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넨버그의 바디 호러 대표작으로 보통 <플라이>가 꼽히는데 중후반부까지 그 명성에는 썩 걸맞지 않은 듯 해서 약간 실망할 뻔했다. 물론 신체 변형이 있기는 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데려다가 '이 주인공이 인간과 파리의 교잡종 같니, 아니면 그냥 엄청 중병이 든 사람 같니' 물어보면 열이면 열 후자를 찍을 것 같았단 말이지. 그런데 역시 우리 크로넨'버그' 형이야 마지막에 이렇게 신체 변형을 맛있게 말아 줘 버리네.
앞에서 '신체' 변형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말은 절반만 맞다. 파리와 유전자가 섞여 버린 세스(이후 '브런들-파리')는 몸도 파리처럼 변해 가는 동시에 성격도 조금씩 뒤틀려 간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그 변화의 방향이 초기에는 '통상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속칭' 남성적 성격과 여성적 성격의 대립은 <데드 링거> 같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결국 반복되는 테마는 '나는 누구인가', 조금 더 풀자면 '무엇 때문에 내가 나인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이다. 예를 들어 브런들-파리는 몇 퍼센트의 브런들이고 몇 퍼센트의 파리인가? 브런들-파리가 점차 파리에 가깝게 변태해 가는 과정 중 어디까지 브런들이고 어디부터가 파리라고 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기존의 다소 소심한 브런들과 이성에게 거리낌없이 추파를 보내고 체조 선수라도 된 마냥 날아다니는 브런들-파리 중 무엇이 진짜 브런들의 모습인가? 물론 여기에 대해 감독이 명확하게 답을 해 주는 것은 아니고 관객 역시 일관된 답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브런들이 발명한 전송기는 우선 전송하고자 하는 개체의 성분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비비원숭이를 넣으면 탄소 몇 프로, 수소 몇 프로 하는 식으로 분해하는 것이다. 그 뒤에 재합성한 새로운 개체는 원래 개체와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것을 완전히 모사하지는 못한다. 그 때문에 생고기를 전송한 뒤에 나타난 새로운 생고기는 마치 인조 고기 같은 식감이 난다. 그렇다면 전송기를 통과해 버린 이상 브런들-파리가 나온 이상 이미 기존의 브런들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즉, 인간은 탄소와 산소와 수소와 아무튼 이런저런 원소들의 총합 그 이상의 무언가인지 혹은 그것이 무엇일지는 각자가 판단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