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28 Kenya, Nairobi
Into the unknown
긴 여정 뒤에 도착한 케냐는 이미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온 몸을 비롯해서 그 몸을 덮고 있는 옷까지 쉰 내와 찌린내가 옹기종기 모여 아주 신선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서 빨리 숙소로 가야 한다. 냄새가 원인이 된 것도 있지만 저녁이 다가올수록 점점 커지는 막연한 두려움도 한 몫했다. 아프리카라면 동물의 천국이라는 것 빼고 아는 게 없으니 이 미지의 세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안전제일이다.
이곳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아프리카의 뉴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만큼 다른 아프리카에 비해 발전됐고 물가 또한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택시보다는 공항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공항을 돌아다녔지만 이미 모든 버스가 끊겨 버렸단다. 어떻게 갈지 방법을 고심하던 중에 때마침 환전을 하고 있는 홀로 여행자가 눈에 들어 왔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택시쉐어를 제안했다. 비록 서로 목적지가 달랐지만 다행히 비슷한 방향에 숙소를 잡았기에 그녀는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이스라엘에서 온 그녀의 이름은 마리나, 그녀는 앞으로 3개월 동안 케냐의 고아원에서 봉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쩌다가 봉사까지 계획하게 된 거야?"
-"나는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다가 며칠 전에 그만 뒀어. 그래서 이렇게 모처럼 얻은 자유시간에 단순한 여행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것들을 하고 싶었어"
-"우와.. 그런데 혼자 아프리카에 오는게 무섭지 않았어?"
-"아니 별로,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더라구."
봉사를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는 것도 신기하고, 잔뜩 웅크러든 콩벌레같은 나와는 다르게 아무런 두려움 없이 씩씩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 또한 신기하다.
꽉 막힌 도로 위에 거북이처럼 천천 달리던 택시는 해가 다 꺼지드락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새 컴컴한 어둠이 찾아왔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 택시 안에서 그녀의 대화가 길어져 한편으로 좋았지만 성큼 다가온 어둠에 내 심장은 갓 쪄낸 찹쌀떡처럼 쫀득 쫀든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택시를 잡은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즈임, 내가 내려야 할 곳에 먼저 도착했다. 부쩍 친해져 마리나와의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여행길에서 만나고 다시 여행길에서 헤어지는 것이 곧 여행자의 삶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녀에게 콩 사탕 한 줌을 쥐어주고, 먼 미래를 기약하며 작별을 고했다. “See you, 마리나!”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내가 내린 곳은 나이로비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북적거리는 곳으로, 마치 포화 속의 한가운데라고 느낄만큼 혼돈 그 자체였다. 꽉 막힌 차들은 느릿느릿 기어가면서도 매연은 어찌나 그렇게 사납게 내뿜고 있는지 목에도 교통체증이 있는 것처럼 뭐가 걸려있는 듯이 따끔하고 칼칼해졌다. 각종 소음과 공해, 마치 인해전술을 방불케 하는 많은 사람들, 어디가 길인고 어디가 차도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교통,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것은 나를 바라보는 수 많은 눈빛들.
두려웠다. 나는 귀중품이 들어있는 앞가방을 사랑을 나누는 연인처럼 두 팔로 꼭 껴안았고, 구글지도를 켜놓은 핸드폰은 끝모서리가 뭉게 질 정도로 두손으로 꽉 쥐었다.
숙소에 가기 전 사파리 사무실에 갔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닫혀 있었다. 메일로는 저녁 11시까지 한다더니 사파리 회사에게 아주 보기 좋게 낚여 버렸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러기 있냐 진짜.
괜히 헛걸음 한 덕분에 귀중한 시간만 까먹고 내 마음은 더 급해졌다.
다시 빠르게 걸으며 숙소로 향하는 길, 한 쪽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무리들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의 머릿 속은 복잡해진다. 비록 다이어트 복싱을 배웠지만 이렇게 상대가 많아지면 곤란하다. 아무리 군산 피바다의 주역으로 이름을 날렸던 나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괜히 지나친 예측으로 그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헛된 억측이 아니다. 그들은 나의 움직임에 따라 고개를 젖히면서까지 나를 향한 눈빛을 거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을 피해가고 싶지만 갑자기 발길을 돌리면 괜히 없던 시비도 만들어서 내게 쫓아올 것만 같다. 과연 저들은 누구인가. 갱단인가. 그리고 저들이 피우고 있는 것은 담배일까 대마초일까. 근데 주머니에 왜 손을 넣고 있는 거야. 설마 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나는 지도를 보기 위해 들었던 핸드폰을 주머니 속 깊이 파묻고, 고도의 눈치와 겸손이 발휘된 모습으로 그들 앞을 살금살금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중 한명이 내게 한 마디를 건넨다.
“니하오?”
이것은 말로만 듣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 평소같으면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지만 이 순간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주한 그들의 눈빛을 보니 조롱의 눈빛이 아니라 단골 순대 국밥집 아주머니 같은 푸근한 눈빛을 하고 있던 게 아니던가.
겸손하게 살았던 건지 비굴하게 살았던 건지,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나도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헬로, 나이스 투 미츄!”
그리고 그들은 손짓을 하며 좀더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했다. 그리고 어느 상인이 팔고 있는 감자구이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봐 너는 어디서 왔니?"
-"나는 한국에서 왔어"
-"오오 제키찬! 그럼 너 쿵푸할 줄 아니?"
-"아니, 쿵푸는 중국이고 우리나라는 태권도야. 태권도는 아시아 최고의 무술이지."
이전에 두려운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나의 예측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들은 갱단도 아니었고 강도도 아니었다. 피부색 다른 내게 호기심을 보이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그들은 내가 숙소로 가야한다고 말 했을 때 이곳은 위험하니 항상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숙소 앞까지 나를 배웅해주기까지 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며 나쁜 사람일 거라는 못된 생각을 했다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친구들의 에스코트 덕분에 안전하게 숙소까지 도착했다. 드디어 50시간이 넘어서야 침대 위에 등을 붙여 누워본다. 도저히 눈물없이 경험할 수 없는 감격의 시간이다. 그동안 고생한 등허리가 마음껏 침대를 느낄 수 있도록 온 몸을 던져 大자로 뻗었다. 씻어야 하는 귀찮음은 내일의 나에게 미뤄두고 빨리 자기로 했다. 그런데 열린 창문 사이로 쿵짝뽕짝 음악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숙소가 번화가에 있다보니 곳곳에 라이브 뮤직이나 클럽이 밀집해 있었다. 창문을 통해 새어들어오는 노래를 막기 위해 창문을 닫으려 했지만 돌덩이같이 딱딱하게 굳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쿵짝쿵짝이었지만 이 격렬한 리듬감도 찾아오는 피로 또한 막을 순 없었다.
눈커풀은 힘을 잃어가고, 의식은 흐릿해진다.
참 고생 많았던 하루,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나의 꿈자락이 고요하겠구나.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건넨다.
- “니하오!”(How are you!)
이곳에서 모든 동양인은 중국인으로 통한다.
하지만 중국인이 되어도 상관없다.
뭐 마음만 통하면 됐지.
- “헬로 나이스 투 미츄. 아임 파인 떙큐 엔유?!”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