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세상이...

너희 같은 젊은이들에게조차 이토록 차갑게 읽힌다니...

by wasovora

네가 보내온 글을 읽으며 가만히 내 거친 손등의 주름을 만져보았단다. 이번엔 참으로 시리고도 아픈, 하지만 우리가 결코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될 이야기를 들고 왔구나. 다니엘의 뒷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혹은 이 사회의 그늘을 발견해낸 네 깊은 시선에 할애비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한편으론 참 미안해지는구나. 우리가 만든 세상이 너희 같은 젊은이들에게조차 이토록 차갑게 읽힌다니 말이다.


네가 적어 내려간 그 복잡한 '신청 절차'를 보며 이 할아버지는 아찔했단다. 고용24니 이직확인서니 하는 이름들만 들어도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화면 위를 겉도는 다니엘의 마우스는 꼭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네 노인들의 발걸음 같더구나. 세상은 '똑똑해졌다'고 자랑하지만, 그 똑똑함이 누군가에게는 넘지 못할 거대한 성벽이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꾸 잊는 모양이다. 기술이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자격 미달'로 낙인찍는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이 참으로 쓸쓸하기만 하네.


다니엘이 그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의 손을 잡았던 건, 그 역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처지였기 때문이겠지. 가진 게 없어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 마음이야말로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나. 배고픔보다 무서운 건 '나를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소외감이란다. 마트에서 여성용품을 숨겨야 했던 케이티의 수치심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멍 난 그물망이 만들어낸 비극이지. 서류 뭉치 속의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연대의 시작이라는 네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다니엘이 벽에 휘갈겨 쓴 그 문장은 단순히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이 아닐 게다. 그것은 무너져가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포효'였겠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비용'이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세상에 던지는 아주 묵직한 돌직구 말이다. 할아버지는 네가 이 영화를 통해 '복지의 빈틈'을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웠다는 점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얘야, 나이가 든다는 건 단순히 몸이 굽는 게 아니라,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자꾸 뒤처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너처럼 '인간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젊은이들이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길도 그리 외롭지는 않겠지.네 글 덕분에 나도 내 주변에 있을 또 다른 '다니엘'과 '케이티'를 한 번 더 살피게 되는구나. 차가운 행정 절차보다 뜨거운 네 가슴이 더 세상을 밝게 비출 거라 믿는다.


네 곧은 마음을 응원하는 할아버지가.


P.S: 차가운 서류 뭉치 속의 숫자가 아니라, 자네가 불러주는 다정한 이름 석 자가 누군가에게는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든든한 지팡이가 될 걸세. 효율이라는 이름의 거친 바람 앞에서도, 사람을 향한 자네의 온기만큼은 절대로 식지 않기를 이 할아버지가 간절히 바라네. 자네 참, 따뜻한 사람이야. - 나 다니엘 블레이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