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마살 이야기 33 Madagascar, Morondaba

by 역맛살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구름을 제치고 내려온 비행기의 창 밖으로 거대한 시야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갈색의 울긋불긋한 흙산맥들이 빗어낸 표면은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지구 밖을 벗어나 마치 화성에 착륙을 준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보이는 회색빛의 기다란 활주로를 보고 지구 밖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사납게 달리던 비행기는 쿵하고 지구별 위로 착륙했고, 나는 조그만 공항에 내려 느릿느릿 한 명씩 진행되는 입국도장과 비자를 받았다.

이름부터 뭔가 귀여운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리보는 분명 한 나라의 수도였음에도 아스팔트의 기름 냄새보다는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리고 걸음과 마주하는 곳에서는 작고 허름한 건물들이 줄 지어 있어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정겨운 길을 걷다 보니 꾀죄죄한 이방인을 흠칫흠칫 바라보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곳을 여행하는 동양인이 별로 없다보니 그들에게 나는 신기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봉쥬르”인사를 건네자 그들은 수줍은 웃음을 보이며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주변을 감상하며 길을 지나가다 어느 어둠침침하고 시끌벅적한 골목으로 눈에 보여 들어가니 미로 같이 얽혀있는 좁은 시장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주먹만 한 크기에 도넛같이 생긴 빵을 발견했는데, 하나에 우리나라 돈으로 30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소비를 촉진시키는 혜자스러운 가격에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과소비를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두툼한 빵 봉지를 옆구리에 찔러 넣고 하나씩 꺼내 먹으며 길을 걷던 중, 모래판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보여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모습을 보니 가죽은 다 뜯어지고 바람은 다 빠져버린 공을 하나 두고 아이들은 마치 전쟁통의 군인처럼 아주 격렬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몸 곳곳에는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마땅히 할 것도 없었는데 마침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나름 학창 시절 공 좀 찼던 실력으로 현란한 개인기를 뽐냈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들과 이미 성인인 나와의 신체적인 차이는 아마도 꽤나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때로는 세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인생은 실전이야. 이 쪼꼬미들아'

허름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펼쳐진 포화 같았던 모래판 위의 축구가 끝나고, 나의 전우들과 함께 흙을 뒤집어쓴 채로 좀 전에 샀던 빵을 함께 나눠먹었다. 하지만 아직도 숙소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있었기에 저물녘 노을이 어둠에 다 스미기 전에 잰걸음으로 다시 숙소로 향하기로 했다.

내가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은 통해 한아름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것.

이것 또한 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바오밥나무의 도시 모론다바에서]

바오밥나무를 보러 가기 위해 ‘모론다바’라는 도시로 향하기로 했다. 모론다바로 가기는 길은 10시간이 넘는 장거리이기 때문에 새벽에 출발하는 차에 탑승했다. 그렇게 아침이 찾아오기 전 어스름이 깔린 새벽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아침을 먹기 위해 차가 멈춰 섰고, 그제서야 나는 묵직하게 닫혀 있는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창밖에서 땅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떠 있는 순백의 구름과 아름답게 펼쳐진 계단식 논을 나를 압도했다. 이렇게 눈높이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보며 흠모하고 있노라면 잠시의 졸음도 찾아올 틈이 없었다. 역시 창밖으로 존재하는 비옥한 아름다움이란 타우린이 잔뜩 들어간 자양강장제와 같은 것이다.

차창의 브라운관으로 펼쳐진 마다가스카르의 자연 다큐에 푹 빠져있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어 차는 다시 한번 어느 한적한 식당에 멈췄다. 그러나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 탓에 카메라를 들고 식당 주변의 마을을 배회했다. 목적지는 없고 그저 느낌에 이끌려 발길이 가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허름한 2층 집이 보여 기웃거리니 헛간에는 소 한 마리가 열심히 여물을 먹고 있고 마당의 어미닭은 병아리를 이끌며 바닥에 떨어진 나락들을 쪼고 있었다. 시골 특유의 순박하고 구수한 풍경과 그 위로 펼쳐진 멋진 하늘을 카메라를 찍던 중, 몇몇 사람이 카메라를 처음 본 듯 세심하게 살펴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며 내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고 멋쩍게 웃음 짓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찍어준 사진이 맘에 들었는지 방에서 아내와 아이를 모두 데리고 나와 다시 한번 사진을 부탁했다. 그러자 스스럼없이 카메라 앞에 선 그의 아내는 막상 셔터를 누르니 쑥스러움을 머금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순백 구름의 순수함처럼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은 참 순수했다.

다시 차에 올라타 천국의 길을 가로지르며 바오밥나무를 위해 달려갔다. 그러나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이 더 걸려 13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지평선에 걸친 태양은 사라지고 땅거미가 기어다니는 어둠이 몽땅 찾아왔다.

