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사 '제프'는 다리에 깁스를 해 집에 박혀 있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들을 관찰하는 데에 재미를 들린다. 제프는 여기에 점점 집착하면서 카메라나 쌍안경 같은 장비들까지 동원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듯이 이는 관음의 욕구이다. 또한 관찰 대상은 관찰자의 존재 여부 자체를 아는 것이 불가능(<장면 1>)한데 이와 같은 관계의 비대칭성은 곧 권력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방향적인 관찰 관계는 영화 내내 유지된다. 반대로 이러한 권력 관계가 전복되는 순간의 충격은 매우 크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POV로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퀀스에서 관객은 제프와 시선을 공유하면서 함께 이웃 주민들을 관찰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러면서 (마치 리사와 스텔라처럼) 제프의 아마추어적인 탐정 놀이에 동화되면서 저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을까 아닐까, 벌어졌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함께 추적하게 될 것이다.(<장면 2>)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창'이라는 영화 자체를 관람하면서 이웃을 관찰하는 제프를 다시 관찰하는 메타픽션에서의 관찰자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다중적 역할을 수용한다면 관음이 전복되는 순간 발생하는 카타르시스 역시 설명이 될 것이다. '관객->제프->외판원'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관찰 과정에서 외판원이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순간 '외판원->제프->관객' 방향으로 역전되기 때문이다. 즉, 그 순간 외판원은 제프뿐만 아니라 그 동안 자신을 메타적으로 응시하고 있었던 관객까지 한번에 관찰 관계를 역전한다는 것이다.
<이창>은 표면적으로는 스릴러 내지 추리의 장르 외피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추리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제프는 어떤 치밀한 추론 과정을 거쳐 특정 이웃을 관찰하고 살인 사건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 도일 형사에게 강변하는 장면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도일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어 보인다. 애초에 이웃을 그렇게 집요하게 관찰했다는 것부터가 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은 아니거니와, '무슨 일이 있나 보다'도 아니고 '사람을 죽였나 보다'고 생각하는 건 편집증이다.
수많은 이웃들 중에서 하필이면 외판원의 집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보기로 '선택'했다는 것이 사건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다른 이웃들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못지않게 흥미롭다. 대체 저 집은 왜 매일 밤마다 음악을 곁들인 파티를 하는 건지, 혼자 손님을 맞는 척 하는 'Miss Lonely'에게는 무슨 뒷사정이 있는 것인지, 매일 같은 자리에서 신문을 읽는 여자는 왜 외판원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인지. 약간의 편집증적 상상력만 덧붙인다면 상술한 각각의 이웃집들에게 살인 혐의를 의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판원의 사연이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제프는 그 수많은 사연들 중에서 외판원의 사연을 '선택'했다. 극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판원 말고 다른 이웃의 사정에 집중했던 순간에 큰 곤경에 처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이 '선택'은 매우 중대한 것으로 그려진다. 제프는 외판원네 집에서 결코 눈을 떼서는 안 됐던 것이다. 극 내에서 카메라를 든 제프는 극 밖에서 카메라를 든 감독과 연결된다. 제프가 외판원에게 집중하기를 '선택'했듯이 감독은 수많은 이야기거리 중에서 하필이면 제프의 이야기를 '선택'했고, 카메라로 무엇을 찍고 찍지 않을지를 '선택'했다. 카메라를 통해 관찰 대상을 탐색하는 제프(<장면 3>)는 극 밖에서 제프의 이야기를 카메라로 담고 있는 히치콕 감독 본인과 대응한다.
따라서 <이창>은 다중적인 메타픽션이다. 기본적으로 관객과 감독은 영화를 사이에 두고 서로 교감하는 두 주체이지만, 본작에서 제프는 관객이면서 곧 감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관객에 대한 영화이자 감독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그러나 히치콕 감독이 진심으로 탁월한 점은 이런 의미적 측면을 넘어서서 순수 재미로도 GOAT이기 때문이다. 특히 리사가 이웃의 집에 침입하는 시퀀스는 화려한 촬영과 편집 기법을 동원한 최근 영화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반성들 좀 하자)
히치콕 정도의 빅네임은 어느 편에서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역사적 의미만이 남은 죽은 영화 취급을 하고, 반대편 다른 사람들은 유명한 것으로 너무 유명해져 애써 무시하기도 한다. 일종의 홍대병일까. 하지만 히치콕이 진정 위대한 이유는 그 엄청난 명성을 작품으로 스스로 증명한다는 점이다.
Movie speaks for it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