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립 S대 법학과 94학번이다.
수능 1세대로서 나름 변화된 입시 유형에 잘 적응했고, 고시 공부를 염두에 둔 채 법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대학 생활은 기대와는 달랐다.
법대 동기들은 1학년 때는 의미 없는 음주와 당구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2학년부터는 각자 고시 공부의 길로 들어갔다.
의미도 재미도 없던 대학 생활에 실망한 나 역시 병역을 일찍 마치고, 신림동 고시촌에 합류했다.
그곳엔 직업이 고시생인 '장수생' 형님들이 가득했다.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을 만큼 실력자인 것 같은데 번번이 낙방하시는 형님들도 계셨고, 고시생이라는 간판만 걸어놓고 나태하게 생활하는 형님들도 계셨다.
그분들을 보며 나는 굳게 다짐했다.
'내 젊음을 고시촌에서 다 보내지는 않으리라'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운도 따라주어 졸업하던 해에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그때부터는 학교 고시반에 들어가 숙식하며 2차 시험에 매진했다.
일주일 내내 법전과 씨름하다 주말에만 겨우 빨랫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하루 아들이 집에 오는 날에도 부모님은 매번 부부싸움 중이셨다.
"아들이 집에 왔을 때만이라도 평화로운 척해 주시면 안 될까?"
한 번은 참다못해 법원 홈페이지에서 이혼 서류 서식을 출력해서 두 분께 내민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맨날 싸우면서 사실 거면 차라리 이혼하시라"는 모진 소리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두 분이 이혼을 하시지는 않으셨다.
부모님의 싸움은 일상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늘 정서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결국 그다음 해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나는 미련 없이 고시 공부를 접었다.
나의 사법고시 포기 선언에 판검사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님이 누구보다 실망하셨다.
당시에는 '장수생이 되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과 '다 큰 아들 고시 비용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부부싸움이 일상인 집안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며 그 불안한 공기 속에 머무느니, 차라리 내 힘으로 평온한 내 공간을 꾸리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다짐을 지키며 살고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에 매일이 평화로울 순 없다.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 부부는 적어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싸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내가 고시 공부를 하며 겪었던 그 '정서적 불안'이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알기 때문이다.
오래전 읽은 [대한민국은 사교육에 속고 있다]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이의 성적은 사교육 보다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학원과 과외를 붙여줘도 아이의 마음이 불안하다면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른 것도 그렇겠지만 아이의 공부도 ‘화목한 가정'이 제일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P.S.)
이 글은 공부에 있어서 정서적 안정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저의 사법시험 실패를 부모님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저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형편에서 최선의 사랑과 지원을 주셨음을 잘 알고 있고,
그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