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설사

역마살 이야기 30 Kenya, Moyale

by 역맛살



Hakuna Matata, What a wonderful phrase!


- 영화 라이온킹의 OST Hakuna Matata 중에서


버스로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구간은 30시간이 꼬박 걸리는 아주 아주 긴 여정이다. 역시 장시간 버스에는 언제나 저녁 버스를 타는 쪽을 선택한다. 낮시간에 눈만 말똥말똥 뜨고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녁에 눈 딱 감고 자는 편이 나았으니 말이다.(숙소 값도 아낄 수 있다는 이점까지.)물론 비행기를 타고 한번에 목적지까지 날아갈 수 있었지만 워낙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나는 돈 대신 몸을 쓰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한참 잘 가고 있다가 버스를 탄 지 2시간쯤 지났을까, 뱃속에서 불길한 예언의 전주곡이 울려왔다. 동시에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뭔가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잠시 돌이켜 보니 오늘 먹은 것이라고는 아침에 조식으로 나온 팬케익뿐이었다. 다만 조식을 먹을 때면 언제 또 맘껏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동면을 준비하는 동물처럼 왕창 먹어두어 에너지를 비축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단지 평소보다 조금 많이 먹었을 뿐이다.

아마 문제의 원인은 '소시지'였던 것 같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현지인이 건넨 소시지를 받았다. 약간 깨림직한 비주얼에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설마 이거 하나 먹는다고 무슨 일 생기겠어 하며 낙관했다. 그때 낙관에 대해서 근거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기는 호기심이 근거 없는 무한긍정을 만들어 냈었던 것이다. 물론 그와 더불어 굶주림에 의한 일종의 본능적인 것도 일부분 있었다.

그런데 몸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주는 것을 그렇게 넙죽넙죽 받아먹으니 배탈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


여행을 떠나 복잡한 생각을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머릿속은 통증의 근원지인 뱃속에 집중하며 자꾸만 불안한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은 의외로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말라고. 아무래도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으니 나름 이성적인 조언임을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불안한 상황을 가정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차라리 미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두고 어느 정도 그에 대한 완충장치를 대비를 해놓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일이 닥쳤을 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그나마 최소한으로 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이 비록 일어날 가능성이 아무리 적더라도 자연스럽게 과장된 상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낮은 확률로 상상했던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처음에 미미한 통증이었기에 별 탈 없을 줄만 알았지만 별 탈은 잠시 후에 진짜 배탈이 되어 시작됐다. 불길했던 전주곡이 고통의 변주곡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배에서 무언가 직감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것은 그냥 단순한 똥이 아니라 물똥이라는 것. 아마 겪어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냥 똥은 여차저차 참을 수 있어도 물똥은 아무리 튼튼한 관략근으로 쪼인다 한들 절대 참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물똥을 감지한 이후로는 긴장감을 비롯하여 관략근의 힘조차 풀 수 없는, 모든 순간이 서스펜스로 변해버렸다. 만일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한다면 상황을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붙잡아라, 있는 힘껏 붙잡아라. 온 우주가 나의 소망을 실현시키도록 더욱 간절히 붙잡아라.


다행히 배에서 신호가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휴게실에 도착했다. 그곳은 푸세식 화장실이었고 변기로 물을 내릴 수 없어 바가지로 직접 물을 떠서 내려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 두 사람의 귀찮음으로 인하여 이전에 이용했던 사람들의 숯한 흔적과 냄새가 그대로 남아있는 끔찍한 화장실이었다. 그러든 말든 이것저것 재고 따질 여유가 없는 나는 곧장 바지를 내리고 모든 것을 힘껏 떠나보냈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신호는 버스가 다시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찾아왔다. 버스가 언제 정차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 나는 또 한번 아찔한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당장이라도 지릴 것만 같았다.

급하게 지갑에서 5달러를 꺼내 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에게 건네며 간곡히 말했다.

-“아이 니투 풉..(나 똥 마려..)”

기사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엉덩이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보이니 그제야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피식 웃더니 내가 건넨 돈을 사양하며 잠시 뒤 차를 멈춰주었다.

먹이 엎질러진듯한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이미 바깥세상 전부가 나의 화장실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본능과도 같이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자동차 전조등으로 보이는 희미한 윤곽을 두리번거리며, 적당히 버스에서 가까우면서 승객들 눈에는 뛰지 않는 곳을 잽싸게 찾아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나의 묽은 것들은 힘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제 길을 아는 듯 빠져나왔다. 그래도 힘을 주고 또 줬다. 제발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도록 저 멀리 우주의 기운까지 모아서.

그러나 악몽은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떠나보냈던 물똥의 신호는 또다시 찾아왔고 앞서 했던 일련의 과정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순간 혈변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때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살면서 처음 싸보는 피똥이었다. 변의 색깔이 선홍빛의 피를 담고 있자 갑자기 두려움이 온 몸을 감쌌다. 실존적 고통 앞에 죽음이라는 관념적 두려움은 더욱 뚜렷해졌다. 누구나 결국 죽는다지만, 이 평등한 사실이 막상 내게 닥쳐오니 그 공포는 크기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나는 단지 여행을 떠나왔을 뿐인데 황천길로 떠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때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란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왜 그 순서가 내게는 이렇게 야속하게도 빨리 찾아든 것인가. 아마 이 요단강 앞에 섰던 수많은 혼령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의 창대한 인생이 결국 이렇게 로그아웃되는 것인가. 그렇기에는 아직 살지 못한 여생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떠나기에는 너무 허무한데.

물론 현재 100세시대라는 것에 걸맞게 100세까지 살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직 계란 한 판도 받아보지 못한 꿈 많은 20대였다. 그렇게 피똥으로 시작된 죽음과 나의 관계는 이제 아직 젊다는 이유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공존의 관계가 되어 있었다.


나의 생명을 위협하며, 또 끊임없이 밀고 나오는 이 불도저같은 물똥을 멎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대상이 우주든 전지전능한 신이든 상관없다. 간절하면 우주가 나를 돕는다고 했듯이 이토록 목마른 영혼의 간절함이라면 그 누구든 나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나에게 초월적인 관략근의 힘을 가지게 하거나, 나의 열린 배설 구멍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어떤 전지적 존재에게라도 감사의 번제를 드릴 만큼 절박했다. 하지만 늦은 저녁에는 신께서도 일과를 마쳤는지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수 없이 버스를 멈춰 세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풉풉 치노"라며 똥쟁이 중국인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장난기 많은 케냐 사람들에 장난이었을 뿐, 그들은 괜찮냐는 걱정과 함께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고 박수도 쳐주며 내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들의 응원에 괜스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다른 것만 나왔다. 그 늦은 새벽, 쪼그려 앉아 홀로 분투하며 올려다본 밤하늘이 잊혀지지 않는다. 빛이 없는 곳에서 별과 달은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놓은 별빛과 청명한 달빛이

내 눈망울에 어려

투명한 물빛으로 촉촉히 적신다.


그런 밤하늘을 보며

나는 아파서 지리고,

아름다워서 지렸다.


정말 질리고 지리는 하루구나.


인생은 하쿠나 마타타!

걱정마, 모두 잘될 거야.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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