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독에 걸리다

역마살 이야기 34 Madagascar, Antananaribo

by 역맛살



술을 억수로 마신 다음날 아침에 누는 똥은 불우하다. 똥이 항문을 가득히 밀고 내려가지 못하고,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똥이 똥다운 활력을 잃고 기신거리면서 툭툭 끊긴다. 이것은 똥도 아니다. 삶의 비애는 창자 속에 있었다. 이런 똥은 단말마적인 악취를 풍긴다. 똥의 그 풍요한 넉넉함이 없이, 이 덜 썩은 똥냄새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주인을 찌른다.


- 김훈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


배에서 요동치는 신호에 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뭉쳐지지 못한 전날에 먹은 음식들이 변기에 앉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질서하게 흩어졌다. 비몽사몽한 잠결의 혼돈 속에 굳이 설사의 원인을 생각할 필요 없이 잠을 자기 위해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몸 구석구석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두드러기까지 나기 시작했다. 가려움증과 두드러기로 인해 계속해서 몸을 긁다 보니 피부가 온통 벗겨질 거 같아 차라리 손바닥으로 때리는 편을 선택했고, 간지럼을 없애기 위한 몸을 계속 때리다 보니 손지검을 당한 몸은 더욱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에서의 다급한 신호가 다시 찾아왔고, 그렇게 한번 시작된 설사는 수없는 반복을 거듭하며 미끄러지듯 나로부터 탈출했다.

뱃속의 덜 삭은 음식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니 몸에는 기력이 없었고, 새벽녘 잠결의 피곤으로 정신은 몽롱했다. 계속 때렸던 살갗은 어디 격투장에서 금방이라도 혈투를 마치고 온 사람처럼 붉게 부어올랐다. 그리고 혹독한 시련과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사이 일렁이는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모든 과정은 오랫동안 지속되며 고통의 시간을 붙잡았다. 홀로 떠난 여행길에도 잘 견뎌냈던 외로움이지만 아플 때 느끼는 외로움은 서러움으로 증폭되었다. 이렇게 묵직하게 찾아온 서러움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플 때 견디는 고독의 무게는 평소보다 훨씬 무거웠다.



<설사 당일 몇 시간 전>

오늘은 안타나나리보(마다가스카르의 수도)에서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회색빛 도시가 주는 위화감이 전혀 없을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크지 않았다. 다만 북새통의 사람들과 뿌옇게 가득한 매연은 역시 여느 수도와 다름없었다. 다른 나라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어디를 가나 길거리 음식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빵, 땅콩, 바베큐, 튀김, 국수, 샌드위치, 커피, 과자, 과일.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에 보지 못한 새로운 길거리 음식 하나가 눈에 띄었고, 가까이 가보니 한 남자가 은 바구니에 조개를 잔뜩 쌓아놓고 즉석에서 칼로 손질해서 팔고 있었다. 그 조개는 눈대중으로 보아하니 꼬막 같아 보였고 과도만한 작은 칼을 슉슉 휘저으며 까먹는 그 꼬막은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길가에서 먹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호기심 있게 지켜보니 사람들은 “delicious”를 외치며 나에게 먹어 보기를 권했다. 마다가스카르는 섬나라이기 때문에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수도 안타나나리보는 섬의 중심부 내륙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이 생꼬막이 과연 싱싱할까? 과연 안전할까? 의문이 들어 고민했지만 이미 과거의 아픔(케냐에서의 폭풍 설사 경험)으로 장 속에 다부진 내성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맛을 한번 보기로 결심했다.
역시 상인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껍질을 분리해내고 1.5L 페트병 안에 든 물로 꼬막을 한번 씻어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소스로 보이는 것을 잔뜩 뿌린 후에 웃으며 내 입에 쏘옥 넣어주었다. 쫄깃한 식감과 익숙한 꼬막맛에 3개를 더 샀고, 껍질에 남은 국물까지 맛있게 비워냈다.


‘시간이 지나면’이라는 희망을 갖고 날이 밝을 때까지 견뎌봤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묽어진 변을 참아내는 것은 도무지 내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날이 밝고 나서 의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나의 증상을 설명했더니 아마 식중독일 가능성이 높으니 지사제는 되도록 먹지 않도록 하고 증상이 악화되면 꼭 병원에 가라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먹으려고 했던 지사제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대신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 오직 물만 마시고 또 마셨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던데 때깔좋은 귀신은 못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먹었던 것이 모두 빠져나가고 새벽 1시부터 줄곧 잠도 자지 못해 나는 이미 폭삭 익어버린 파김치처럼 녹초가 되었다. 얼굴은 그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며 급격히 해쓱해지고 눈 밑의 그늘은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 그나마 핏기 없는 얼굴은 계속 때렸던 탓에 붉은 기운이 넘쳐 흘렀다. 분투했던 새벽의 상황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는 침대 위에 누워 가려움을 견디거나 무의미한 타박을 지속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됐을 즈음, 그래도 '시간은 약이다.'라는 말이 맞는지 이제 더 이상 내보낼 것이 없는지 설사는 멎은 듯했고 가려움증도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 없이 때렸던 곳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몸은 분명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가장 빨리 알 수 있었던 것은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이제 배 속에서 울리는 신호는 무언가 배출하기 위함이 아닌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로 바뀐 듯 했다. 그래서 비상식량으로 사놓은 땅콩을 꺼내어 20알 정도 까먹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괜찮을 거 같아서 가방에 있던 작은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그렇게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선 하루를 통째로 날렸다는 아쉬움에 잠시 근처에 바람이라도 쐴 겸 걷기로 했다. 평소처럼 목적도 없고 계획도 없이 마냥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서 꽤 떨어진 호수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배에서 다시 긴급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묽은 배설물은 아무리 관략근에 힘을 준다한들 도저히 참아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이 26살이나 먹고 바지에 지리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있는 힘껏 참느라 엉성해진 발걸음을 최대한 숨기며, 큰 보폭으로 뛰다시피 필사적으로 숙소를 향했다. 정말이지 죽을힘을 다해 참아냈다.

그렇게 허겁지겁 숙소에 도착한 뒤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고, 코를 찌르는 듯한 삶의 고통이 마치 부서진 쿠크다스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의 아픔아, 나의 고통아

이제 너도 저 변기에 풀어진 배설물처럼

함께 사라져라.

그리고 다시는 내게 찾아오지 말거라.


다 옹골지지 못한 나의 마지막 묽은 배변을 무사히 세상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물속에서 시원하게 회전하며 내려가는 나의 마지막 똥을 바라보며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서 아픔을 통해 얻은 교훈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왜 항상 그러한 교훈들을 몸으로 겪은 뒤에야 깨달아야 했을까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항상 괜찮겠지라며 과도하게 낙관했던 자의 예정된 최후였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육신의 고통은 스스로 감내해야 할 일종의 멍에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러다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을지가 심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명심했다. 모든 죽음이 빗겨가는 액션영화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인생은 한 번, 목숨은 하나다.


어찌 그리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닮았는지요.

왜 그리 끊임없이 나를 두드리는지요.


그대가 갑작스레 내게 찾아올 때면

단순한 몸짓 하나에 나는 온통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니 그대여,

슬그머니 귀띔이라도 보내어 내게 찾아오소서.


그래야 그대 잠시 머물고 갈 자리

미리 비워두지 않겠소.




To. 물똥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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