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아녜스 바르다, 1965)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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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의 제목을 '행복'이라고 짓는 감독 마인드가 진짜 광기.


오프닝에서는 4인 가족이 카메라 쪽을 향해 걸어온다.(장면 1) 그리고 엔딩에서는 다시 4인 가족이 카메라 반대쪽으로 멀어져 간다.(장면 2) 두 가족은 대체 어떤 관계이고 오프닝과 엔딩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외형적으로 '좀 지나치게' 완벽해 보이는 이 가족은 사실 뜯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오프닝에서 이 가족은 녹음이 우거진 숲 속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지만 테레즈는 난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가족의 집이 온통 푸른색 천지임을 눈치챌 수 있고 집 안에서 남편 프랑수아는 시종일관 푸른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있다. 즉, 테레즈는 한색 천지인 이 집에서 사실 남편과 분리되어 있다. 테레즈가 자살하기 직전에 떠난 피크닉에서는 완전히 반대이다. 즉, 누런색 계열의 들판에서 이번에는 테레즈 혼자 푸른색 계열의 의상으로 반대 방향 분리가 이루어져 있다.(장면 3)


Lebonheur_web1.jpg <장면 1>


5a0b2088e5f1d4043e490c270f4261af.jpeg <장면 2>


BONHEUR_23-1200x675.png <장면 3>


반면 프랑수아의 불륜녀 에밀리는 그녀의 집 안에서 프랑수아와 색상 분리가 없이 푸른색 계열로 통일되어 있다.(장면 4) 물론 이것이 테레즈에 대한 에밀리의 완벽한 승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테레즈가 자살한 뒤 그 빈 자리를 에밀리가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테레즈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테레즈처럼 다시 대체될 수도 있다는 뜻. 오프닝과 엔딩이 서로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네 식구가 각각 등장하면서 정작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 역시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오프닝에서는 가족이 아니라 근경의 해바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엔딩에서는 가족이 뒤돌아 걷고 있는 탓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 가족이 원래의 테레즈 가족인지 아니면 새로운 에밀리 가족인지, 그것이 하등 중요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어차피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던 간에 부속품처럼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운명인 것은 동일하니까.


525id_Le_bonheur_1_w1600.jpg <장면 4>


프랑수아는 에밀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아내(테레즈)는 마치 식물과 같지만 에밀리는 동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에밀리가 (아마도 그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테레즈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한다면 그 식물성 역시 계승했다는 말이 된다. 위의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카메라는 천천히 멀어지면서 두 사람과 에밀리의 집 식탁 위에 있는 식물 화분을 한 앵글에 잡는다.(장면 5) 감독의 고약한 유머감각일까. 어찌 보면 식물화된 테레즈가 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지금은 동물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에밀리가 곧 식물처럼 땅에 뿌리박혀질 운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il-verde-prato-dell-amore-le-bonheur-recensione-film-agnes-varda-3.jpg <장면 5>


누벨바그의 기수답게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프랑수아로의 감정 이입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빨간색, 파란색을 앞세운 컬러 디졸브부터 중요 장면마다 삽입되는 반복 몽타주까지. 예를 들어 테레즈가 호수에서 건져진 뒤에 이를 발견한 프랑수아가 달려가 그녀를 껴안는데 그 껴안기 직전의 몇 초가 수 번 반복되더라도 프랑수아가 대체 슬픔을 느끼고는 있는지 도통 파악하기 어렵다. 비슷한 원리로 영화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감정은 마치 설명문과 같이 묘사되는데 관객은 그의 감정에 깊게 이입한다기보다는 '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겠구나' 식의 표면적 관찰에 그친다. 여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아 dog child'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본다면 결혼이라는 사회적 규약은 그런 거리두기도 무력화할 만큼 강력한 것인가 보다.


그렇다면 현대의 가족 or 결혼 제도라는 것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자연인을 가정이라는 토양에 강제로 속박하는 도구일 뿐인가. 이건 좀 과잉 해석일지라도 감독이 현대 사회의 결혼을 인간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창출해 낸 인공의 산물로 보는 것까지는 그럴 듯 하다고 보인다. 물론 '자연스럽지 않은 것=불필요하고 척결되어야 할 것'이라는 단순무식한 등식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Naturalistic Fallacy를 항상 주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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