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51 Austria, Vienna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고통은 순간이고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왜 모든 불행이 내게만 이렇게 찾아드는 것일까. 이제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더 이상 여행을 지속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들이 버거웠다.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이러려고 여행 온 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했다. 차라리 그 노력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애써 괜찮다 긍정했지만 더 이상 입으로 되뇌는 거짓 긍정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이 괜찮다는 말을 언제까지 하면 끝이 날까.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누군가의 위로의 말, 하지만 그 꽃을 찾기 위해 눈을 뜰 여력조차 사라져 버렸다면 희망조차 희망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이제 더 이상 내게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일련의 과정이 되어버렸다. 결국 도난 사건 이후 의지를 잃어버린 삶이었지만, 인간의 생존 본능은 삶의 관성을 통해 겨우 겨우 나를 연명하게 했다. 삶이란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계속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과 함께 감정덩어리들이 떠나가길 바랐지만 그것들은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어떤 고난도 잘 견뎌왔기에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나약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을 감아 잠에 들어 집요한 기억이 그저 옅어지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하지만 그와 중에 나를 걱정했던 도훈이는 억지로라도 나를 이끌고 어디로든 향했다. 그때 도훈이가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갔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왕궁 같았고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곧 정원을 거닐다 걷기조차 힘들어 벤치에 앉아 쉬게 되었다. 우리가 앉은 벤치 옆에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도훈이는 할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인사를 나눴고, 그는 거의 70세 넘은 나이에 홀로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단순하게 시작된 인사는 어느새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졌고, 그 이야기를 듣던 중 도훈이는 할아버지에게 갑자기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너무 뜬금없는 철학적인 질문에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할아버지는 입을 뗐다.
삶이란 곧 의미야. 한번 저기 뒤에 있는 나무를 한번 봐봐. 혹시 너희들은 저 나무를 보고 왜 존재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니? 아마 그렇지 않을 거야. 대부분 우리는 저 나무를 보고 저 나무 삶이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지 않으니까.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 봐. 저 나무는 분명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하고 있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어낸다던가, 혹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과 달콤한 과일을 선물하기도 하지. 결국 존재만으로도 이로운 나무는 그 삶 자체가 의미인 거야. 그러니 특별한 삶의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어. 이미 모든 삶은 의미 있는 법이니까. 나의 삶도, 너희들의 삶도.
그리고 만약 누군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이렇게 말하게. 나의 삶 자체로 살아갈 이유라고.
'"Life is meaning. 'Life is meaningful."
'삶 자체가 의미이고, 모든 삶은 의미 있는 것이다.'
잠시 그의 말을 듣고 문득 또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삶이 의미 있다는 것은
모든 삶의 과정도 의미 있는 것인가?
그럼, 지금의 이 고통도 의미 있는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인가?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에게 묻지 않았다.
이 질문에 답은 할아버지가 아닌 시간이 알려주게 될 답일 테니.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가까이'와 '멀리서'라는 거리적인 개념이
어쩌면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역경에 있어 지금 이 순간은 비극이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본 그때는 희극이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바란다.
지금 이 시간들이 무탈하게 잘 지나가기를
그리고 훗날 이 아픔들이 한편의 추억으로 깃들어져 있기를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