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면서 소풍을 겸하게 된다.

그때에는 왜 그렇게 주말마다 미술대회에 참석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던 것 같다. 저렴한 주말 나들이임과 동시에 아이에게 작은 성취감을 주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림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하얀 도화지를 끝까지 채워 ‘제출’하는 과정 자체가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린이 그림대회인 만큼 참가상, 가작 등 많은 아이들에게 시상을 하니까 아이는 그것만으로도 뿌듯해했다.

국립현충원에서는 미술대회와 백일장대회 수상작을 책으로 만들어 준다


스스로 무언가를 완결 지어 본 경험, 그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한강 이촌지구 인라인 트랙에서 열린 단거리 인라인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3명씩 한조로 경기를 하고, 1,2,3위에게 각각 금, 은, 동메달을 주었다.

우리 아이는 동메달을 따고도 시상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와 함께 5km 인라인 대회를 완주하기도 했다.


월드비전에서 개최하는 'Global 6K for Water' 걷기 대회나 광화문 걷기 행사에서 완주 메달을 목에 걸 때도 아이는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러한 성취의 경험은 꼭 대회 형식을 빌릴 필요도 없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 제주도 새별오름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가파른 경사 앞에서 아이는 내내 힘들다며 투덜댔다.

나는 아이를 얼르고 달래며, 때로는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며 결국 정상에 섰다.

발밑에 내려다보이는 경치와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올라오길 잘했지?"

내 물음에 아이는

"응, 올라오니까 좋네. ㅎㅎㅎ"

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정상석 옆에서 찍은 기념사진 속에는 ‘해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새별오름 성취감.jpg


부모들은 흔히 동기부여를 위해 ‘칭찬 스티커’ 같은 보상을 활용하지만, 나는 이것에 극렬히 반대한다.

이는 경영학에서 경계하는 ‘성과주의(Performance-oriented)’의 함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이름을 딴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은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더 이상 좋은 지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책 읽기에 칭찬 스티커를 도입했다고 할 때, 스티커를 받기 위해 자기 수준보다 훨씬 쉬운 책만 골라 읽는 식의 ‘목표의 전도’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

보상으로 아이를 길들이기보다, 성취의 기쁨을 통해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내재적 동기’를 깨워줘야 한다.

작은 성취감이 모여 자신감이 되면, 아이는 스스로 ‘자기 레벨’을 설정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1등의 그릇’이라 믿는 아이는 혹여 결과가 나빠도 다시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자신의 레벨을 낮게 정해버린 아이는 조금만 잘해도 안주한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아주 살짝 높은 과제에 도전하고, 그것을 넘어섰을 때의 희열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가끔씩 방을 정리할 때면 자리만 차지하고 아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버리고 싶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이가 받아온 각종 대회의 상장이며 완주 메달, 인증서 같은 것들이다.

아이의 작은 성취감을 만들어준 소중한 자산이기에 먼지가 쌓여가도 간직하기로 한다.

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준 이 작은 ‘성취의 기억’들이 모여 오늘날 아이가 스스로의 레벨을 정하고 나아가는 든든한 근육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무기력은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고, 의욕은 해냈다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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