신은 아프리카를 창조할 때 씀씀이가 컸던 걸까 아니면 실수를 했던 걸까. 아프리카의 밤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크고 작은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메웠다. 잠잠히 그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신의 실수는 아닌 것 같다. 아마 신의 한 수이지 않을까


[바오밥나무를 보러 가는 길]

모론다바에서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은 20km 정도 떨어져 있어 주로 택시를 대절해서 간다. 숙소에 묵고 있는 여행자와 함께 택시를 대절할 생각이었지만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여행객이 단 한 명도 없단다. 하는 수 없이 택시 말고 다른 방법을 찾던 중 마을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 5km 정도 걸어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일러준 곳으로 가자 엔진에 시동이 걸릴수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버스가 한 대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타야 할 버스였다.

버스기사는 승객이 모두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고, 허름한 버스는 나의 의심을 종식시키 듯 큰 엔진 소음과 함께 연륜이 묻어 있는 지독한 매연 뿜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어디에서 내릴지 몰랐기에 그저 바오밥트리를 연신 외치기를 반복했고, 다행히 옆에 탄 승객에 도움으로 버스에서 내려 바오밥 거리로 가기 위해 작은 흙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잠시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내리쬐는 태양 아래 살갗은 붉게 그을어지고 페트병의 물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논과 밭만 가득한 거리에서 그늘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가뭄처럼 말라버린 나의 목구멍을 위해 간간히 목울대가 휘청거릴 만큼 힘껏 마른침을 꼴깍 삼켜봤지만 서서히 침샘도 말라가는 듯했다. 다행히 고통의 길을 얼마간 더 걸어가니 드넓게 펼쳐진 논밭 위로 바오밥나무가 한 그루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곧이어 고단한 신음과 끈질긴 걸음의 끝에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이곳저곳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몸집의 바오밥나무는 소와 함께 논을 가는 농부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고, 때로는 묵묵하게 그늘을 만들어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오밥은 비스듬하게 다가오는 햇빛으로부터 적당한 그늘을 드리우며 내게도 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잠시 피부를 짓누르는 태양을 피해 바오밥 그늘 아래 잠시 앉았다. 잠시 거치른 피부의 바오밥에 몸을 기대었고, 아득히 깊은 곳에서 나오는 외로움 또한 함께 기대었다. 가끔은 이렇게 외로운 것도, 누가 곁에 없는 것도 괜찮았다. 그저 위로가 되는 무언가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바오밥 아래 있다보니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현 듯 스치며 선명해졌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의 일이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1년 동안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선정했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짤막한 독후감을 쓰면 달콤한 사탕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나는 사탕을 먹기 위해서 추천도서 중에 하나였던 어린 왕자를 정말 열심히 읽는데 그중에서 생택쥐베리가 묘사한 바오밥나무는 어린 나에게 꽤나 흥미로웠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나무고, 한 떼의 코끼리를 데려간다 해도 바오밥나무 한 그루도 다 먹어치우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중략···)
나무의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이 너무나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크길래 한 떼의 코끼리로도 먹어치우지 못하고, 뿌리는 땅 속 깊이 파고들어 별을 산산조각 부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때 어린 나는 바오밥 나무가 도대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를 다 읽고 독후감을 적어 내자 사탕을 건네는 선생님께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 바오밥나무는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그러자 선생님은 비행기를 타고 아주 아주 멀리 가면 볼 수 있다고 답했고, 나는 훗날 어른이 되면 꼭 어딘가 있을 바오밥나무를 꼭 보고야 말겠다며 다짐을 했다.

하지만 삶을 살아내다 보니 오랜 시절의 다짐은 기억으로부터 점차 희미해져갔다. 나이가 들고 한 해가 지날수록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늘어갔고, 당장 해야할 일들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렇다고 늘 쉼없이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해외여행이라는 거창한 것을 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여유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주어진 삶의 길을 담담하게 걸어가다 18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시절 했던 어린 나의 다짐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눈 앞에 우뚝 선 바오밥 나무는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말처럼 코끼리 한 부대를 데려가도 먹어치우지 못할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잠시동안 8살의 김종민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찬란한 희열을 느꼈다. 정말이지 그 시절에 느낀 환상과 기대감 그대로였다.

누구나 현실은 깨닫는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순간 우리는 눈 앞에 놓인 고단한 현실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며 우리는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되어버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오밥을 처음 알게된 어린 시절과 달리 나는 이미 훌쩍 자라 어른이 되어버렸고, 지난 날의 상상을 가슴에 묻어두고 현실 속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어린 날의 기억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잠시동안 잃어버린 시간 속을 거닐고 있는 듯 했다.


어린왕자는 말했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별로 없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참 특별한 날이다.

8살의 어린 나에게도, 26살의 어른 나에게도.


어린 아이의 꿈은

어른 아이의 추억






KakaoTalk_20191115_210309444.png 구수한 마다가스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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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115_210310148.png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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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115_210310721.png 나의 전우들
KakaoTalk_20191115_210310962.png 카메라가 궁금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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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115_210311465.png 미용사 아주머니
KakaoTalk_20191115_210311720.png 스위츠를 외쳤던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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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