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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Dec 23. 2020

혜훈동 고양이 실종사건 (1)

혜훈동 고양이 실종 사건: 사건번호 7-201104


<들어가면서>


누구에게나 무서운 것은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고양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에이, 고양이가 얼마나 귀여운데.” 하고 말한다. 진실로 무례하고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세상의 오만 끔찍한 짐승 중에서도 고양이는 그중 으뜸이다. 먼저 눈알이 그렇다. 세로로 쭉 찢어져 어디를 보는지도 알 수 없는 눈은 그야말로 악마가 빚어낸 것이요, 보는 이로 하여금 몸서리를 치게 만든다. 울음소리는 또 어떻고. 칠판에다 손톱을 박박 긁는 소리(가장 무서운 것은 이놈의 짐승들은 왕왕 실제로 그러곤 한다는 점이다), 배가 찢어지고 목이 졸리는 소리, 신성한 어린 생명을 구역질나는 육욕에 차 기괴하게 흉내내는 소리, 앙칼지게 갈라지는 새된 소리, 학식이 부족해 나로서는 도무지 묘사할 길이 없다. 게다가 방정치 못한 사악한 행동은 어떻고. 아무 봉투나 죄 뜯어 놓고 가릴 곳 못 가릴 곳 구분도 하지 못하고 사정없이 달려들어 정성을 다해 놓인 물건들은 몽땅 깨부수고 박살을 내어 놓는다. 네 다리를 가진 짐승이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 유연함으로 놈들은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비집고 들어와 날카로운 이와 발톱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도륙낸다. 그러고서도 뻔뻔하게 늘어져 안면을 취하는 모습이라니, 아아!

실로 끔찍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기록하게 될 이야기에 비해서는 애들 장난에 불과하지만. 

이야기는 어느 날 W가 “그것”을 집에 데려온 날부터 시작된다…


<혜훈동과 W>


W와 어떻게 처음 함께 살게 되었는지는 얘기하자면 길다. 나는 한적하면서도 깨끗하며 무엇보다도 집세가 싼 동네를 찾고 있었다. 서울에서 그런 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지.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의 한 게시판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읽었고 나는 천성이 배타적인 사람이라 타인과의 동거는 썩 내키지 않았으나, 글쎄, 별 수가 없었다. 큰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온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었고 더 이상 친척집을 전전하기란 그들로서도 나로서도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아둔 돈을 확인하고 찾아간 동네는 확실히 조용하고, 한적하고, 깨끗했다. 게다가 오호라, 거실, 주방, 화장실, 베란다에 방도 두 개나 있었던 것이다. 언제고 혼자 틀어박히고 싶으면 그럴 장소가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집주인 할머니도 말투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좋은 사람이었고. 나는 W와 점심을 함께 먹었다. 묘하게 얼빠진 표정과 능글거리는 말투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시끄러워 보이지는 않았기에 나는 큰맘 먹고 밥값을 낸 뒤 부동산으로 향했다.


동네는 좋았다. 정말로 좋았다. 골목마다 놓여 있는 밥그릇만은 빼고. 어쨌든 나는 집밖으로 자주 나가지 않았으니까 가끔 들려오는 사악한 울음소리에 공포에 질리는 것만 빼면 별 문제는 없었다. 그거야 이어폰을 끼면 금방 해결되기도 했고. 편의점을 갈 때 후다닥 사라지는 형체에 가슴을 자주 쓸어내리고는 했지만.


W는 음, 글쎄, 큰 문제는 없는 이였다. 유쾌하고(가끔은 좀 덜 유쾌했으면 좋았겠지만), 자주 어디론가 사라져 한참 뒤에 돌아오곤 했으나 나로서는 가끔 심심하다 뿐이지 집세는 꼬박꼬박 냈으니 불평할 거리는 없었다. 저녁을 먹을 때마다 내가 “너는 대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는 대부분 한 귀로 흘리곤 했다. 어쨌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한참 뒤에 돌아오면 그는 무언가를 잔뜩 둘러매고 나타나곤 했는데 대부분은 술이었고 그런 날이면 (내 글이 잘 풀린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질펀하게 술을 마시곤 했다. 모든 것이 괜찮았다. W가 1주일만에 돌아와 “그것”을 집에 들이기 전까지는. 


“어후, 힘들다.”

“왔냐.”

“어, 이번에는…”


나는 그의 말을 흘리면서 그가 주섬주섬 짐을 부리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뭘까, 내심 기대하며. 그런데 가방 속에서 나온 것은 내가 기대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어 한 마디를 던졌다.


“그거 뭐야.”

“음?”

“그거 뭐냐고.”

“이건 개야.”


나는 W가 어딘가 어긋나 있다고 항상 내심 생각해오고는 있었으나 이제는 미친놈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그건 개가 아냐.”

“개든 뭐든 아무렴 어때. 집 앞에서 주워 왔어.”

