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감성

역마살 이야기 48 Hungary, Budapest

by 역맛살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중에서


'낮저밤이' 부다페스트, 낮을 여행하는 부다페스트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도 부다페스트 여행의 가장 묘미는 밤이 아닐까 싶다. 도우너 강 앞에서 마치 불이 붙은 듯 밝게 빛나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유럽 최고의 야경’이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밤의 부다페스트가 더 좋았던 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도우너 강 앞에서 저마다의 휴식을 취하며 간단한 맥주로 하루의 노곤함을 달랬다.

나 또한 낮에 더운 날씨와 씨름하다 야경을 보기 위해 해질녘 즈음에 도우너 강으로 향했고, 뜨거운 태양이 점차 헐거워지자 부드러운 바람이 차츰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 파란빛의 하늘은 일몰의 때가 되니 석양을 품은 구름이 여려 겹으로 뒤엉기며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봉숭아 잎을 곱게 빻은 듯 물든 하늘은 누군가 짓궂은 불장난을 해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기울어진 태양은 빠르게 저물더니 어느새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럽 최고의 야경, 부다페스트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야경이 존재하는 곳은 글을 쓰기도 좋은 곳이면서 역시 낭만적인 데이트가 이뤄지기 좋은 장소였다. 모든 게 완벽한 시간 속에서 커플은 달콤한 데이트에 푹 빠져 있다. 그들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은 낭만적인 야경 앞에서 그렇게 남사스러운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도 이 완벽한 시간을 잡아둘 수 없기에 지금의 순간을 기억하고자 나의 여자 친구와도 다름없는 허름한 다이어리를 꺼내 들었고, 그렇게 도우너 강 앞에 앉아 난잡하게 헝클어진 나의 생각과 감정을 차근차근 적어나갔다.

이렇게 하얀 백지 위에 글 적어 내려가며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감촉을 언어의 힘을 빌려 느낄 수 있게 된다. 책상도 없어 무릎에 대고 쓰는 다이어리의 글을 마치 무성의한 듯 널브러져 있지만 얄따란 한 획의 글자체에는 어렴풋한 것들을 뚜렷하게 담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어의 형상은 곧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넘어서서 내 저릿한 마음의 온도를 담아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나는 햇살이 모두 사라지는 저녁이 오도록 적고 또 적어나갔다.

글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고 그저 예쁘게 사진찍기 바빳다.

한때 여행하며 항상 작은 프레임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행을 할수록 조금씩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소중한 것은 카메라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공기, 바람, 온기, 사람, 웃음, 햇살, 소리, 파도, 구름, 태양, 시선, 들꽃, 모래, 사랑.

7cm 남짓의 작은 화면에 이 모두를 담아두기엔 그것들이 이미 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것들은 항상 프레임 밖으로 차고 넘쳐버렸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대한 최선은 무엇일까.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서 나도 가끔 카메라를 내려두고, 눈앞에 펼쳐진 시간에 머물며 마음에 그 순간 담아 둔다.


비록 누군가에게 마음에 담긴 사진을 보여줄 순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참 좋았다.

차고 넘치고, 흘러넘쳐도 괜찮은 행복처럼

넘치는 세계를 마음으로 담는 일은 언제나 행복했으니까.


그리고 문득 영롱하게 빛나는 부다페스트를 말없이 바라보는 나는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본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생각한 그 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었다. 그러나 행복한 이 순간도 결국 한 순간이기에, 미뤄둘 수 없는 행복을 지금 남김없이 몽땅 행복하기로 했다.





이유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나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이 순간도 결국 한 순간이기에

지금 남김없이 몽땅 행복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할머니들의 파마처럼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 어느 남자가 내 옆에 다가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안녕,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니콜라스야. 만나서 반가워.”

-“안녕, 나는 한국에서 온 민이라고 해.”


-“뭘 그렇게 적고 있니? 혹시 작가니?”

-“아니, 일기 같은 거를 적고 있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맞아, 이런 곳에 오면 혼자 글쓰기 정말 좋지.

니콜라스는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작가였고, 그는 내가 글을 쓰고 있어서 흥미를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아까 요 앞에서 하늘을 보면서 글을 적었어. 여기 하늘은 정말 멋진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까 하늘은 정말 멋졌어.”


-“내가 한국을 여행했을 때 바라본 하늘도 정말 아름다웠는데, 그렇지 않니?”


잠시 뜸을 들이며 그의 질문에 맞다고 답했지만 그것을 확고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바라본 하늘의 모습을 딱 떠올릴 수 없었다. 하긴 비가 올 것처럼 우중충한 날에 구름을 바라보는 거 빼고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바쁘고 여유가 없었을까.

생각해 보면 열심히 살긴 했지만 하늘을 한번 바라보지 못할 만큼 분주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유튜브같이 할 것은 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하늘을 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냥 단순히 하늘을 봐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삶에는 늘 무언가 이유가 필요했다.

공과대학에 진학해야 했던 이유,

지루한 수업을 들어야 했던 이유,

관심도 없는 자격증을 따야 했던 이유,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 듯 자소설을 써야 했던 이유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행은 결코 이유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이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이유는 없었다.

그냥 바라보니 하늘이 아름다웠고,

떠나보니 자유로웠고,

걷다 보니 행복했다.


이유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건 나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이 순간도 결국 한 순간이기에

지금 남김없이 몽땅 행복하기로 했다.


한때 여행하며 항상 작은 프레임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행을 할수록 조금씩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소중한 것은 카메라로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공기, 바람, 온기, 사람, 웃음, 햇살, 소리, 파도, 구름, 태양, 시선, 들꽃, 모래, 사랑.

7cm 남짓의 작은 화면에 이 모두를 담아두기엔 그것들이 이미 담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것들은 항상 프레임 밖으로 차고 넘쳐버렸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대한 최선은 무엇일까.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서 나도 가끔 카메라를 내려두고, 눈앞에 펼쳐진 시간에 머물며 마음에 그 순간 담아 둔다.


비록 누군가에게 마음에 담긴 사진을 보여줄 순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참 좋았다.

차고 넘치고, 흘러넘쳐도 괜찮은 행복처럼

넘치는 세계를 마음으로 담는 일은 언제나 행복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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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