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커스>(찰리 채플린, 1928) 후기를 빙자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방문기. 전세계 영화팬들의 영원한 성지, 파리에 있는 시네마테크다. 원래 여기서 영화 보는 게 버킷리스트였는데 프랑스에서 한국 자막을 달아 줄 리는 만무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던 차, 운 좋게도 프랑스 체류하는 기간 중에 찰리 채플린 무성영화를 상영해 준다니 이건 가서 봐 주는 게 내 인생에 대한 예의 아닐까. 예를 들어서 파리 가서 무슨 박물관에를 가고 뭘 볼 기회는 내 생에 몇 번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영화를 볼 기회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테니까.
이거죠 너무 멋있죠. 이 전경 남의 블로그에서만 보고 몇 년 동안 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여기가 한국으로 치면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의 전당 정도 될 텐데 한국과 비교가 안 되게 사람이 많다. 좌하단에 입장하는 사람들 행렬도 보이고 안에서는 아이들 단체 견학도 많이들 하는 모양. 아무래도 통상적인 관광지하고는 거리도 좀 있고, 영화에 관심 있지 않는 이상 굳이 갈 이유가 없는 곳이다 보니 절대다수가 현지인이었고 미취학 아동들부터 못해도 70대 이상은 돼 보이는 어르신들까지 나이대가 매우 다양하다.
더 나아가 이번에 상영한 작품이 <모던 타임즈>, <살인광 시대>, <시티 라이트>마냥 찰리 채플린의 속칭 네임드 작품은 아닌데도 객석이 거의 다 찼다는 거. 아래 사진은 좀 전에 찍은 거라 빈 자리가 보이는데 저 자리들까지 거의 다 찼다. 유치원생들한테 1920년대 흑백 영화 보여 주는 프랑스 문화 헤리티지 진짜 뭔데. 이 작품이 '온가족이 함께 영화 보기'(?) 비슷한 취지로 큐레이션된 거라(화면에 보면 Le Cirque 옆에 4+가 있다. 4세 이상만 되면 볼 수 있다는 뜻) 상영 전에 담당자가 나와서 아이들 대상으로 '찰리 채플린이 누구예요?' 같이 간단한 질문들을 했는데 아이들이 많이들 손을 든다. 4~5살 때 이미 찰리 채플린이라는 이름을 접하는 삶은 대체... 나는 저 나이 때 뭘 했지.
영화 자체는 찰리 채플린답게 그 때 그 시절 몸 쓰기의 정수라고 봐도 되겠다. 해당 영화가 Le cinema en famille(대략 '온가족이 함께 영화보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4세 이상의 어린이와 함께 보기 적절하게 큐레이션되었는데 그에 걸맞게 아이들도 흑백 화면만 보고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지 아주 자지러진다. 이게 말은 쉬워 보여도 관객을 바보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성인과 아이들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영화는 정말 흔치 않다. 더 나아가 일명 '웃겼다가 울리기'의 정석 테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마치 <서유기2:선리기연>이 그런 것처럼 웃긴 캐릭터가 만들어 내는 애수가 아름답다. 그것도 별다른 대사 없이 오로지 화면으로만 만들어 낸 경지라는 점에서 더더욱. 사실 코미디 파트는 <선리기연>보다 이 쪽이 오히려 더 낫다. <선리기연>은 극후반의 처연함이 GOAT라 인상적인 거지 웃긴지는 사실 잘...?
그러다 보니 이런 의문도 든다. 만약에 화면만 가지고도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각본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각본이 진짜 영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게 맞는지? 지금까지 대사 없는 영화는 봤어도 화면 없는 영화는 본 적도 없거니와 개념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어쩌면 현대 영화는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투입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요소를 새로 집어넣는 데에 집중한 반면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이유 모를 에러가 생기면 한 번 껐다 켜듯이, 지금처럼 영화 산업에 유례 없는 대침체가 찾아왔을 때를 기회삼아 관계자 모두가 영화란 무엇인지를 한 번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아무튼 영화 보러 온 김에 샵에도 방문을 했는데 국가별 DVD 모음이 있어서 한 번 한국 파트를 찍어 보았다. 아직까지 외국 영화계에게 한국은 그래도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인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진열 모양새를 볼 때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이 제일 지명도가 있는 모양? 이창동 감독이 한 편도 없는 건 좀 의외고 왜 허우 샤오시엔이 한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일까. 나중에 시간 날 때 시네마테크 쪽에 메일 보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유난히 중언부언하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 이번 글은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