“당장 내보내.”

“싫어! 이렇게 귀여운데.”


나는 공포로 그만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내보내, 얼른 치워! 집주인 할머니가 알면 난리 난리 칠 텐데!”

“아냐, 괜찮아. 집주인 할머니가 전에도 봤대. ‘으터 이리도 어린데 혼자서 돌아다니나, 잘 됐다, 니 가서 키우라’ 이랬어.”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집에서… 그딴 짐승을 어떻게 키워, 얼른 치워! 치우라고!”


나는 숫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마 비명이 그것을 자극했나 보다. 그것은, 으으, 굳이 묘사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 아주, 아주 검었다. 시꺼멓다는 말이다. 악마의 발굽 각질만큼이나 검었다. 그리고 두 눈은 샛노랗게 불타고 있었다. 악의와 증오로 가득한 놈의 길게 찢어진 눈동자가 내 쪽을 보았고, 차마 도망가기도 전에 놈은 내 발가락을 물어뜯었다. 그 모습을 보며 W는 흐뭇하다는 듯이 낄낄거렸고 나는 증오와 절망에 차 필사의 용기로 놈을 떼어내고 중문 너머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야, 얘 봐. 문 긁고 있어. 놀아달라는 것 같은데.”


그 소리는 내게도 이미 들렸다. 조만간 문이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나는 창문의 크기를 가늠했다. 여차하면 달아날 수 있도록. 발톱을 갈아대는 소리에 더불어 이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야, 빨리 내보내.”

“싫어!”

“미쳤냐, 얼른 치우라고!”

“싫다고!”


의미 없는 고성이 오가고 토론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 W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물론 보지는 못했지만 목소리가 그랬다) 말했다.


“그럼 니가 나가면 되겠네. 너 집세 두 달치 밀린 거 내가 냈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아니, 그래도…”

“아니, 싫으면 나가라니까. 너 이번 달 집세도 밀릴 것 같다며, 카톡으로.”


나는 이 증오스러운, 피도 눈물도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는 권력 관계에 기반한 토론에서 내가 졌음을 깨달았다.


“알았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오니 어느새 집의 절반은 본 적 없는 물품들로 가득했다. 아마 문 밖에 뒀다가 가져온 모양이지. 모래로 가득한 통, 흉물스럽게 골조를 내보이는 골판지 상자, 기괴한 형세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첨탑. 나는 절망했다. 어쨌든 나는 그 당시 원고료가 조금 밀려 있던 상태라 집세를 낼 돈은 없었다. 당신도 기립하시오, 이것이 인터내셔널이오, 더러운 자본가 짐승들을 몰아내고 영광스러운 혁명을 이끕시다…


그 뒤로 그것과 살게 되었던 나날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W는 또다시 집을 비웠고 자연스레 놈의, 계속 놈이라 하기는 좀 그러니까, 이놈한테도 이름은 있었다. 뭐냐 하면 “개”였는데 이건 W가 어처구니없게도 계속해서 그것을 개라고 불러 댔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인간의 충직한 벗에 대한 극심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개는 아무 데나 털을 뿜지도 않고 내 발이며 손을 물어뜯지도 않고 아무 데나 뛰어올라가 내 물건을 깨부수지도 않고 밥을 달라고 내 얼굴을 할퀴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태평스럽게도 W는 그것을 개라고 불렀고 나는 그것을 속으로 개새끼라 불렀다. 하여튼, 이 개새끼를 돌보는 일은 당분간 내 몫이 되었고 그것은 끔찍스럽게도 나날이 커져만 갔다. 커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처음 왔을 때 내 발보다도 작았던 것이 이제는 거의 내 키만 했고 – 그래, 대충 팔만 했다 – 나는 개가 자라 언젠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까 매일 공포에 질려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사라진 개>


개가 집에 온 뒤로 세 번째로 W가 집을 비운 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써지지 않는 글을 쓰던 나는 문득 무엇도 문을 긁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원래 이쯤이면 밥 달라 뭐 달라 놀아 달라 개지랄을 떨 시간인데.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놈이 없었다. 놈을 불렀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료 통에는 아직 먹이가 차 있었고 물통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잠깐 밖에 놀러 나갔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돌아와 글을 썼다. 놈은 자주 그러고는 했다. 마당에서 괜히 불쌍한 새를 보며 을러대고 뛰어오르고 지랄을 했다는 뜻이다. 내가 뭐 목줄을 매어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깟 게 갔으면 뭐 어디까지 갔겠어. 배고프면 알아서 기어들어 오겠지(나는 내심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밤이 되도록 개는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슬슬 편의점에 가 맥주를 사 축배를 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품기 시작했다. 물론 통장 잔고가 위험하기는 했지만, 오늘이 무슨 날이냐, 내가 드디어 자유를 찾은 날이 아니냔 말이다. 집세는 똑같이 내는데 내가 왜 저딴 짐승하고 같이 살아야 하느냐, 이 말이다. 엄밀히 말해 세입자 권리의 반은 내게 있었다.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나는 악마의 짐승과의 동거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총각, 게 있사?”


