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코랄리 파르자, 2024)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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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아트영화계 최고의 화제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타포가 충분히 직관적이고 여러 가지로 '막 나가는' 전개 덕분에 취향에 안 맞을 수는 있어도 지루할 수는 없다. 흔히들 아트 영화에 대해 가지는 편견인 '지루하다'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타파해 줄 수 있을 듯 하다. 안 그래도 영화관 산업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마당인데 이렇게 흥행하는 영화가 튀어나와 주는 건 아무래도 환영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끝까지' 가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보통 적당한 선에서 멈추게 마련인데 속으로 '설마 이렇게까지 나가겠어?' 생각을 하면 10분쯤 뒤에 어김없이 그런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예전에 이런 느낌을 받은 다른 영화로는 Álex de la Iglesia 감독의 <피부>가 있다. 걔는 본작보다 더 막나간다.


비유 자체는 명확하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날달걀의 노란색은 엘리자베스가 내내 입고 다니는 노란 코트와 정확히 대응한다.(<장면 1>) 사실상 첫 장면에서부터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모두 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동그란 계란의 형태는 '서브스턴스' 약물을 사용했을 때 갈라지는 눈동자(<장면 2>)와도 형태적으로 조응한다. 눈알이 동그란 흰자 안에 동그란 검은자가 있듯이 달걀 역시 동그란 흰자 안에 동그란 노른자가 있다. 이런 징그러운 비유가.


tempImageYZMuRp.heic <장면 1>
tempImagel5ZLS8.heic <장면 2>

전체적으로 호평 일색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후반부는 너무 길어지고 폭주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종종 눈에 띈다. 자극적인 것이 지속되다 보면 무감각해지기 마련인데 자극 일변도로 인해 오히려 무감각해진 부분이 있다. 그것도 가장 충격으로 접수되어야 할 클라이맥스에.


그러나 'Monstro Elizasue'가 개인의 일탈에 의해 어디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카메라로 대표되는 미디어 산업에 의해 체계적으로 '양성'되고 있는 것이라면 응당 그 피는 미디어에게도 뿌려져야 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시퀀스 중간중간에 Sue를 찍고 있는 카메라 렌즈가 침입하면서 몰입을 깨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일종의 '제4의 벽'을 넘는 셈인데 계속해서 극중 쇼비즈니스 종사자들과 현실의 관객들을 동일시시키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을 즐기고 있는 관객 당신도 은밀한 공범이라는 신호이다. 그래서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삐딱선을 타는 영화치고는 이상하게 외모지상주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앵글로 찍은 것일 테다.


여기에 대해서 영화의 자세가 위선적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이 있고 이 역시 일리는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에 대해서도 비슷한 비판점이 있었다. 즉, 감독이 선정적으로 찍은 화면을 보여 줘 놓고 그걸 봤을 뿐인 관객은 외모지상주의의 동조자이고(서브스턴스), 감독이 일부러 오인하도록 시점 트릭을 줘 놓고 그에 충실하게 두 아이들을 오해해 버린 관객은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냐는 것이다.(괴물)


(날달걀 장면을 빼고) 실질적인 극의 시작과 끝은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엘리자베스의 기념 동판이다.(<장면 3>) 비록 세월과 비바람에 못 이겨 처음 헌액되었을 때보다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 난장판을 겪고도 기념판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엘리자베스(였던 것)는 저 위에 누워 눈을 맞는데 이는 스노우 글로브 속 모습(<장면 4>)과 대비된다. 결국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얻고자 했던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셈인데 쇼비즈니스 세계는 또다른 Sue를 찾아 오디션을 열 것이고, 그 역시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비극적인 미래가 그려지는 듯 싶다.


tempImagesOxni2.heic <장면 3>
tempImageOW3IN9.heic <장면 4>

굳이 toxic하게 보자면 어쨌든 엘리자베스는 50 넘어서까지 미디어 세계의 변방에서나마 살아남았다. 추정컨대 20대 때는 그 외모지상주의의 최대 수혜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걸 부정한다면 과거에 누리고 살았던 그 과실부터 우선 토해 놓고 이야기하시지? 수혜자일 때는 당연한 듯이 누리다가 세월에 의해 밀려나니까 미디어와 대중에 의한 피해자가 되는 건가?


...는 나쁜 소리는 하지 말도록 하자. 감독의 의도야 어쨌든 외모지상주의였을 듯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위어 가는 것이 비단 외모뿐은 아닐 것이다. 나이 먹고 나니 몸이 둔해지고 머리가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한탄 아닌 한탄은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이 시간에 따라 사라져 가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PS)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영화를 찍으면서 데미 무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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