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왈, 천지는 만물을 지푸라기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하였다.
만일 그런 시선으로 인간사를 들여다본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회색으로 톤다운되어 있는 화면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원경으로 응시할 뿐이다. 피사체는 그러한 관조의 대상이 될 뿐, 어떠한 개성을 획득하지 않는다. 마치 인물화보다는 풍경화나 정물화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관객은 인물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거의 없고 객관화된 시선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위치에 머무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마법이 일어난다.
오프닝 크레딧은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하나씩 뜨더니 그것들이 모여 제목을 만들어낸다. 결국 앞으로 등장할 각 인물들과 그 행동들은 서로 수 광년은 족히 떨어져 있는 별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옴니버스 영화라 해도 될 정도로 대부분의 씬들이 서로 독립적이고 심지어는 한 씬 내에서 등장인물 사이에서도 상호 연관이 되어 있다기보다는 독백을 모아 놓은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더 나아가 작중에서 계속 반복되는 '한 XX를 보았다' 내레이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입장, 즉 관찰자의 입장에 그치도록 계속해서 관객을 작품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끝없음에 관하여'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끝없다는 것인가. 작중에서 열역학 1법칙에 의하면 사람들은 모두 에너지이며 이는 형태가 바뀔 뿐 계속해서 유지된다고 한다. 결국 작중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상실과 고통은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일 것이다.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씬이 패잔병이 후퇴하는 씬인 것처럼 보인다.
<장면 1>에서 패잔병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장면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일생 역시 '끝없이' 무언가를 상실하고, 고통받고, 후퇴하는 삶인 것을 은유하는 듯 하다.
특히 그 고통은 단절에서 오는 고통이다.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보더라도 인물들 간에 거의 항상 보이지 않는 투명 장벽이 쳐져 있는 듯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버스 승객에게 다른 승객들은 힐난을 놓기 바쁘다.(<장면 2>) 신부는 믿음을 잃고 포도주를 들이키며(<장면 3>), 그런 신부에게 (아마도) 교인들은 십자가를 지우고 채찍질을 가한다.(<장면 4>) 학창 시절에 가해자였던 자는 끝내 피해자와 화해를 하지 못한다.(<장면 5>) 치과 의사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며, 눈 내리는 바깥 풍경에 감탄하는 사람에게 주변인들은 그저 심드렁하다. 이는 모두 조금씩 다른 형태이지만 상실과 불통과 고립에서 오는 고통이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샤갈의 '도시 위에서'를 오마주한 씬에서 볼 수 있듯, 개인 차원을 넘어서 세계 차원으로 확장된다. 본작에서 유일하게 초현실적으로 연출된 이 씬은 한 쌍의 남녀가 폐허가 된 도시 위를 유영하고 있다.(<장면 6>) 다른 씬에서는 미시적으로 개개인의 단절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장면 6>에서는 단절된 개인들이 수없이 모인 도시 전체를 조망한다. 차원의 확장 속에서 각자가 지녔던 상실과 단절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작아짐과 동시에 그 수는 무수히 확장되는 이중적 기능을 한다. 흔히 우리가 '개미떼 같이 많다'고 할 때 느끼는 그것과 유사하다. 그 위를 유영하는 한 쌍은 마치 그 도시를 탈출하려는 것만 같다. 물론 그 시도가 성공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감독이 인간사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시각을 견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끝없음에 관하여>는 일종의 수미상관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시작에서는 두 사람이 날아가는 새 떼들을 바라보다가, 끝에서는 똑같이 날아가는 새를 배경으로 한 남자가 고장난 (듯한) 차를 고치려 보닛을 연다. 새는 정해진 길이 없는 하늘에서 자유롭게 비행하는데 인간은 이미 나 있는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 대비된다.
물론 인간이 새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당연히 하늘을 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본작에서 유일하게 초현실적인 씬이 마침 '하늘을 나는' <장면 6>임을 고려하면 이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첫 씬처럼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볼 수는 있고, 마지막 씬처럼 (설령 불가능할지라도) 어떻게든 차를 고쳐서 날아 보려는 시도는 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사가 지속되는 한 끝없이 말이다.(About Endless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