콧노래를 부르며 주섬주섬 옷을 챙기고 있던 차에 집주인 할머니가 문 밖에서 나를 불렀다.


“네, 할머니.”

“고내이 줄라고 내가 메루치 말린 것 좀 가져 왔사. 고내이가 집에 있나?”

“고내이 없어요, 어디 갔는지 저도 몰라요. 잘 됐죠? 밤마다 시끄러우셨잖아.”


그러나 할머니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고내이가 읎어?”

“네, 없어요. 어디 갔겠죠 뭐. 이따 올 거예요.”

“그래, 그르믄 알았어.”


그 길로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쩐지 골목이 한산했다. 평소대로라면 몇 마리 짐승이 후다닥 사람 인기척을 피해 골목으로 달음박질을 했을 텐데. 개(그놈의 짐승)는 절대 그런 법이 없었다. 사람이 지나가건 뭘 하건 등을 깔고 누워 사악한 눈초리로 동정을 살폈으면 살폈지, 때로는 대놓고 화장실 앞을 막고 누워 있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나는 맥주 여덟 캔을 사서 돌아와(사고 나니 3만 900원이 남아 있었다) 세 캔째에 노래를 불렀고, 다섯 캔째에 그동안 빼앗겼던 거실 소파에서 드러누워 있었고, 여섯 캔째에 춤을 추다가 여덟 번째 캔을 반쯤 비우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부엌에서 W와 집주인 할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아서 나는 “어서 와”와 “어서 오세요”의 중간쯤에 있는 말을 중얼거렸다.


“한 마리도 없대요?”

“글쎄 그렇다니. 저 웃집에 봉춘 영감네 고양이도 한 마리도 없댄다.”

“또 누가 없대요?”

“저 머이나, 언덕 위에 삼색이도 없고, 고디 무늬 가도 없고, 을매 전에 새끼 놓은 어미도 없고.”

“짜잔, 또 뭐가 없어졌게?”


둘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내 쪽을 향했다. 눈빛이 너무나 심각해 보여서 나는 하려던 말을 속으로만 삼켰다. 


“애들 짓 아닐까요?”

“설마!”


집주인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우리 동네 아덜이 을매나 착한지 아나? 고내이만 보믄 코 묻은 돈 해 가지고 소시지니 머니 사 멕이는 아덜인데.”

“최근 시에서 공무원 나온 적은 없고요?”

“읎어. 여는 민원 넣는 사람도 없어. 하나야 있지만서도.”

“추워서 어디로 갔나?”

“암만 춥대두 벌써 가겠나? 가도 저 아래쪽에 집 해 둔 데로 가겠지 이리 한번에 사라질 터나?”


나는 일단 잠자코 앉아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동네에서 고양이가 싹 사라졌다는 소리 같았고 나는 그것이 나쁜 소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너지.”


W가 소름 돋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나는 W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는데, 항상 속으로 생각하기를 깨끗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왜냐하면,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손에는 상처가 있고 눈가에도 하나 있고 눈매가 엄청 무서웠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능글맞은 데가 있었고 평소엔 대체로 얼빠져 있어서 깡패는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냐!”

“너, 개 마지막으로 언제 봤어.”

“몰라. 그냥 나와 보니 없던데. 4시? 5시? 그쯤.”

“그 전에는?”

“몰라. 방에서 글 쓰고 있었어.”


나는 글이라는 음절에 강세를 주었다. 내가 하는 일이 여기에서는 어쩐지 항상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곤 했기 때문이다.


“밥은 언제 줬는데?”

“점심 때?”


추궁당하는 것만 같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뭐라 대꾸하거나 농담을 던지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다.


“그럼 나는 방에 갈게? 머리가 아파서. 할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찾아와.”

“뭐?”


W는 잠시 말을 골랐다.


“찾는 것 좀 도와줘.”


이건 대단히 드문 일이었다. W는 대체로 무엇도 부탁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뭘 잘 부탁하지 않았으니까.


“싫어.”

“도와줘.”

“싫어, 잘 갔잖아! 얼마나 무섭고 귀찮았는데!”

“집세 두 달 밀린 거 없던 걸로 해 줄게.”

“찾아만 오거라. 한 달 집세는 안 받을거니.”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해방감과 공포를 이겨낼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본의 굴레에 얽혀 한낱 부품으로만 전락하는 것이다…


“싫… 어.”

“뭘 싫어. 니가 똑바로 안 봐서 개가 나갔잖아. 니 책임도 있어. 좀 도와줘.”

“아니, 원래도 지가 잘만 나갔잖아. 왜 나한테 그래, 지가 안 돌아오겠다는데.”

