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다 털리다

역마살 이야기 50 Austria, Vienna

by 역맛살

최고의 명예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게 아니다.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다.


- 공자


다급히 친구를 깨웠다.

- “야 야! 일어나 봐 혹시 네가 내 가방 가지고 있어!?”

- “아니, 없는데? 왜 없어?”

항상 옆에 두고 자던 내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잠에 들기 전 2층 침대에 누운 내 옆에 딱 붙여놓았다. 그래서 혹시 침대 사이로 빠졌을까 침대 틈과 침대바닥 모두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없었다. 나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몇몇 사람들이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사람이 갑자기 본인의 핸드폰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나의 가방과 다른 이의 핸드폰까지 없어진 걸로 봐서 이거는 단순히 내가 물건을 어딘가에 잘못 둔 것이 아니라 도둑맞았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호스텔 방의 불을 켰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꽉 찼던 호스텔에는 두 명의 침대가 비어있었다. 그리고 증언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 “새벽 2시경에 누군가 숙소를 어슬렁거리는 것을 봤어요. 그때 새벽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여행객이겠거니 싶어서 다시 잠을 잤어요.”

- “맞아요. 누가 라커룸 있는 곳에 불을 켜고 라커룸을 막 열어보는 거 같았어요. 그때 아마 두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설마 했지만 현상에 대한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되어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고해져 갔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숙소밖에 나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오전 4시의 새벽녘에는 쌀쌀한 추위와 고요한 적막만이 어둠 속을 채우고 있었다. 바로 리셉션으로 향해서 이 사건에 대해 알리려고 했지만 리셉션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사관에 연락도 해봤지만 졸린 음성으로 경찰서에 직접 신고하고 사건 경위서를 받으라는 답변만 받았다. 친구가 경찰서에 전화하니 당사자가 직접 근처 경찰서로 찾아가서 사건접수를 하라며 귀찮은 듯한 음성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먹은 것도 없이 없는 속은 헛구역질을 하며 자꾸만 울렁거렸다. 그렇게 잠시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흐릿한 정신을 부여잡고 한걸음 한 걸음씩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가까운 경찰서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에는 단지 불만 켜져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지금 당장 쓰러져 이 상황을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나는 도저히 서있을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아무 표정도 지어낼 수 없는 무표정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기도 버거운 상황 속에서 감은 눈사이로 빠져나오는 눈물은 증오를 덜어내기 위함인지 뜨거움을 담고 빠져나왔다.

새벽 6시에 리셉션이 열렸다. 방에서 있었던 사건을 호스텔 측에 알리고 체크인을 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새벽에 사라진 두 사람의 정보는 없었다. 다시 경찰서에 갔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는 조사에 나서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사건 경위서 한 장만을 작성해 주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호스텔에 이야기해 봤지만 그들은 본인들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주말이라 대사관은 열지 않아 여권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통째로 털린 가방 안에는 500유로와 아는 형에게 빌려 온 60만 원 상당의 소니 카메라, 여권, 그동안 나의 생각을 정리했던 여행 노트, 모든 여행 사진을 저장해 두었던 SD카드, 옷가지를 비롯한 여러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가 있을까.

나는 물질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은 크게 상심이 크지 않았다. 물질적인 것들이야 언제든 벌어서 채우면 됐으니까. 하지만 나의 추억들을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의 여행 노트라도 버리고 갔을까 주위를 계속 맴돌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한 줄기 희망이 기적에 닿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적 같은 것은 현실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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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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