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49 Austria, Vienna
누군가에게 행복하다고 증명하며 사는 것이 가장 불행하게 사는 방법이다.
-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중에서
친구가 온다. 친구는 이번에 여름휴가로 6일을 받았고 우리는 일정을 맞춰 비엔나에서 함께 여행하기로 약속했다. 원래 아프리카부터 모든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는데, 경험 삼아 지원했던 회사에 덜컥 합격하고 나서 여행 대신 회사로 떠났던 바로 그 놈이다. 나의 뒤통수를 후려 쳤던 네 녀석, 나는 너를 생각하며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복수의 칼날 같은 것은 없으니 걱정 마라. 다만 노래 한 곡을 준비했지.
It’s been a long day without you, my friend.
And I’ll tell you all about it when I see you again
네가 없는 하루는 정말 힘든 하루였어.
널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모든 걸 이야기해 줄게.
사실 혼자 여행하는 동안 식중독, 도난, 항공권 등 많은 사건들로 인해 힘들었고 외로웠다. 그래서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참 그리웠기에 도훈이를 본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엔나의 놀이공원에서 우리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상봉하게 되었다. 그렇게 배신자와 함께 하는 첫 여행이 시작됐다.
도훈이는 여행에 오기 전, 멋진 여행을 남기기 위해 새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왔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멋진 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바다의 내음 물씬 나는 짠내 투어였다. 물론 남들처럼 걷다가 배고프면 먹었고 힘들면 쉬었다. 뭐 언뜻 보면 남들이 하는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유일한 차이점이 한 가지는 있었다면 극히 제한된 재정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즐기고 탐닉한다기보다 생존에 더 가까운 여행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면 나의 여행은 이미 고행에 가까웠다. 그런데 친구의 경우는 아니었다. 직장인이기 모처럼 만의 휴가를 내고 온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 나처럼 고행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멋진 옷도 입고 왔는데 어느새 길거리에 한구석에 앉아 살아남기 위해 3,000원짜리 케밥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니 괜히 안쓰러워 보였다. 그리고 예쁘게 차려입고 온 하얀색 바지에 때가 얼룩덜룩 늘어갈수록 친구를 향한 나의 미안함도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친구는 점점 나의 여행 스타일을 몸으로 느껴가기 시작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버티는 한, 다리는 견딜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다리가 못 버티니 머리는 버틸 수 없었다. 친구의 말이 점점 없어졌고 표정은 굳어 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고행처럼 보냈던 나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던 친구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함께 보폭을 맞춰가며 여행하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이동하는 것 등 모든 부분에서 상대방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맘에 안 든다고 쓸모없는 짐짝처럼 내팽개쳐버릴 수도 없으니 동행은 일종의 구속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낯선 곳에서 함께 있는 익숙한 존재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든든했고, 언제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만큼 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같이의 가치'라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도훈아, 너와 함께 웃을 수 있고 함께 힘들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나만 행복한 거는 아니겠지?'
그래도 친구 녀석 참 끈질긴 구석이 있었다. 비루한 체력으로 나와의 고행을 잘도 견뎌냈다. 그리고 빼곡히 적힌 여행계획서를 붙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직장인에게 시간은 곧 돈보다 소중했고, 6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가능한 많은 것을 봐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해서 열정이 넘치는 이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옛날의 내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내가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넘치는 열정으로 무엇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체력이 되던 안 되던 힘들어도 여행해야 했고 가고 싶지 않은 곳도 일단 가봐야 했다. 그때 그렇게 전투적으로 여행을 하며 인스타그램에는 멋진 사진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부러움과 인정을 받기 원할수록 지나친 과장과 높은 채도로 덧칠하며 기만적인 사진을 뽐내 보였다. 그 때문에 가끔은 나의 의지보다는 SNS에 자랑하기 좋은 곳에 가서 오직 사진만을 위한 여행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럴 싸해 보이는 욕심과 부러움의 존재가 되기 위한 욕망이 컸고 누군가 나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봐줬으면 했다. 나는 오히려 가진 것이 없는 만큼 오히려 과장하고 뽐내 보이는 방법으로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려 했다.
어느 철학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자기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선 타인을 필요로 한다고 했듯이 나는 타인을 통해 나의 행복을 완성해 갔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결코 행복 일리 없었다. 때때로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나의 행복을 살 수는 없었다. 단지 행복해 보이는 것으로 나의 불행을 감추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들여다보면 완벽해 보이는 여행은 허우적대며 상처투성이인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여행하면서 추구했던 것들은 남들 눈에 보기 좋게 비치는 것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정녕 행복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행복해 보이고 싶은 걸까.
물론 여행과 마찬가지로 삶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절로 누군가의 시선에 맞춰서 나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조금 더 좋은 차를 갖기 원했고, 조금 더 넓은 집을 가지기 원했고, 조금 더 돈 주는 직장을 얻기 원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라는 전제를 붙이며 누군가의 부러움의 존재가 되고 싶었던 나는 지극히 수동적인 가치관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행이 길어지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만나 보니 행복이란 조금 더 가진다고 또 행복한 건 아니었다.
여행에서의 삶은 단순했다. 어디 가지, 어디서 자지, 뭘 먹지. 그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하거나 드러내기 위한 소란스러운 노력들은 별로 필요치 않았다. 오랜 여행으로 인해 어느새 생존 우선으로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오랜 여행이 주는 교훈은 간단했다.
인생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 의식하지 않고,
보여주려고 의식하지 않고
그냥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꼭 행복으로 연결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힘든 인생일 테지만
적어도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어느 소설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모든 삶을 살 수 없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러자 어느 철학자는 이런 답을 던졌다.
네가 읽고 싶은 삶을 살아라.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