“저번 두 달치 내가 내준 것 탕감. 그리고 다음 두 달치 집세 대신 내 줄게.”

“…나 원고 써야 돼.”

“원고는 지랄. 누구 읽힐 거면 나가서 계약부터 해라.”


맞는 말이었다. 사실 말하지만 얼마 전 글은 다 썼고, 남은 일은 출판사를 찾아다니는 건데, 그놈의 개새끼 때문에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었단 말이다. 이건 억울한데, 좀.


“빨리. 도와줘. 안 도와줄 거면 거래 없던 걸로 하고 나가. 집세 밀린 것 낼 때까지 돌아오지 말고.”


W의 눈은 확고했다. 개새끼나 주인이나 성깔이 아주 똑같아요.


“…알았어.”

“좋아.”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가 도와달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근데 뭐, 동네에서 전부 없어졌다고? 한번에?”

“한번이 아니라.”


집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이번 달, 아니 저번 달인가? 고내이 밥 줄라고 핸기 읎사. 원래 밥 줄 때쯤 되믄 헐레벌떡 뛰냉기 와서 배가 주려가지고는 정신없이 먹는데. 그래서 야가 우데로 갔나, 어쨌나 했더니 그 후로 여즉 안 보이는 게 아니나. 해서 이상하다, 했더니 저 웃집에…”

“봉춘이 할아버지네요?”

“그래. 글쎄 그 하르바이가 고내이를 네다섯 키우잖나. 한 마리 사라지고 또 한 마리 사라지고 해서 이제 한 마리 남았그등? 근데 거마저도 없다 하더라니. 요 골목 좀 보아. 고내이 새끼들이 그리 많던 기 한 마리도 읎잲나. 여뿐만이 아니라. 이 먼 일이 있는 거이 아니나? 무수와서 참, 내.”

“어디 뭐 다른 데 갔겠죠. 아니면 쥐약 잘못 먹었거나.”

“쥐약 먹었으면 시체가 남았겠지.”


W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화원 아저씨랑 신문 배달이랑 청소차 아저씨한테 전부 물어 봤어. 시체도 없었대.”

“그럼 어디로 갔는데?”

“누가 데려간 거야.”

“누가?”


W가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걸 이제부터 니가 알아봐야지. 나도 알아볼 거고.”



<고양이 실종 사건>


10월 중순이었고, 아직 그다지 춥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침부터 일어나 동네를 돌아다니기에는 내키지 않는 날씨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W는 내가 술이 채 깨지도 않았는데 흔들어 깨우더니 다짜고짜 봉춘 영감네 집을 찾아가라고 했다. 


봉춘 영감은 말하자면 쓸데없이 부지런한 노인네로, 언덕배기를 새벽 댓바람부터 빨빨거리면서 내려와 동네 어귀를 부지런히 쓸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잔소리를 해 대고 쓰레기를 줍고 고양이 밥을 주고 고양이가 찢어 놓은 쓰레기 봉투를 제 돈 주고 사서 다시 담아 두었다. 왜 그러는지 몰라. 분명 전직 군인이었을 거다. 임관 반지를 자랑스럽게 아직도 끼고 다니는 것을 보면. 노인네가 쓸데없이 목소리가 커서 나는 새벽부터 잠을 설치곤 했다. 그뿐인가. 글쟁이가 한창 숙면을 취할 오전 11시 반에 대문을 두드리며 집주인 할머니와 수다를 떨다가 나 들으라는 듯이 ‘쯧쯧, 젊은 놈이 아직도 널부러져 있네.’ 하고 혀를 찼다. 한 마디로, 나와는 상극이었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10월 중순이었고, 아침 8시였고, 노친네는 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찾아가라니 세 배로 내키지 않았다.


언덕 중간쯤의 봉춘 영감의 집 앞은 웬일로 너저분했다. 평소 같았으면 시멘트 바닥에다 대고 치약으로 미싱을 했을 양반인데, 낙엽과 떨어진 감이 굴러다녔으니까.


“영감님, 계세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영감님!”

“들어와.”


힘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들어선 마당 한켠에는 고양이 밥그릇만 여섯 개가 있었다. 어휴, 끔찍해. 장독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아침 햇살에 흩날리고 있었다. 봉춘 영감은 평상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저 아랫집 김 할머니 세들어 사는 사람인데요.”

“알아, 잠꾸러기 총각이잖아.”

“누가 잠꾸러기예요. 영감님이 부지런한 거지.”

“왜 왔어. 한창 잘 때 아니야?”

“고양이 없어졌다면서요.”


고개를 든 봉춘 할아버지의 볼은 움푹 패여 있었고, 머리는 빗지 않은 듯 흐트러져 있어서 나는 내심 놀랐다. 저 영감이?


“그래.”

“어디 갔는지 아세요?”

“몰라.”


수사는 대단한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요. 짐작 가는 데도 없어요?”

“없어.”

“내 참.”

“알면 자네가 어쩔 거야. 찾아 줄 거야?”

“보고요.”


고양이는 악마의 짐승이지만 집세 두 달 밀린 거 탕감에 다음 두 달도 안 내도 된다면 나는 기꺼이 악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권속과는 타협할 의사가 있었다.


“어디 잠깐 나간 거 아녜요?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수도 있잖아요. 우리집 개새… 그 W가, W 아시죠? 그놈이 키우던 고양이도 뻔질나게 들락날락거렸거든요.”

“나가?!”

“아니, 왜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세요.”

“우리 애들이 얼마나 영특한데. 마누라 가고 나서 자식 새끼들은 명절에나 코빼기 비칠까 말까야. 우리 부부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자네가 알긴 해? 때 되면 들어왔다가 나가고, 밥도 꼬박꼬박 먹으러 왔다구. 민들레는-“

“고양이 이름을 민들레라고 지었어요?”

“그래. 털이 노란 게 얼마나 민들레를 닮았어.”

“알았어요. 계속하세요.”

“그런데 다들 사라졌다고. 처음에는 달래, 그 다음에는 쭉이랑 수유, 별이, 그리고 민들레까지 없어졌어.”

“고양이 이름을 전부 꽃 이름으로 지었어요?”


봉춘 영감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래. 불만 있어?”

“아뇨, 불만은 없고요… 언제 사라졌는데요?”


봉춘 영감이 다시 침울해졌다.


“몰라. 아침에는 아래 내려가 청소하고, 점심 먹을 즈음에 올라온단 말이야. 그때 달래가 사라졌어. 저녁 먹을 쯤에는 오겠거니, 했는데 안 왔어. 다음 날에도 안 왔단 말이야. 그래서 청소를 다음 날에는 쉴까, 했는데 아무도 안 하면 어떻게 되겠나. 길고양이들 밥도 줘야 하는데. 그래서 얼른 밥 주고 부랴부랴 올라왔는데 요새는 무릎이 너무 쑤셔요, 내가 월남전에서-“

“베트콩 여럿 잡았다고요. 할아버지 무릎 아픈 거 알아요. 고양이 얘기나 계속하세요.”

“그래, 근데 그 양반들도 요새 드러누우면 자꾸 얼굴이 떠올라. 내가 벌을 받는가봐.”

“영감님, 고양이요.”

“알았어. 달래가 사라지고, 그 다다음 날에는 청소를 안 나갔지. 쭉이랑 수유랑 산책 나가고 안 오더란 말야. 내가 밤을 샜어요. 그래도 안 왔어.”

“별이?는요.”

“셋이나 가고 나서 방방곡곡을 찾았지. 방에다가도 넣어 두고. 저 아래 편의점 처자 알지?”

“고양이 밥 주는 사람이요?”

“그래, 얼마나 마음씨가 고와.”

“근데요.”

“그 아가씨한테 부탁해서 전단지도 만들어 붙였어. 찾아 달라고. 나야 이제 돈 쓸 일도 없고 해서.”


그러고 보니 본 것도 같다.


“저도 봤어요.”

“봤어? 어디 있어?”

“아니, 전단지를 봤다구요.”


봉춘 영감은 대단히 실망했다.


“그래, 그거 붙이고도 아무런 소식이 없더란 말야. 그런데 그거 붙이는 동안에 별이가 사라졌어.”

“별이요?”

“응. 민들레는 원체 집 안에 있는 걸 싫어해서. 지붕 위에 있거든. 누가 지붕 위까지 올라가겠느냔 말야.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그렇지. 그래서 별이만 뒀지. 그런데 누가 문을 열고 데려갔더라고.”

“지가 문 열고 나간 거 아녜요?”

“별이는 문 못 열어. 민들레는 열지. 돌아가니 민들레 혼자 앵앵거리며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 제 친구가 셋, 아니 이제 넷이나 사라졌으니 얼마나 서러웠겠어. 그 어린 것이.”

“민들레면 걔 아녜요? 늙고 못생긴 애?”


봉춘 영감이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민들레는 언제 사라졌는데요.”

“그게 말야…”


봉춘 영감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민들레는 꼭꼭 방에 두고 잤어. 밤마다 말야. 한 달을 족히 그랬지. 그런데 너무 답답해하는 거라. 그래도 안 내보냈지. 누가 또 채 가면 어떡해.”

“근데 누가 집 문 열고 간 거면 도둑 아녜요?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했지, 그럼. 그런데 도둑맞은 것도 없고 고양이만 사라졌다고 하니 들은 체도 안 해. 고얀 놈들…”


일단 파출소도 한번 가 봐야겠다.


“여튼 간에, 하루는 밤중에 민들레가 문을 밀고 나갔단 말야. 내가 귀가 어두워서 못 들은 게, 내가, 내가 죽일 놈이야.”

“뭐 그런 것 가지고 죽어요. 정정하시면서.”


봉춘 영감이 세 번째로 나를 째려보았다. 이런.


“그 뒤로 안 돌아왔어요?”

“그래.”


전혀 얻어낸 것이 없었다.


“아, 하나가 있어.”

“뭐가 있어요?”

“자네, 달래랑 쭉이랑 수유랑 별이랑 민들레랑 찾아 줄거야?”


윽.


“보고요.”


봉춘 영감이 이리저리 재는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고양이들이 많잖아, 이 동네에. 그런데 내가 이리저리 캐묻고 다녔단 말야. 그런데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없어.”

“그게 뭐요.”

“잘 아는 사람이 데려갔다는 거야. 적어도 보자마자 도망은 안 갔다는 소리지.”


이건 좀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잘 아는 사람이 누군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자네가 찾아 준다고 했잖아.”

“제가 언제 그랬어요. 보고요, 이랬지. 그리고 이 동네 사람 중에 고양이랑 안 친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중에 분명 누군가가 있어.”

“누군가가 누군데요.”


봉춘 영감은 커다란 비밀을 털어놓는 예언자마냥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고양이들을 데려간 거야.”


나는 이 영감이 드디어 돌아 버렸다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한번 찾아 볼게요.”

“그래. 제발 부탁이네. 무사히 데려와 줘.”

“몰라요, 그건.”


어쨌든 다음은 편의점이다. 마침 담배도 떨어진 참이었고.


“어서오세요.”


작은 동네라 알바생은 언제나 그 알바생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어서 가게 앞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그 알바생. 그럴 때마다 나는 질겁하며 주변을 맴돌다 짐승들이 밥을 다 먹으면 들어가곤 했다.


“저기요, 봉춘 영감님이 보내서 왔는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알바생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까워서 어떡해요.”


대체 뭐가.


“뭐 아는 거 있어요?”

“글쎄요, 그러고보니 얼마 전부터 가게 앞에 애들이 밥 먹으러 안 오더라구요.”

“애들이요?”

“고양이들이요.”


고양이더러 애라니.


“언제부터요?”

“벌써 한 이 주일 된 것 같아요. 원래 이맘때쯤 밥 먹으러 오거든요. 골목에도 없더라구요. 오다가 좀 보셨어요?”


내가 그걸 왜 봐.


“못 봤네요. 아, 에쎄 체인지 린 하나요.”


잠시 공적인 대화가 오갔다. 알바생의 표정은 여전히 사적이었지만.


“혹시 고양이 찾으러 다니시는 거예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알바생의 표정이 밝아졌다.


“잘 됐네요! 혹시 이것 좀 다니면서 붙여 주실 수 있어요? 테이프랑 커터칼은 제가 드릴게요.”


윽.


“다음에요.”

“그래요… 아, 파출소에도 한번 가 보세요. 거기 소장님도 걱정 많이 하시던데.”

“소장이요?”


담배나 필 줄 알지, 일은 뭐 할 줄 아나?


“봉춘 영감님이 파출소에 신고했더니 들은 척도 안 했다던데.”

“그거야 그렇긴 한데… 바쁘기도 하시겠죠, 경찰 아저씨들도.”

“근데 거길 왜 가요?”


대단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것처럼 알바생이 말했다.


“사실 소장님이 파출소 뒤쪽 산에서 고양이 밥 주시거든요, 여기 와서도 몇 번 사가셨구요.”


아, 그러셔.


“일단 그럼 한번 가 볼게요.”


딸랑, 편의점 문이 열렸고 나는 삼각김밥이라도 하나 살 걸, 하는 생각에 잠겼다.



<수사의 시작>


도무지 사건이라고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동네였고(그게 마음에 들었다) 혜훈동 파출소의 경찰들도 사건이 닥치면 당황할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고양이 실종 사건이야말로 이 동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사건이 아닌가? 밖에서는 순경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끼어 불을 빌려달라 청했다(진짜로 라이터를 까먹고 안 가져왔기 때문에). 


“수고하십니다.”

“예에.”


그들은 곧 하던 얘기로 돌아갔지만 어쨌든 나는 끈덕지게 말을 붙였다. 날씨 얘기부터, 봉춘 영감 얘기랑 청소 얘기, 고양이 얘기까지.


“요새 근데 고양이가 잘 안 보이네요?”


순경 한 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게요, 안 그래도 소장님이 얼마 전에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하시던데.”

“뭐라구요?”

“그냥, 요새 왜 안 보이냐고. 사실 그것 때문에 좀 귀찮고 그랬거든요. 자꾸 쓰레기 봉투 터뜨리고 밤에 운다고 민원은 들어오는데, 그걸 저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요. 또 봉춘 영감님, 봉춘 영감님 아시죠?”

“그럼요. 엄청 잔소리 해대잖아요.”


잠시 웃음이 터졌다.


“맞아요. 그러면 또 봉춘 영감님께서 ‘내가 똥도 치우고 내 돈 주고 쓰레기 봉투 사서 다시 채워 놓는데 뭐가 문제냐, 청소하는 양반들도 고마워한다’ 이러시는데 할 말이 없거든요, 사실. 그리고 자꾸 민원 넣으시는 분도 이상한 걸로 자주 찾아오곤 하시니까…”

“아, 그래요?”

“그렇다니까요, 김 할머니 하여튼 성질 알아주셔야 돼.”

“김 할머니요?”


그때 안에서 소장이 나와 소리쳤다.


“야, 니네 순찰 안 가?”


예에, 갑니다, 따위의 소리를 하며 순경 둘은 목례를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소장의 담배에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불을 붙였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거.”


그리고 의미 없는 잡담.


“그런데 소장님, 요새 동네가 조용해서 좋네요. 밤마다 고양이들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쳐서요.”

“허허, 그렇죠.”


소장의 표정이 굳어지는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일말의 즐거움마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결말을 뻔히 아는 사건을 파헤치며 되짚어가는 것은 꽤나 괜찮은 정신적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동네에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다! 그리고 계속 없었으면, 나는 소망했다. 그런데 소장의 생각은 나와 달랐나 보다.


“그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신고는 자꾸 들어오는데, 아니 동네가 동네인지라 뭐 CCTV가 있나, 그나마 있는 데라곤 편의점 앞인데 뭐 누가 찍혔어야 말이지. 사정이야 안타깝고, 저도 개인적으로 섭섭합니다. 이 놈들이 어디로 갔나 싶어요. 돌려 보면은 뭐가 없단 말이죠.”

“어디로 갔을까요?”

“저야 모르죠. 뭐 어디 죽었으면 시체라도 남았을 텐데-“

“미화원도 모르고, 신문 배달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고요?”


소장은 자못 놀란 듯했다.


“그래요. 시체도 없고요, 어디 뭐 찍힌 것도 없어요. 전단지가 꽤 붙었는데 하다못해 신고 하나 들어온 게 없어요. 어디로 갔는지 원…”

“봉춘 영감님 말로는…”

“봉춘 영감님이요? 그러고 보니 요새 잘 안 보이시던데. 제가 어머니께서 단감을 좀 보내주셔서 드리려 했는데…”

“단감 좋네요. 하여튼 봉춘 영감님 말로는 잘 아는 사람이 데려갔다던데요.”


소장은 두 번째 담배를 태워 물었다. 나는 얼른 불을 붙여 주었다.


“사실 저희가 언덕 아래에 있으니까, 위에는 또 다 골목이잖아요. 그래서 잘 몰라요, 그런데 밤이면 소리가 또 들리긴 들린단 말입니다. 근데 듣고 보니 그렇네요. 요새 같으면 조용하고 누가 낚아채 갔으면 우는 소리라도 들릴 텐데…”

“흠.”

“그런데 뭐, 고양이 찾고 계십니까?”


소장의 목소리가 딱딱해져서, 나도 덩달아 딱딱해졌다.


“뭐, 할 일도 없고, 당분간은요.”

“아, 혹시 저 윗집 할머니네 세들어 사십니까? 맞죠? 그 잠 많으신 분.”


이런, 씨발.


“그게요, 제가 글을 쓰다 보니까…”


소장이 내 손을 잡았다. 담배가 떨어졌다. 반도 안 피웠는데.


“제가 이런 자리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은, 아시잖습니까, 소장이란 자리가요, 고양이 찾는 것보다 할 일이 또 있어서요.”

“…아무렴요.”

“그, 저 좀 내려가서 행복동물병원 아십니까? 거기 수의사분이 또 조사를 하고 계시던데요.”

“그렇네요. 한번 가보겠습니다.”


우리는 남은 담배를(나는 떨어진 담배를 소장이 구둣발로 밟아 꺼버렸기 때문에 새로 꺼내 피웠다) 피우고 경례를 나누고 헤어졌다. 일단 밥부터 먹자, 하고 나는 언덕을 다시 올라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어어, 총각 왔나?”


웬일로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W가 마루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뭣 좀 알아냈냐.”


나는 짧게 브리핑을 했다. 봉춘 할배, 편의점, 순경 둘, 파출소장.


“결론은?”

“몰라, 결론이랄 게 있나. 그냥 누가 데려간 게 아닐까, 다들 이 소리 하던데.”

“그렇지.”

“그런 거야?”

“잘 해 주었네, 왓슨.”


나는 W가 스스로를 셜록으로 칭하는 꼴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W는 굉장히 열받는 포즈로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또 다른 단서는?”


이런, 씨발.


“동물병원 가보라던데. 근데 밥 먹으러 일단 왔어. 야, 그리고 나 좀 자면 안 되냐. 아침부터 이게 뭔데.”

“그래, 많이 알아왔네.”


집주인 할머니께서 밥상을 내오셨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래, 뭣 좀 알아 봤나?”

“뭐가 있겠어요. 그냥 뭐 어디 갔겠지.”

“야아, 그런 말 말아라. 벌써 시월 아니나. 고내이들이 그래 많았는데 어데 가서 벌벌 떨 생각 하면은 내가 걱정이 안 되나?”

“걱정은요. 야, 넌 밥 안 먹냐.”

“먹어야지.”


W는 한 술도 제대로 뜨는 듯 마는 듯했다.


“밥 먹고, 너는 저 위에 가봐.”

“저 위가 어딘데. 밥 좀 먹자.”

“누가 먹지 말랬냐.”


동치미는 제대로 익어 있었다.


“산길 산책로 따라서 샛길로 쭉 가면. 거기 고양이들 집합소야.”


나는 동치미 국물을 코로 뱉어서 짜증이 났다. 왜 뱉었냐면, 고양이 따위에게 집합소가 있다는 것이 웃겼고, 그렇다면 그 곳은 악마의 집회가 열리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집주인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휴지를 건네 주셔서 나는 괜찮다며 옷소매로 코를 닦았다.


“그게 어딘데?”

“너 한번도 안 갔어? 좀 나가라. 집에만 있지 말고.”

“남이사.”

“언덕 좀 올라가서, 박 할머니네 골목에서 좀 꺾으면-“

“나도 알아, 안다고. 그냥 안 갔던 거야.”

“잘 됐네. 거기 가서 뭐 있는지 좀 봐.”

“그래, 밥부터 먹고.”

“빨리 먹어. 좀 이따가 애들하고 협상해야 돼.”

“애들?”

“애들.”

“무슨 애들?”


설마 W도 편의점 알바생처럼 고양이를 애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잔말 말고, 얼른 먹고 가.”

“야야, 요새 아들은 무어 좋아하나?”

“아이고, 할매, 내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마소.”


W와 집주인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나는 낮잠은커녕 식후땡도 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으로. 1) 고양이. 2) 집합소(사람이건 고양이건 간에). 3) 산길.


어쨌든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산책로는 길었고 높고 관리도 덜 돼 있었다. 군데군데 발판이 빠지고, 난간이랍시고 묶어 놓은 밧줄은 올이 풀려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낸 세금(적어도 담뱃값에 포함된 세금)이 고작 이딴 식으로 쓰이다니.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금세 보다 큰 충격에 의해 잊혔다. 마침내 오른 정상에서 목이 반쯤 잘린 고양이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이제 날이 추워져 아직 완전히 썩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은 썩어 있었다. 곳곳에 잇자국도 남아 있었고. 

화들짝 놀라 나는 다시 본부, 그러니까 집으로 향했다. 채 들어가기도 전에 마당은 시끌벅적했다.


“와!” “새로운 아저씨!”


누군지도 몰랐지만 나는 이 애새끼들한테 사실 관계는 똑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아저씨야!”

“틀딱!”


이런, 시발.


“얘들은 누구냐.”

“소개할게. 혜훈동 소년 탐정단.”


세상에.


“됐고, 할 얘기 있어.”

“혜훈동 소년 탐정단 여러분, 오늘은 그만 귀가하십시오. 아까 의뢰한 정보는 들어오는 대로 보고하시고.”

네! 하는 합창이 울렸다. 그걸 무시하고 나는 W를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가보니까 고양이 시체밖에 없었어.”

“시체?”

“어.”

“왜 죽었는데?”

“몰라. 물려 죽은 것 같애. 잇자국이 나 있었어.”


W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왓슨, 그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를 추론할 수가 있네.”


또 지랄 시작.


“…뭐.”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를 물어 죽일 수가 있을까?”

“그럼, 사람도 물어 죽이는데.”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닌데.”


W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왓슨, 내가 자네를 파견한 곳은 고양이 집이 있는 장소야. 말하자면 고양이 집회소지. 그런 곳에 개에게 물려 죽은 고양이 시체가 있다? 우리 마을 주민들은 개를 잘 키우지 않지. 키운다고 해도 산책로를 벗어난 샛길로 쭉 들어가면 나오는 고양이 집회소까지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가는 주민들은 많지 않아. 게다가 고양이를 물어 죽일 정도로 커다란 개를 키우는 주민들은 더더욱 드물고.”

“그래서.”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거기로 간 거지.”

“목적?”

“그래. 아마도 사냥.”

“그거 대단한 일이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거의 악마 사냥꾼.


“왜?”

“그걸 이제 자네가 알아봐야 하네. 단순한 증오 범죄인지, 아니면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인지는 아직 몰라. 아래 동물병원에 가 보게.”

“…내일 갈게.”

“그러도록, 왓슨.”


W를 무시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쨌든 피곤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하기에는 너무 많은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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